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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남침인 5가지 확실한 증거초대 잠수함 전단장이 밝힌 6.25남침 근거
  • 김혁수 제독
  • 승인 2016.06.24 15:20
  • 댓글 0
▲ ⓒ 인터넷 캡처
첫째, 옥계해전과 대한해협 해전에서 알 수 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0분에 38선 전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남침했다고 하지만 4시30분에 이미
북한군이 옥계해안에 상륙했으며, 6월25일 부산 앞바다에 상륙군을 태운 함선이 와 있었는데 당시 함선의 속력으로 보면 23일 이미 우리 바다를 침범했다. 그래서 계획된 남침전쟁이었다.
둘째, 당시 남북한 군사력을 보면 북침이 불가하다.
병력: 10만 대 20만, 전차: 0 대 242대
화포: 1051 대 2492문, 항공기: 22 대 226대,
함정: 36 대 110척
당시 한국은 전력의 열세로 북침이 불가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해 해방후 군사력을 증가시켰다.
셋째, 북침이라면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될 수 없다.
방어자가 아무리 강해도 초전에는 피해를 입기 마련인데 북한은 피해없이 수도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된 것은 명백한 남침이었던 것이다.
▲ 흐루시쵸프 회고록 ⓒ 전쟁기념관 캡처
넷째, 후르시쵸프 회고록에 남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소련의 후르시쵸프 대통령이 쓴 회고록에서 "역사를 위해 진실을 말하겠다. 6.25는 김일성 계획하에
스탈린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기습 남침전이다."라고 기록하였다.
다섯째, 옐친문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2000페이지에 달하는 6.25관련 문서를 전달했다.
여기에는 1949년 1월부터 1953년 8월까지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이 주고받은 문서가 수록되어 있으며 김일성의 남침계획, 스탈린의 3단계 지원계획, 중공군의 개입계획 등이 수록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대한해협 해전, 후르시쵸프 회고록 그리고 옐친문서를 받는 사진이다.
▲ ⓒ 국가기록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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