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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6.25 남침전쟁, 대한민국을 도와준 나라들 ① 오스트레일리아
  • 류진석 기자
  • 승인 2016.06.03 14:03
  • 댓글 0

1950년 6월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남한을 불법 남침한 6·25 전쟁이 벌어진 날입니다. 6·25남침 전쟁에는 세계로 확산하던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변두리 국가’였던 남한에 참전해 피를 나눈 국가가 있었습니다.

6·25전쟁은 같은 동포가 우리에게 칼을 겨룬 전쟁이자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간 첨예한 대립이 빚은 국제적인 비극입니다.

본지에서는 6·25 남침전쟁 66주기를 맞아 UN참전 용사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북의 공산화 남침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UN 소속 국가의 참전 배경에 대한 기획특집을 연재합니다.

▲ ⓒ 국가보훈처 블로그 캡처

6월은 국가 보훈의 달이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수호한 선조들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는 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공훈과 나라사랑정신을 선양하고 계승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국가와 가족을 내 손으로 지키겠다는 나라사랑정신은 지금의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존재하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군이나 독립투사 또는 의병이 아닌 우리의 우방국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함께 수호한 적이 있었다. 특히 6·25 남침전쟁과 같이 여러 국가에서 북의 남침 또는 공산화 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힘을 합쳐 싸운 사례는 세계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참전국 중 일부 국가는 그 당시 대한민국이 상당히 생소한 경우도 존재한다. 타국에 대한 나라사랑정신이 아니라면 어떠한 동력이 그들을 6·25 전쟁 참전까지 이끌었을까? 한국에 병력지원과 의료지원을 해주었던 총 21개국을 중심으로 각 국가의 개황에 대해 살피고 6·25 전쟁 참전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6개 병력지원국 중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국가 전반에 대한 개요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연방에 속하는 나라로 수도는 캔버라이며 인구는 2천만여 명에 이른다. 국토 면적은 769만㎢(세계 6위)에 이르고 인구의 92%가 백인, 아시아인은 7%를 이룬다.

정부 형태는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띠고 있으며 언어는 원주민어 방언과 영어를 병행해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과는 1961년 10월 31일에 국교를 맺었으며 2009년도에 한호 FTA 협상을 개시했고, 같은 해 군사비밀정보보호 협정을 체결하였다. 교역 규모는 대오스트레일리아 수출이 92억6900만 달러(2012년), 대오스트레일리아 수입이 229억7800만 달러(2012년) 상당에 이른다. 우리나라 교민은 약 15만 명으로 추정(어학연수, 워킹 홀리데이 등)(2012년 기준) 된다.

▲ 6·25 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호주 군인들이 북한 평안북도 박천 일대에서 중공군과 싸우는 모습. 6·25 전쟁을 다룬 책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을 최근 펴낸 영국 기자 앤드루 새먼 씨는 영국 빅토리아 국립박물관에 있는 이 사진의 이미지를 제공했다. 2015.6.19 ⓒ 연합뉴스

오스트레일리아 6·25남침 참전 배경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점증하는 공산주의 팽창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아울러 유엔의 깃발 아래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것은 미래에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 팽창을 막는 유력한 예방책이라고 판단했다.

북한의 남침은 UN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 당일, UN은 긴급히 UNSC 결의안 82를 의결하였다. UNSC 결의안 82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38도선 이북으로 북한은 철수할 것 ▲전쟁 정황을 감시하기 위해 한국 내 UN위원회를 창설하고 그 정황을 안보리에 보고할 것 ▲모든 UN회원국들은 위 사항을 달성하기 위해 UN을 지지하며 북한 당국에 대해 원조를 하지 말 것.

국무총리 로버트 맨지스가 이끄는 자유주의 진영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한국에 군 파병을 하는 것으로 즉각 UN 결의안에 대응했다.

한국의 군 지원에 대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제안은 오스트레일리아 의회에 의해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한국 내 UN 위원회의 회원국이었다. 1950년 초기 다른 UNC(유엔군사령부) 회원국은 오직 한 명의 직원만을 파견하였으나 오스트레일리아는 두 명의 직원들을 보냈고 이 직원들은 UNC 군 조사 팀 소속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두 명의 직원들은 한반도에서 발발한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토대로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6·25남침 전쟁에 참전했다.

1만 7천여 명의 오스트레일리아군은 6·25남침 기간인 50년부터 53년까지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희생당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은 사망자 339명, 부상자 1,200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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