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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10년, 보수10년 정권이 가져온 대학생의 통일관 변화 ② 김대중 정부1998~2017년 사이의 주요일간지를 토대로 분석한 대학생의 통일인식 변화와 전망 예측
  • 고호준, 류석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4학년
  • 승인 2016.11.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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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김대중 정부
2.1. 김대중 정부의 통일 정체성
김대중 정부 출범 이전 남북관계는 매우 경직되어 있었다. 1990년 북한의 남침용 제4땅굴 발견, 1996년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잦은 북한의 대남 도발로 남북한의 신뢰도가 매우 낮았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두 가지 목표를 제시하였다. 첫째, 남북 분단의 현실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자. 둘째, 북한으로 하여금 두려움 없이 변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평화·화해·협력의 기조는 햇볕정책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는 비정치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필수적이다. 또한 햇볕정책의 추진방향은 6가지 기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평화를 중요시하고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대북 봉쇄정책에서 벗어나 포용정책을 추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평화·교류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결국 이 정책이 목표하는 바는 대북정책을 통한 직접적인 통일을 이룩하기 보다는 평화공존 관계를 형성하여 점진적인 평화 통합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정의는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의 증진을 통해 북한의 급변사태를 방지하고 평화통일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적극적인 정책으로 정의할 수 있다. 평화통일을 기반으로 하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 도발 불용, ②흡수통일 배제, ③ 남북 화해협력의 적극 추진이다.’
김대중 정부의 3대원칙은 표면적으로 기존 대북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햇볕정책과 기존 정책과 그 성격을 달리 하는 점은 ‘통일’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이다. 이전 정부까지의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는 통일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통일의 과정에서 민족적 성격과 요소, 통치체제와 화해와 교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다.
햇볕정책에서는 이전 정책에서 부족했던 개념을 고려하여 정책의 궁극적 목표로 ‘통합’을 제시하였다. 햇볕정책은 통일과 통합의 개념을 구분하였다. 따라서 햇볕정책을 남북한 통합정치의 시작점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평화·화해·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분단 상태에서 탈피한 남북한 연방제로서의 통일 연합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적 정책으로서의 역할을 제시하였다.
2.2. 김대중 정권 당시 주요일간지에 나타난 대학생의 통일관
우리는 대학생들의 통일정체성 형성에는 정부정책과 대북관계를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정부정책의 실효성이나, 통일전망, 혹은 통일 그 자체에 대한 논의까지 여러 부분에 있어서 시대마다 정권 변화에 따른 통일 정체성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과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정경분리는 대학생들 사이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특히 기존의 의견이 6.15남북 공동선언 이후에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1999년 3월 20일자 연합뉴스의 설문기사에 따르면 정부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은 무려 84.3%에 달했다. 특히 이 기사에 포함된 내용 중 북한의 군사적 대남도발을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겠다는 의견이 무려 61%에 달했다. 이러한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이는 정상회담의 결과를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사건으로 판단함으로 보인다.
2000년 6월 28일 매일경제에 따르면 대학생의 88.7%가 정상회담을 생산적이었다고 응답했고, 약 78%는 햇볕정책이 통일에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시 대학생강연이 이루어 질 경우 참석하겠냐는 질문이었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도 77.5%로 아주 긍정적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북한과 가까워지고 남북 양자 간의 통일에 대한 의견이 강화 된 만큼 부작용도 따랐다. 이는 한미동맹의 약화와 미국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타난다. 2001년 5월 15일자 한국경제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을 뛰어난 협상가, 정치인으로 보는 시각이 30%로 가장 컸다. 지도자라는 중도적 입장은 27% 독재자라는 부정적 입장은 11%밖에 되지 않았다. 이어 통일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미국의 대북강경태세라는 의견이 41%고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2000년 6월 16일자 서울신문에 따르면 통일을 가장 저해하는 것은 47%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오히려 남북 간의 인식격차는 약 35%로 훨씬 적었다.
하지만 정상회담 직후 증가한 대학생들의 통일 기대치와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의견은 꾸준히 높은 수치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1999년 9월 27일자 세계일보에 나온 통일 시기에 대한 대학생들의 전망은 10년 이상 20년 미만이 약 40%로 가장 지배적이었고, 같은 해 7월 19일자 국민일보에서도 통일소요기간을 같게 보는 의견이 42.3%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기사의 제목이 "대학생, 70% 남북통일 10년 후에나 가능"으로 국민들의 평균 기대치가 10년 안팎으로 크지 않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2001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10년 이내에 통일될 것이라는 의견은 26.1%로 정상회담 직후, 혹은 그 전과 비교하였을 때보다 가시적으로 확연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통일이 안될 것이라는 의견도 10%로 대폭 증가했다. 이는 정상회담 이후 예정되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무산, 금강산 관광사업과 이산가족문제에 차질을 빚으며 회담의 성과와 이후 남북현안들이 매끄럽게 풀리지 못하고 있는 탓으로 풀이된다.
2000년 8월 10일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80%에 육박하는 대학생들이 통일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대학생들 자신이 행복해 질 것이라는 의견은 25%에 불과해 통일과 자신의 행복의 상관관계는 그리 밀접한 연관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통일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견, 통일정체성이 긍정적으로 합치된 경향이 김대중 정부 내내 지속되었고, 정부의 통일정책과 그 논의에 대해서도 높은 지지도를 보이며 단순히 이 시기만 놓고 보았을 때는 통일과 한발 가까워 졌던 순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3. 주요일간지의 보도자료와 정부정책 간의 비교분석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남북 교류·협력 정책의 법제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와 동시에 북한은 계속되는 식량난과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탈피하여 체제유지를 도모하였다. 이렇듯 남한과 북한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수용되고 결국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회담은 2000년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급증하였다. 회담의 개최 횟수가 남북한 간의 관계를 통찰할 수 있는 알림표는 아니지만 남북한 간의 실제적인 접촉과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서의 역할을 한다. 김대중 정부 시기 회담의 추이로 보았을 때, 당시 정부는 북한과의 활발하고 실제적인 대화와 접촉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회담을 바탕으로 사회·문화 방면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진행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남한 내부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갈등이 발생하였다. 남북한 경협 사업과 대북지원 정책의 경제성과 투명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지속되는 교류와 협력에도 불구하고 증강되는 북한의 군비문제와 안보 불감증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정치권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사회 내에서도 남남갈등으로 표출되었다. 또한 6.15 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문제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부재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본질적인 문제의 회피 그리고 결국 대북지원 정책은 ‘퍼주기’라는 비난까지 발생하였다.
또한 비유연적인 햇볕정책의 특성이 그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북한은 1998년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 1998년에 발생한 수차례의 간첩선 침투사건을 저질렀다. 일련의 사건들은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명백한 불이행이자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적 도발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전략 없이 대북지원을 지속하였다.
이는 결국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동맹국인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증가와 독재자인 김정일에 대한 중의적 또는 긍정적 인식의 증가, 그리고 자신의 행복과 통일의 연관성이 낮은 수치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장기적 안목의 부재와 정책 기조로 내세운 진정한 ‘정경분리’가 시행되지 않음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1) 양영식, 『남과북 하나가 되는길』, pp. 27~30 대한매일 신보사
2) 조원만,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평가: 문제점과 개선점』, p.34
3) 1.남북간 대화를 통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 및 실천, 2.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남북경협의 활성화, 3.남북이산 가족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위해 노력, 4.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지원의 탄력적 제공, 5.대북경수로 지원사업의 차질 없는 추진, 6.한반도 평화환경의 조성
4) 통일부, 『햇볕정책의 의미와 추진방향』 p,11
5) 권기웅, 『김대중, 노무현 및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비교 연구』, p.26, 2012
6) 위 논문, p.28
(사) 한국위기관리연구소 2016년 제7회 전국 대학생 국방정책 발표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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