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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6.25 남침전쟁, 대한민국을 도와준 나라들 ⑦ 프랑스소련의 유럽지배 경계…세계2차대전 당시 활약한 예비군 한국에 파병
  • 류진석 기자
  • 승인 2016.06.13 14:03
  • 댓글 0
1950년 6월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남한을 불법 남침한 6·25 전쟁이 벌어진 날입니다. 6·25남침 전쟁에는 세계로 확산하던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변두리 국가’였던 남한에 참전해 피를 나눈 국가가 있었습니다.

6·25전쟁은 같은 동포가 우리에게 칼을 겨룬 전쟁이자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간 첨예한 대립이 빚은 국제적인 비극입니다.

본지에서는 6·25 남침전쟁 66주기를 맞아 UN참전 용사의 호국정신을 되새기고자 북의 공산화 남침전략으로부터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UN 소속 국가의 참전 배경에 대한 기획특집을 연재합니다.

▲ 국제 기구 및 UN회원국들 브라질, 대만, 쿠바, 에콰도르, 아이슬란드, 레바논, 리베리아, 멕시코, 니카라과, 파키스탄,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그리고 베네수엘라도 전쟁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한 물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인터넷 캡처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인해 6.25전쟁이 발발한다. 이에 유엔은 1950년 6월 28일 제2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 연합군을 결성하여 파병할 것을 결의했다.

유엔 연합군의 이름으로 전투병력과 장비 등을 지원한 전투지원 16개국과 병원선, 의료진, 의약품 등을 지원한 의료지원 5개국 등으로 총21개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

오늘은 16개 병력지원국 중 프랑스의 6·25(남침)전쟁 참전 배경 및 프랑스의 개황에 대해 알아보자.

프랑스의 6·25(남침)전쟁 참전 배경

▲ ⓒ 인터넷 캡처

서유럽의 재무장 계획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상당한 병력 손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한국에 군대를 파병하는 데 동의하게 된다. 당시 수상이었던 르네 플레벵과 진 레톨니우는 국제적 위상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인도차이나 또는 유럽에서 미국의 원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군 단결력과 정치적 일관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서 근본적으로 소련의 유럽 지배에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 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해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유럽에서 미국의 확고한 역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에서 미국과 함께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사르트에서 훈련을 받고 한국에 파병된 프랑스 대대는 보병대대와 특전사가 지원하고 일반 참모로 구성된 프랑스 육군(FLF)으로 명명된 대대로 통합되었다. 프랑스 국방부는 소련의 탱크, 항공술 등과 비교해 미국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기에 이를 정보 임무 수행을 할 기회로 활용하고자 했다. 대대는 능동적 자원봉사자와 예비군으로 구성되었고 세계 2차 대전과 인도차이나에서 큰 활약을 전개한 예비군들에게 우선적 권한을 부여했다.

프랑스 개황

위치 : 유럽 중서부
면적 : 657,417 km2(해외 속령 포함)
기후 : 온대성 기후(대부분), 지중해성 기후(남부)
수도 : 파리
인구 : 6,632만 명(2015.1.1)
주요도시 : Paris(224만), Lyon (171만), Marseille(198만)
민족 : Gaul족, 로마족, 노르만족, 프랑크족
언어 : 프랑스어
종교 : 카톨릭(83%~88%), 이슬람(5~10%), 개신교(2%)
정부 형태 : 대통령 중심제(의원 내각제 가미)

대통령 중심제를 띠고 있는 프랑스는 유럽 중서부에 자리하며 면적은 657,417km2으로 한반도의 3.1배 크기를 지니며 인구는 6,632만 명(2015.1.1)으로 세계 인구21위다.

주요 경제 지표를 보면, 명목 GDP가 2조 9,020억 달러(2014)이고 실질 경제성장률은 14년에 0.4%, 15년에 1.1%를 달성했다. 1인당 GDP는 2014년 기준 40,445달러에 상당하고 실업률은 12년~15년 사이 모두 10%가량을 보였으며 물가상승률은 15년 0.2%로 지난 4년간 하향하는 추세다.

화폐는 유로를 사용하며 15년 환율은 1.11달러로 지난 3년 동안 소폭 하향했다. 외채는 5조에서 6조가량을 보이며 외화보유고는 14년 1700억 달러, 15년 1,571억 달러에 달한다. 산업구조는 서비스업이 67.2%로 과반 이상을 차지하며 제조업 19.5%, 건설업 7.2%, 광업 3.9%순이고 농업이 2.2%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교역 규모는 군수품을 포함해 수출액이 15년 기준 4,551억 유로, 수입액이 5,007억 유로로 무역 적자액은 -457억 유로에 상당한다.

▲ 황교안 국무총리가 프랑스 방문 마지막 날인 19일(현지시각)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프랑스 현지 6·25 참전용사 초청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5.9.20 ⓒ 연합뉴스

한-프랑스 관계

한국과 프랑스는 1906년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관계가 일시 중단되지만 1949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재수교를 맺는다. 체결협정을 보면, 61년에는 상표 협력 협정, 63년에는 세관 협력과 특허권의 상호 보호에 관한 협정을 이루어내며, 67년 사증 면제 협정을 체결한다.

74년에는 한·불 민간 항공 협정,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상호 협력 협정이 이루어지고 75년에는 한불 투자 보장 협정이 체결된다. 79년에는 이중과세 방지 협정에 서명하고 81년에는 양국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이 이루어진다. 93년에는 산업 협력 약정, 2000년에는 군사 비밀 보호 협정이 체결되고 04년도에 사회보장 협정이 체결되어 07년도 사회보장 협정이 발효된다.

양국 간 교역 내역을 보면, 한국의 대프랑스 15년도 수출액은 25억8,100만 달러로 2014년보다 2.2% 감소했으며, 수입액은 61억 5,700만 달러로 2014년에 비해 9.8% 감소했다. 주요 교역품으로는 한국 수출품의 경우 선박, 승용차, 자동차부품, 항공기부품, 축전지 등이, 수입품은 항공기, 화장품, 의약품, 펌프, 집적회로반도체, 가죽제 가방 등이 있다.

투자 교류 현황으로는 프랑스의 대(對) 한(韓) 투자의 경우 14년은 2억 1,200만 달러, 15년은 1억 2,950만 달러인 데 비해 한국의 대불 투자의 경우 14년, 6,800만 달러, 15년, 7억1,000만 달러였다.

재불 한국 교민은 약 2만 명 가량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2016년 1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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