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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전시작전통제권우리가 한미연합사를 통한 연합 국방을 그만두고 단독 국방(單獨國防)을 한다면 세계가 비웃을 일이다
  • 김성만 제독
  • 승인 2016.06.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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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캡처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前) 대표가 24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박근혜 대통령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들고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이날 ‘6·25 66년,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을 생각한다’는 글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우며 전쟁 영웅으로 불린 고(故) 김영옥 대령의 일대기를 소개했다. 이어 문 전 대표는 “김 대령이 한국전 중부전선에서 중상을 당해가며 전공(戰功)을 세우던 그 시기, 우리 군 일부 고위 지휘관들은 연전연패해 전선을 무너뜨리고도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지휘하던 군단이 궤멸되고 전선을 무단이탈한 지휘관도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 군 작전권이 미군에 넘어가는 빌미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며 전시작전권 문제로 이어갔다.
그는 노무현 정부(2003.2~2008.2)에서 전작권을 환수하려던 것을 거론하며 “종전 후 60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군이 외쳐온 목표는 한결같이 자주국방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작전권을 미군에 맡겨놓고, 미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약한 군대, 방산 비리의 천국… 이것이 지금도 자주국방을 소리 높여 외치는 박근혜 정부의 안보 현주소”라고 했다.
문 전 대표가 말한 것이 맞는가? 전작권 문제는 사실과 많이 다르다. 자세히 살펴보자.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 전 전선에 걸쳐 기습공격으로 6·25전쟁(한국전쟁)을 도발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27일 결의안 제1511호(유엔의 對북한 군사제재 결의)를 채택하고 유엔 회원국에 한국 파병을 요청했다. 유엔 안보리는 7월 7일 영국, 프랑스 등 파병 희망국 요구에 따라 결의안 제1588호(유엔군사령부 설치 및 단일 지휘체계 결의)를 채택했다. 미국은 유엔결의(미국이 사령관 임명)에 따라 맥아더 극동군사령관(일본 동경)을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당시는 작전지휘권이라 부름)을 유엔사로 이관하는 서신을 발송했고, 유엔사는 이를 수용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렇게 신속히 전작권을 이관한 것은 그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체류 독립운동 중 2차 대전에서 연합국(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전쟁 지도하는 것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연합국이 승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단일 사령부를 통한 지휘통일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유럽 전선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은 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하여 초기에는 프랑스군이 사령관을, 이후에는 미군이 사령관을 맡았다. 연합국은 전사(戰史)의 교훈으로 ‘지휘통일(Unity of Command)’를 전쟁 원칙에 포함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11개국은 2차 대전 직후 나토(NATO)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전작권을 사령부에 위임했다. 1990년대 초에 소련이 붕괴하고 바르사와(Warsaw) 조약기구가 해체된 이후에도 나토사령부는 존속하고 있다. 현재는 28개국이 가입하고 있다. 이렇게 각국이 연합사 창설을 선호하고 전작권을 여기에 맡기는 이유는 전쟁 억제를 보장받고 전시에 승리하기 위함이다.
전작권은 ‘군사주권’, ‘자주국방’과는 상관이 없다. 군사주권(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은 국가 고유의 권능으로 어떤 경우에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환할 수 없다. 현 한미연합군사령관의 ‘작전통제권’은 대통령(국군통수권)-국방장관(지휘권)-합참의장(작전지휘권)의 하위 개념으로 연합작전 자체에 국한되는 아주 제한된 권한이다. 두 개 국가 이상의 군대가 단일사령부 하에 지휘통일을 이루면 전투력이 4배 이상으로 강화된다는 학설이다. 한국戰, 걸프戰, 이라크戰, 아프간戰, 코소보戰에서 연합사를 창설하여 승리했다. 베트남戰에서는 연합사를 창설하지 못해 결국 패배했다. 자주국방의 정의는 “한 국가가 자국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국가방위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자주국방을 하고 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한국을 포함하여 전투부대 파병국(미국, 영국 등 16개국)은 전작권을 유엔사로 이관하여 전쟁을 수행했다. 중국은 1950년 10월 25일 한국전에 참전했다. 중국과 북한은 12월 4일 중·조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중국군이 사령관을 맡았다. 중국군과 북한군(조선군)은 연합사를 창설하기 전에 적아식별(敵我識別)의 어려움 등으로 2회 상호 교전(交戰)하는 불상사를 당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김일성)을 설득하여 연합사를 창설하게 된 것이다. 양국군은 중·조연합사 창설 후 전투력이 강화되어 1951년 1월 4일에는 서울을 점령했다.
정전협정(휴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에 서명되었다. 미국 등 전투부대 파병국(16개국)은 당일 미국 워싱턴DC에 모여 북한이 재(再)남침시 유엔사에 파병하기로 약속했다. 유엔군사령부를 서울에 유지하기로 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1953년 10월 1일 미국에서 서명되었다. 방위조약이 발효된 1954년 11월 17일에 체결된 한미 합의의사록의 제2항에 “국제연합사령부(유엔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국제연합사령부(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 하에 둔다”고 명시되었다. 이후부터 한국군에 대한 전시·평시 작전통제권을 유엔사가 행사하게 되었다.
휴전 이후 미군을 제외하고 참전군이 철수함에 따라 유엔사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했다. 한국은 1967년~1976년 북한의 전쟁 같은 무력도발, 제1·2남침용 북한땅굴 발견, 자유월남 패망, 주한미군 전면철수 결정 등에 직면하여 ‘전쟁억제, 주한미군 철수 방지, 미국의 자동 참전’을 보장하기 위해 유엔사와는 별도의 한미연합작전 기구 창설을 미국에 요구했다.
이의 결실로 한미연합군사령부가 1978년 11월 7일 서울(용산)에 창설되었다. 한미연합사는 유엔사로부터 한국군과 미군에 대한 전·평시 작전통제권을 인수하고, 유엔사는 정전협정 관리 임무만 수행하기로 했다. 한미연합사는 양국군이 동수로 편성되었다. 한미연합사는 나토연합사를 벤치마킹했다. 사령관은 유엔사와의 관계, 첨단 미군 증원전력의 규모(한국군의 9배 전력), 미군의 전장지휘능력 등을 감안하여 미군이 맡고 있다. 한미연합사는 이후 북한의 무력도발을 거의 억제했다. 한국은 안보가 튼튼해져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G20국가가 되었다. 국방비를 절약하게 되었다(1970~1980년대 국방비는 GDP의 5~6%⟶ 현재는 GDP의 2.4~2.7%).
한국군은 1994년 12월 1일 한미연합사로부터 ‘평시 작전통제권’을 인수했다. 당시 전작권을 행사하는 한미연합사가 평시에 있을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전시 창설에는 많은 기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한반도 전쟁 양상은 초전이 중요함을 감안하여 존속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양국 대통령이 한미연합사의 평시 임무로 부여한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은 ① 전쟁억제, 방어 및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연합 위기관리 ② 작전계획 수립 ③ 연합합동교리 발전 ④ 연합합동 훈련 및 연습의 계획과 실시 ⑤ 연합 정보관리 ⑥ C4I 상호 운용성이다. 한미연합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기구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2003.2~2008.2)는 정권 초기부터 한미동맹 조정의 일환으로 한미연합사 해체(전작권 전환)를 추진했다. 한미정상(노무현-부시)은 2006년 9월 14일 회담에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재향군인회(회원 850만 명)와 성우회(예비역 장성 2천여 명)는 ‘한미연합사 해체반대 1천만 명 서명운동본부’를 2006년 9월 29일 결성하고 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안보단체는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평시 전쟁억제 곤란, 국지도발 대응 곤란, 주한미군 전면철수 가능성, 미국 핵우산 보장 곤란, 전시 전승(戰勝) 불가, 북한 전면전 도발 시 미국지원 불투명’이 예상된다고 설득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2007년 2월 23일 한미국방장관(김장수-게이츠)회담에서 2012년 4월 17일에 한미연합사를 해체(전작권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11월에 개최된 제39차 SCM(김장수-게이츠) 공동성명에 ‘한미연합사 해체 이전에 유엔사와 한국군간 정전관리 책임조정을 완료하기’로 명기했다.
안보단체가 경고한대로 한미연합사의 기능(전쟁억제 위기관리 등)은 나날이 약화되어 갔다. 북한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북한은 한미연합사 해체(전작권 전환) 작업이 65% 이상 진행된 2010년에 천안함과 연평도를 공격했다. 이는 전쟁도발행위에 해당하는 공격으로 휴전이후 가장 큰 사건이다. 한국군과 한미연합사는 속수무책으로 기습을 당했다. 도발 직후 한미연합작전도 수행하지 못했다. 안보단체는 2010년 5월 25일 1천7만 명 서명을 달성하고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를 한미정부에 건의했다. 이명박 정부(2008.2~2013.2)는 이를 근거로 전작권 전환의 연기를 추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6월 26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캐나다)에서 전작권 전환일자를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2013.2~2018.2)는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2월 21일에 국정과제에 전작권 전환 2015년 12월 추진을 확정했다. 그런데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2012.12.12), 3차 핵실험(2013.2.12), 전쟁도발 위기(2013.1~4) 조성 및 핵공격 위협을 가해왔다. 이때 한미연합사가 전쟁억제를 위해 미국의 전략자산을 긴급히 한반도 투입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안보단체의 건의를 받아들여 2013년 5월부터 전작권 전환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25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청와대)에서 전작권 전환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국방장관(한민구-헤이글)은 2014년 10월 23일에 개최된 제46차 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추진’을 합의했다. 우리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한미연합사 해체) 년도를 2023년경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정부가 한미연합사 해체(전작권 전환)를 추진해야 하는가? 추진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오늘날 초강대국인 미국도 나토연합사를 통한 연합 국방(聯合國防)을 하고 있다. 한국군의 재래식 전투력은 북한군의 약 80% 수준이다. 북한은 여기에 더해 핵무기, 화학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미연합사를 통한 연합 국방을 그만두고 단독 국방(單獨國防)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세계가 비웃을 일이다.
미국의 트럼프(공화당) 후보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유는 전작권 전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노무현 정부가 부시 정부(공화당) 때 이를 끈질기게 요구하여 관철한 일로 트럼프 진영이 모를 리 없다. 당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한미동맹을 태국 수준을 격하하고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약 우리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고집한다면 국가소멸까지 걱정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 대선(2016.11) 이전에 오바마 정부(민주당)를 설득하여 전작권 전환계획을 폐기해야 한다.
김성만 /예, 해군중장(재향군인회자문위원․안보칼럼니스트, 前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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