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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회고록의 진실 (4) 북한 공식기록도 그때그때 다른 길림시절 행적
  • 홍성준 기자
  • 승인 2012.09.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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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1권 제30장은 10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김일성의 길림성 이야기이다. 1927년 초부터 1930년 5월까지 그는 길림에 있으면서 육문 중학교에 다녔고 길림감옥에 투옥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26년 그의 행적을 보면, 회고록에서는 1926년 전반기에 무송에 있었다고 적혀 있고, 후반기에는 화전현 관가와 무송에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는데 실제 행적은 1926년 3월과 6월까지는 화성의숙에, 그 후에는 무송에 있었다.

이처럼 김일성은 그때그때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형편과 여건에 따라 과거의 실제 행적까지 멋대로 왜곡하고 있다. 전기에서도 그의 길림시절이 사실과 달리 상당한 왜곡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이 함경북도 나선시 나진 미술관에서 촬영한 1920년대 중국 동북지역에서 혁명활동을 시작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담은 '김일성 초상'이다. ⓒ 글로브 앤 메일 사진 캡쳐

북한 공식기록 간에도 엇갈리는 길림시절 행적

이러한 사실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선, 1952년의 김일성 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봐야 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길림 육문중학교 재학 당시인 1926년에 김일성장군은 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였다. 그는 벌써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진보적 청년들을 비합법조직으로 있는 공산청년동맹에 집결시키는 일에 헌신분투하였다…
김일성장군은 학생들 속에서 공산청년동맹사업을 전개하고 맑스-레닌주의사상을 선전한 혐의로 중국 반동군벌에게 체포되어 1927년부터 1928년까지 길림감옥에 투옥되어 옥중생활을 하게 되었다…
김일성장군은 출옥된 후… 간신히 다시 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게 되고 1928년에 중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중학을 졸업한 후 그는 공산청년 동만특별구 비서로 비밀리에 활동하였다”

그러나 ‘세기와 더불어’는 이와는 전혀 다른 김일성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그는 1926년이 아닌 1927년 초에 길림으로 가서 육문중학교에 입학했고, 그 후 길림소년회 유길학우회, 반제청년동맹,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등을 차례로 조직하였고, 다양한 혁명 활동 끝에 1929년 가을 길림감옥에 투옥되어 1930년 6월에야 출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양쪽 전기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우선 이러한 왜곡사실 중에서 두 문제만 짚어보도록 하자.

우선 회고록에는 김일성은 1927년 1월 중순 무송을 떠나 길림으로 가서 그곳 독립운동가의 소개로 직접 길림육문중학교 교장 이광한을 만나 그냥 2학년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 그가 2학년에 그냥 편입되었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1930년 11월경 회덕현 오가자 에서 김일성과 같이 지냈던 이선일 씨는 해방 후 한국에 와서 살았는데, 이선일 씨는 한때 마적의 무리에 들어가 있었던 김일성을 1927년에 민족주의자들이 빼내어 봉천에 위치한 평단중학교에 입학시켰다는 증언을 했다. 이씨가 1927년, 평단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김일성은 이미 퇴학하고 없었지만 후에 오가자 에서 이 점을 김일성에게 확인하였더니 그도 그것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의 중학교는 8월 하순에 1학기가 시작되어 6월 하순 2학기가 끝났다. 따라서 이선일 씨는 1927년 8월 하순에 평단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김일성이 이 중학교를 중퇴한 사실을 알았다. 김일성이 육문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려면 1927년 6월까지 평단중학교 1학년으로 있었다가 8월에 길림으로 옮겨 전학수속을 밟아야 했을 것이다.

이선일 씨의 이 증언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김일성이 평단중학교를 중퇴하려면 최소한 1926년 8월에는 이 중학교에 입학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씨는 민족주의자들이 마적 떼에 가담하고 있던 김일성을 빼내어 이 중학교에 입학시켰다고 증언했다. 김일성은 김형직이 죽은 후 한때 마적 무리와 어울렸는데, 김형직을 잘 아는 민족주의자들이 그의 아들인 김일성을 구출하여 중학교에 보냈다는 것이다.

▲ 김일성이 다녔던 길림 육문중학교

따라서 1926년 12월, 그가 무송에서 ‘새날소년동맹’을 결성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또 김형직이 공산청년의 테러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김일성이 모르는 것도 그가 마적 무리에 가담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김일성은 1927년 초가 아닌, 1927년 여름, 길림 육문중학교 2학년에 편입된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해 1월부터 8월까지 그가 길림에서 ‘활동’ 했다는 것도 조작된 것이 확실한 것이다. 실제로 1927년 1월부터 8월까지 그가 길림에서 활동한 것을 목격했거나, 북한이나 중국에서 이에 대한 회상을 김일성에게 써준 사람은 지금껏 단 한명도 나타나 있지 않고 있다.

길림 감옥생활 전개내용 또 달라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1927년 가을 반동군벌에게 체포되어 길림감옥에 투옥되어 1930년 7월에 출옥했다는 것을 ‘반일투쟁 업적’이라며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1952년 전기에서는 그가 투옥된 기간이 1927년부터 1928년까지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서는 1927년부터 30년까지로 투옥기간을 2년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혁명가의 업적으로 가장 자랑할 만한 투옥 경험을 제멋대로 조작하여 27년부터 30년 6월로 변경하여 1952년의 전기와 1992년의 전기가 각각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1929년 입옥되었다고 그가 27년 입옥을 직접 부인한 이상, 27년부터 28년까지 투옥되었다는 52년 전기의 서술은 새빨간 거짓말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29년 입옥설도 사실은 날조라는 점이다.

그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소개 해본다.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다.

“…나는 출옥날자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때 우리가 생각한 방법은 단식투쟁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비장한 결심을 하고 투쟁에 들어갔다.…
감옥 밖에 있는 동무들도 우리의 출옥투쟁을 적극적으로 방조해 주었다.… 군벌당국은 굳게 단결된 우리의 투쟁 앞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나는 1930년 6월 초에 길림감옥을 나섰다.”

한편 1931년 9‧18사변이 있은 직후 길림감옥에 들어가 일본제국주의가 ‘선심’을 베푼다며 수인들을 석방한 일본 군대는 ‘길림 제1감옥 재감선인(在監鮮人)의 단식투쟁 결행에 관한 건(件)’ 이란 기록을 남겼다. 1931년 8월 28일의 기록인데, 김일성이 주장하는 단식투쟁은 1930년 5월이 아니라 31년 8월 25일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한인의 단식투쟁이 이때 한 번 밖에 없었다는 것도 1931년 9월 27일에 쓰인 일본의 다음 기록으로 확인된다.

“입감선인(入監鮮人)은 길림성에 이주하여, 농사에 종사한 자로서 모두 공산당원의 혐의로서 군헌(軍憲)에 취압(取押)당해 입감한 자가 많고 그 중에는 7, 8년의 장기에 걸치는 자도 있어서 입감(入監)이래 거의 취조당한 일이 없었다.”

길림감옥에 투옥된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1931년까지 취조도 거의 받지 않고 방치되고 있었다는 기록이다. 이는 7, 8년간 단식투쟁이란 것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미루어 볼 때 김일성은 1927년의 연초가 아니라 그 해 여름에 길림으로 가서 1929년까지 지냈으며 그동안 그는 감옥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1930년 봄까지 그가 길림에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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