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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증언⑧]무용수의 꿈을 앗아간 북창수용소
  • 블루투데이
  • 승인 2012.10.09 11:56
  • 댓글 0

written by. 이영주


본 내용은 지난 21일 북한정치범 수용소해체본부 주관으로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실시한 ‘죽음의 경계에서 탈출한 12인의 증언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실체를 밝힌다’에 게재된 탈북자 이영주(북창수용소, 1979~1989 수감)씨 증언의 일부 내용임.(편집자 주)

가족사와 들어간 배경

나의 부모님은 모두 고아다. 나에겐 친가쪽, 외가쪽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안 계신다. 다른 일가친척도 찾아볼 수 없다. 유일하게 있는 친척이라고는 중국에 있는 이모 한 분 뿐이다. 뒷바라지 해줄 사람이 없었던 엄마는 스스로의 힘으로 북한 신의주 쪽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도자기 공장에 다니던 아빠를 만났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아이를 낳은 후 아빠는 소련의 임업대표부 번역원으로 들어가 3년 동안 일을 했다. 그러나 귀국할 때쯤 소련말을 잘하는 아빠가 도주를 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그때가 1976년이었다.

1979년 행방불명 된 아빠가 살아있다는 말과 함께 엄마를 따라 아빠를 만나러 간 곳은 18호 북창수용소였다. 나는 그때 당시에 그곳이 수용소라는 것을 모르고 그냥 따라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아빠는 합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탄광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있던 아빠에게 나는 달려가 안겼다. 그리고는 재회의 시간을 만끽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엄마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내가 예술학교 추천을 받고 입학준비로 한창 바쁠 때 수용소로 들어갔다. 무용수가 꿈이었던 나는 예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떼를 썼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떼를 쓰고 울어 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수용소에 수감되었기 때문에 예술학교 입학은커녕 다시는 사회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도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 떼를 쓰니 대동강 강가에서 아빠에게 엄청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아빠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해도 나는 그 당시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왜 부모가 내 앞길을 막는가’ 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하염없이 울고 미워했다. 원하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나는 수용소 이주민으로 등록되어 북창수용소에 정착하게 되었다.

북창 18호 수용소

북창수용소의 사람들은 크게 대우자, 대내, 이주민으로 나뉜다. 대우자는 임명을 받아 수용소에 들어온 간부들을 일컬으며, 대내는 북창수용소 내에서 일을 잘해서 당의 배려로 해제되거나 수감된 사유가 무고한 것으로 밝혀져 해명된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이주민으로 분류하는데 이주민들 사이에서도 아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서로의 대우는 달랐다.

아빠가 없는 집은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가 없는 집들을 보면 아빠의 직업이 하나같이 기술자들인 경우였다. 아빠가 없는 경우를 “아빠가 체포자다”라고 말했다. 그런 집은 가족들 어느 누구도 아빠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왜 내 남편이, 왜 내 아버지가 체포자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방이 철조망이었고 사회와의 왕래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 당시 기차역은 복피, 갈골, 봉창, 심산, 명학, 범골, 잠상 일곱 개가 있었는데 모두 탄을 실어 나르는 기차뿐이었다. 그나마 해제된 사람들이 친척을 방문하러 갈 때 짐차에 일부 탈 곳을 만들어 타고 나가곤 했다. 그러나 증명서를 반드시 구비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제된 사람들이 수용소를 벗어나는 일도 드물었다. 해제된 사람들은 수용소 밖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으면서 살기보다는 수용소 안에서의 대우받는 생활을 택했다. 물론 가끔 이사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친척들이 힘 꽤나 쓰는 사람들이었다.

북창수용소 안에서 작업반은 분조로 되어 있다. 탄광은 중대로 나가고 건설사업소는 반장, 초급당비서, 지배인 이렇게 나가는데 공장은 거의 없고 탄광기계공장이 크게 하나 있었다. 탄광에서 사용하는 기계는 모두 그곳에서 생산됐다. 병원은 하나가 있었는데 탄광기계공장 옆에 위치했다. 그곳 의사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을 모두 데리고 들어와 생활했다. 의사들은 대우자, 즉 국가에서 임명을 받고 수용소 내 병원에 배치되어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18호 안에서 사람들은 주로 탄광 일을 많이 했는데 탄광 작업은 굉장히 고되고 위험했다. 탄광 안에서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났다. 흰 눈동자만 빼고는 모든 신체가 다 검은색으로 물들었기 때문에 사람이 다쳐서 석탄무더기에 떨어져도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수용소에서 생산된 석탄은 모두 북창 화력발전소로 옮겨지는데, 북창 화력 발전소의 기계에서 석탄을 선별하는 작업 도중에 시체를 걸러내는 경우가 빈번했다.

도주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설치된 함정 때문에 도주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외국에 나가서 살지 않는 이상 북한 땅에는 발붙일 곳이 없었다. 18호 북창수용소는 경제범들이 많이 수감되어 있어서 그랬는지, 외부와의 이동만 불가능 했을 뿐, 수용소 내에서의 왕래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회에 비하면 훨씬 가혹한 노동과 처우를 받았으며 배급량도 적었다.

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린 나이에 사회에 대해 좀 더 일찍 깨닫게 되었다. 학교는 다녔지만 수용소 내의 학교만 다닐 수 있었다. 학생들이 강제 노동으로 동원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도 노동을 하기는 했다. 학교 꾸리기라고 하는데 학생들은 매일같이 돌을 손에 들고 머리에 이어 날라야 했다. 물론 수업은 수업대로 진행되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쉬는 시간에 업간체조도 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는 건설사업소로 들어가 미장을 배웠다. 북창수용소 내에는 탄광이 많아서 대부분이 탄광으로 배치가 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졸업생들이 탄광에 배치되지 않기 위해 건설사업소에 많이 지원했다. 다행히도 나는 건설사업소에 배치되어 미장을 하게 되었다. 건설사업소에 있으면서 건설도 많이 했고 아파트도 한번 지은 적이 있다. 18호 수용소는 1동에 4세대가 거주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드문드문 아파트와 같이 높은 건물도 있었다.

북창수용소에서 해제되다

대대적인 해제가 시작된 것은 1982년도 무렵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해제가 진행되면서 17호 봉창수용소에서 해제된 사람들이 북창수용소로 이주했고 18호 북창수용소에서 해제가 안 된 사람들은 17호 봉창수용소로 이동했다. 범골, 잠상까지는 18호 구역이라 대부분 해제가 되었고 봉창은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한 가족이어도 결혼여부에 따라 해제가 되는 사람이 있었고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경우에 아무리 가족이라도 강제로 떨어져야 했다. 사람들은 모두 자동차로 이동했는데 이동하는 인원들이 어마어마했다. 우리가족 같은 경우는 해제가 됐다는 통보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17호로 옮겨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해제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아부와 간섭을 싫어했던 아빠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다 보니 간부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해제는 많이 늦어졌지만 그래도 종내 해제가 되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Konas)

이영주 (북창수용소, 1979~1989 수감)

제공 : 코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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