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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김동수(金東洙)선생
  • 인터넷 뉴스팀
  • 승인 2012.09.03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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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의 독립운동가 김동수(金東洙)선생 (1916. 12. 6 ~ 1982. 2. 20)

김동수 선생은 강화에 세거한 양반가문으로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인 1923년, 선생의 부친은 자유로운 선교와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건너갔다. 선생은 상해에서 민족교육의 상징인 인성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을 키워 나갈 수 있었고, 화랑사 등 각종 소년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 김동수 선생

인성학교와 공시중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1월, 제1차 상해사변 이후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학생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1934년경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선생은 윤봉길의거 이후 독립전쟁의 군사간부 양성을 위해 설립된 중국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에 입학하여 군사학을 연마하는 한편, 김구가 조직한 특무대에 들어가 반일운동에 참여하였다.
낙양분교를 졸업한 선생은 1936년 중국군의 장교로 복무하였다. 다음 해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선생은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남경에 가서 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선생은 피난 중의 임시정부 등 요인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임시정부가 중경에 도착한 이후 선생은 나월환 등 한인 청년들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결성하였다. 전지공작대는 전방인 서안으로 가서 초모 및 선전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때 초모된 한인 청년들은 후일 한국광복군의 근간이 되었다.

▲ 앞줄 왼쪽에서 깃발을 들고 서있는 김동수 선생

1940년 9월 17일 마침내 중경에서 임시정부의 국군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었다. 1941년 1월 선생이 소속되어 활동하던 전지공작대는 혁명역량의 집중이라는 대승적 견지에서 광복군 제5지대로의 편입을 결정하였다. 선생은 신설된 광복군 제5지대의 부지대장 겸 제1구대장이 되어 초모, 선전, 정보수집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아울러 새로이 초모한 대원들에 대해서는 중국군관학교에 한국청년반을 특설하여 군사훈련을 시켰다. 선생은 1945년 4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산하에 조직된 토교대 제3대 대장을 역임하였다.

일종의 보충대라고 할 수 있는 토교대 임무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던 선생은 중경에서 8․15 광복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 선생은 한국독립당 감찰위원,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동북특파원으로 교포의 생명, 재산의 보호, 안전한 귀국을 주선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8년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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