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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대표적인 대남공작 사례> 이선실과 장기 토대구축 공작
  • 블루투데이
  • 승인 2012.09.2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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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자료사진

이선실과 장기 토대구축 공작

1970년대~1980년대 중반까지는 이미 전부터 진행해 오던 연고선 공작과 함께 장기 토대구축 공작을 병행하였다.

이 시기 북한의 대남공작은 과거에 비해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것은 남한의 통치체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정희 통치체제가 안정되었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도 19876월 민주화투쟁 이전까지는 남한의 대북정보 및 수사기관들의 활동이 강력하고 활발했기 때문에 북한이 적극적인 공작활동을 전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공작은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많은 재일교포들이 북한에 포섭되어 유학이나 사업상 명목으로 남한에 침투해 공작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해외에 체류하고 있던 많은 거물급 인사들을 포섭하는데도 성공하였다. 전 외무부장관 최덕신과 국제태권도연맹 회장 최홍희, 동백림사건 관련자이자 유명한 음악가인 윤이상과 재독학자 송두율 등은 6·70년대 북한의 해외공작원들에 의해 포섭된 인물들이다.

이선실 역시 일본에 침투하여 공작활동을 하면서 1970년대 말에는 재일교포의 신분을 도용해 호적을 취득하는데 성공하였으며, 19804월 영주귀국 형식으로 입국해 199010월까지 10년간 장기 잠복하여 공작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이선실의 임무는 취득한 호적을 이용해 남한에 장기 잠복할 수 있는 거점을 구축한 다음 운동권 핵심 인사들을 파악해 향후 전쟁이나 폭동 등 결정적 시기가 도래할 경우 그들을 노동당원으로 입당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앞으로 노동당원이 될 만한 대상들을 파악해 눈도장 찍어 놓고 결정적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선실은 남한 사람의 호적을 취득함으로써 장기 토대구축 공작 여건을 마련한 공적을 인정받아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북한은 1980년대 초반 남한에서 반미의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반미·반정부 투쟁을 고조시키기 위한 공작도 전개하였다. 19839월에 발생한 대구미문화원 폭파사건은 북한 공작부서가 남한에서의 반미의식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남파공작원들을 시켜 감행한 테러행위였다.

이 덕기 (전 기무사 방첩단장/ 현 충호안보연합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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