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북한 북한story
(3)김일성 회고록의 진실 (3-2) ‘ㅌ.ㄷ’를 공산주의 단체로 왜곡 선전
  • 블루투데이
  • 승인 2012.09.24 13:36
  • 댓글 0

진보적 민족주의 단체 ‘ㅌ‧ㄷ가입’도 공산주의 단체 ‘ㅌ‧ㄷ결성’으로 왜곡 선전

김일성이 화성의숙 시기에 ‘ㅌ‧ㄷ’(트드), 즉 타도 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는 날조 문제를 살펴보자. 화성의숙은 민족주의단체인 정의부가 창립한 학교였기 때문에 반공이 방침인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 반공단체의 군관학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서적을 읽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회고록에서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그와 그의 동지였던 계영춘 등이 읽었고 그들은 이러한 서적의 영향으로 혁명에 대한 열의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일성과 그의 ‘동지’라는 최창걸, 김이갑, 이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등이 토론을 거듭한 끝에 1926년 10월 17일, ‘ㅌ‧ㄷ’ 즉 타도 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때 채택된 ‘ㅌ‧ㄷ’ 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의 당면과업은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조선의 해방과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며 최종 목적은 조선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며 나아가서는 모든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세계에 공산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의에서는 이 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 방침이 채택되었고 ‘ㅌ‧ㄷ’의 규약 또한 배포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 책임자가 김일성이라는 것은 물론이다.

▲ 'ㅌ‧ㄷ'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주장하는 김일성은 당시 나이 14세에 불과했다. 이는 북한 주민들도 코웃음치는 것으로 역사날조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김일성의 전기를 살펴보면 1968년 발간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 이라는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북한의 모든 서적에서 ‘ㅌ‧ㄷ’는 언급된 적이 없다.
또한 김일성은 화성이숙에 1926년 3월부터 6월까지 있었다. ‘ㅌ‧ㄷ’를 결성했다는 1926년 10월 17일에는 김일성이 화성의숙을 그만두고 화전현 관가를 떠나 멀리 남쪽, 백두산 기슭인 무송에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따지자면 ‘ㅌ‧ㄷ’ 즉 타도제국주의동맹이란 조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해외혁명운동 소사’란 두 권의 서적을 발간했던 최형우는 이 책의 ‘ㅌ‧ㄷ’와 김일성(金日成)이란 대목에서 ‘ㅌ‧ㄷ’와 김일성의 관계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 요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일성은 … 이·회간(이통·회덕양현)을 적지로 정하고 동반(同伴) 이·계 양인과 같이 이·회 의 사회적 중견인 장기명, 이정락, 현균, 김혁, 최천, 문시선 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다 22~23세의 청년으로 급진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신사회 건설에 적응한 학술·사상·문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폭적인 환영리에 김일성은 이 동지들과 악수하였다. 좌우익(左友翼)의 소아병적 경향을 배제하고 ‘ㅌ‧ㄷ’즉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조직하였다.

이 글을 쓴 최형우는 최일천이란 별명을 가지고 1930년 가을 장춘(長春) 서쪽 회덕현 오가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자이다. 그는 회덕현에 있으면서 김일성이 이·계 양인과 오가자에 오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한다.

그가 있었던 회덕현 오가자와 이통현 고유수는 1930년 당시 정의부의 후계조직인 국민부(國民府)의 근거지들이었다. 반공단체인 국민부에 소속하고 있었던 장기면, 이정락, 현균, 김혁, 최일천, 문시선 등은 모두 김일성보다 3~4세 나이가 많은 국민부 계통의 선배들이였다. 그들은 당시 약간은 좌경화되어 있었으나 공산주의운동을 하던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국민부 산하의 남만 한인청년총동맹의 간부들이었다.
한편 김일성이 든 최창걸, 김이갑, 이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등도 1929년 무렵에 모두 남만 한인청년총동맹 (약칭 : 남만청총) 의 간부가 된 청년들이다.

그들이 1926년 당시 공산주의자였다면 29년, 30년에 남만청총의 간부로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1926년 무렵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도 사실 김일성보다 3~4세 나이가 많았다.
1967년 김일성은 북한에서 박금철 등 옛 ‘동지’들을 숙청 한 뒤 자기 혼자만이 ‘진정한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행세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자 마르크스·레닌주의 계통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공산주의자’ 김형직의 뜻을 받들어 항일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1925년 결성된 조선공산당의 계통이 아닌 것을 명백히 하기 위해 민족주의단체인 국민부 산하에 있었던 남만청총 계통의 청년들이 1930년에 만든 ‘ㅌ‧ㄷ’를 마치 자기가 1926년에 결성한 것으로 왜곡하고, 이 조직이 공산주의 강령을 가진 공산주의 단체라고 조작하여 선전하기 시작했다.

▲ 북한 청년학생들이 ㅌ.ㄷ 결성 80주년(2006년)을 맞이하여 평양시내에서 횃불행진을 하며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이러한 조작은 최형우의 저작 하나만 보아도 그 허위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조선로동당은 현재 자기 당이 ‘ㅌ‧ㄷ’의 ‘전통’을 이어받은 당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 당은 허구적인 ‘ㅌ‧ㄷ’의 계승자같이 행세한 적이 있었다고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회고록 제2장은 김일성의 화성의숙 시기뿐만 아니라 이 학교를 중퇴한 이후 모친 강반석이 살던 무송에서 한때 지낸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새날소년동맹’과 ‘반일부녀회’의 상부조직은 공산계 아닌 민족계 정의부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1926년 10월 그가 ‘ㅌ‧ㄷ’를 결성한 후 얼마 안 되어 이 학교를 중퇴하고 무송으로 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은 1926년 3월에 화성의숙에 입학했으며 6월에 중퇴했다. 그는 1926년 6월 부친이 사망한 후 무송으로 돌아가 사실은 7월 이후 반년 동안을 무송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1926년 12월 15일 무송에서 ‘새날청년동맹’을 조직, 12월 26일에는 그의 모친 강반석이 ‘반일 부녀회’를 결성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도 ‘ㅌ‧ㄷ’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조직의 영향 하에 소년동맹이나 부녀회가 조직되었다는 것도 허구임이 분명해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어떤 조직이든 상부조직이 있어야 하부조직이 생길 수 있다. ‘새날 청년동맹’이나 ‘반일 부녀회’는 그 상부조직이 ‘ㅌ‧ㄷ’일 수가 없다. 그 상부조직은 마땅히 정의부(正義部)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당시 정의부 계통이었다. 그가 무송에서 소년조직에 관여했다면 그것은 정의부의 ‘새날 소년동맹’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이 동맹을 ‘결성’하였다는 말은 꾸며낸 것이다.

회고록에서는 이 무렵 여성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이관린(李寬麟)이 무송의 강반석 집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정의부, 국민부 계통의 민족주의자였고 남만에서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힘쓰던 활동가였다. 따라서 강반석이 결성했다는 ‘반일 부녀회’는 그가 아니라 이관린이 조직한 것으로 보인다. 이관린이 김형직이 죽은 후 생계에 여유가 있었던 강반석의 집에 머물며 조직활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안보단체 블루유니온에서 운영하는
블루투데이 후원도 소중한 애국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취재원과 독자는 블루투데이에 반론, 정정, 사후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요구처 : press@bluetoday.net

블루투데이  blue@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블루투데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탈북 가족 여정 그려낸 영화 ‘유토피아’···美 600여 개 극장서 개봉
탈북 가족 여정 그려낸 영화 ‘유토피아’···美 600여 개 극장서 개봉
한미일 정상 “공동의 이익과 안보의 위협에 대해 신속 협의…정상회의는 연 1회 이상”
한미일 정상 “공동의 이익과 안보의 위협에 대해 신속 협의…정상회의는 연 1회 이상”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