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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 1978년 10월17일 남침용 제3땅굴 발견북한의 대남땅굴을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
  • 홍성준 기자
  • 승인 2012.10.1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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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된 제 3땅굴의 모습. 현재는 안보관광 코스로 국민들의 안보의식 고취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 판문점트레블센터 홈페이지 캡처

1978년 10월 17일 대한민국을 경악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의 제 3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제 3땅굴은 1974년 9월 5일 북한에서 남침땅굴 측량기사로 일하다가 귀순한 김부성씨의 북한 땅굴공사 첩보를 근거로 1975년부터 3여 년간 시추작업을 통한 땅굴 징후를 포착하다가 1978년 6월 10일 시추공 중 1개가 폭발함으로서 역갱도 굴착 공사를 실시, 1978년 10월 17일 적갱도에 관통하여 판문점 남방 4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95m, 높이 2.1m, 깊이 지하 73m, 길이 약 1.6km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현재 북한군이 파 놓은 땅굴로 발각된 것은 제1,2,3,4땅굴이 있으며 서부전선 지역에 2개(제 1호, 제 3호 땅굴), 중부전선 지역에 1개(제 2호 땅굴), 동부전선 지역에 1개(제 4호 땅굴)이 발견되면서 북한이 전 전선지역에서 남침용 땅굴을 파내려왔음을 입증하게 되었다. 이 중 서울과 가장 가까운 땅굴이 제3땅굴이다.

▲ 북한의 대남땅굴 중 제 3땅굴이 서울과 가장 근접해 있다. ⓒ 누리꾼 블로그 화면 캡처

제 3땅굴은 서울에서 불과 52km 거리에 있어 기존에 발견되었던 제1, 2땅굴보다 훨씬 위협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땅굴은 완전무장한 북한군 4명이 동시에 줄을 맞춰 이동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는 규모로서 서울에서 승용차로 4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34년 전 10월 17일 발견된 제 3땅굴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귀순자 김부성씨가 “나는 측량사로써 남쪽에 있는 저 미루나무를 향하여 땅굴을 팠다”는 진술이 단서가 되어 한미 합동으로 수년간 시추공을 뚫으며 땅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땅굴이 발견되지 않자 군 수사당국은 김부성에게 “허위 정보가 아니냐” 고 추궁했고, 김부성은 “틀림없다” 며 전방지역을 수색하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 제 3땅굴을 발견한 당시 전두환 1사단장이 베시 유엔군사령관과 땅굴속에서 북괴 침투로를 파악하고 있는 사진 ⓒ 경향신문 기사 화면 캡처

그 후 새벽에 갑자기 시추공속에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시추공에 박아놓은 플라스틱 파이프가 공중으로 솟구치고, 시추공속의 고인 물이 빠지는 바람이 제3땅굴을 찾기 위한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 기술진이 현장조사를 실시했으나 갱도와는 무관한 현상으로 밝혀지게 된다. 당시 1사단장인 전두환 소장은 주요지휘관 회의 때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보고하여 무조건 땅굴을 찾도록 지원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왔다.

이에 따라 전두환 사단장의 집도하에 땅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열의가 더해져 북한의 기습남침용 제 3땅굴의 실체가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발견 당시 북한은 제 3땅굴이 남측이 북침용으로 뚫은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땅굴 내부에 굴을 뚫을 때의 폭파흔적(장전공)이 남쪽을 향해 있고, 들켰을 시 탄광인 줄 알고 팠다는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땅굴에 석탄가루를 묻히는 등의 증거들로 인해 북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제3땅굴 5개 남측 출구 상상도 ⓒ 판문점트레블센터 홈페이지 캡처

또한 제3땅굴의 작업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고 그 해 8월 30일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제7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등 북한의 평화공세가 지속되는 와중에 계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북한의 땅굴은 전면전이 벌어졌을 시 대량병력의 신속한 이동을 통해 우리 중요 전략지역을 급습하여 점령하며, 사회혼란이나 무장폭동 발생 시 즉각적인 게릴라부대를 침투시켜 국가전복을 획책하고, 대남간첩의 침투와 불순세력에 대한 무장지원 등으로 판단된다.

단 한 번도 대남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평화만을 강조하며 북한과의 무조건적인 대화만을 앞세우는 정치세력들이 집권한다면 대한민국은 스스로 북한의 인질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도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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