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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 ②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발생 원인은...
  • 박철호
  • 승인 2019.01.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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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당시국군들 (국가기록원)

전쟁포로의 억류국은 「제네바Ⅲ협약」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하고 적대행위가 종료되면 상대방과의 협의를 통하여 지체 없이 송환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전쟁 개전 초기의 자발적 「제네바Ⅲ협약」 준수 선언을 미이행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군과 유엔군 포로들에게 비인도적인 대우를 하였다. 이러한 북한 측의 태도로 인해 포로송환에 관한 장기간의 휴전회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원이 북한에 강제로 억류된 재 남게 되었다.

휴전회담에서 유엔군 측은 표로의 송환문제에 대해 자원자(自願者)에 한정된 자원송환(voluntary repatriation) 을 주장하였고 공산 측은 전체 포로의 강제송환(compulsory repatriation)을 주장하였다. 

국군포로의 북한군 강제입대 문제는 당초에는 중요 쟁점 중의 하나였지만 위에 언급한 송환방식에 관한 지루한 협상 과정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결국, 유엔군사령부는 당시 82,000 여명 이상으로 추정하였던 국군 실종자 중 일부인 8343명만을 송환받고 협상을 종결함으로써 포로 송환문제를 완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군에 사로잡힌 중공군 포로

포로송환 협정의 체결

1951년 7월 10일 개막된 휴전회담 제1차 회담에서 유엔군 측은 ‘국제적십자위원회 (ICRC ;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대표의 포로수용소 방문 문제’와 ‘전쟁포로에 관한 협의 사항’ 등 9개 의제를 제시하였으나, 공산 측은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의 포로수용소 방문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7월 26일 제10차 회담에서 ‘포로에 관한 협의’ 등 5개 항의 의제에 합의하였다.

그해 11월 27일 제28차 회담에서 쌍방은 포로 문제를 본격적으로 협의하기로 합의하고, 12월 11일 포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합동분과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최초에 유엔군사령부는 전체 포로의 1:1 교환을 원칙으로 정하고 전체 포로의 명단교환 및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의 포로수용소 방문 등을 요구하였으나, 공산 측은 “쌍방이 억류하고 있는 모든 포로를 정전협정 조인 후 즉시 석방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

그 뒤 포로의 명단과 자료를 교환하는데 합의한 쌍방은 1951년 12월 18일에 억류 중인 포로명단을 교환하였는데, 공산 측이 제시한 명단은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추정 하고 있던 실종 인원수 99,500명보다 훨씬 적은 11,559명 (한국군 7,142명, 유엔군 4,417명)이었다.

반면에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공산군 포로는 총 132,474명 (북한군 95,531명, 중공군 20,700병, 남한 출신 16,243병)이었다. 유엔군 측은 1952년 l윌 28일 그동안 민간인수용소로 옮겨진 민간인 394명을 제외한 132,080명으로 수정 제시하였다.

1952년 1월 이후 유엔군 측은 포로의 희망에 따라 송환 여부를 결정하자는 ‘자원송환’을 포로송환의 원칙으로 제사하였다. 이는 공산측이 국군포로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전선 석방을 택하거나 북한군에 자원입대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자유 선택의 원칙’을 적용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공산 측은 2월 3일 강제송환’ 즉 ‘전체 대 전체 송환’을 포로송환 원칙으로 제시하였다. 그 후 쌍방은 포로송환의 원칙과 포로명단을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함으로써 포로교환 문제는 휴전회담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었다.

한편, 1952년 6월 말까지 유엔군사령부는 공산 측 포로에 대한 면담과정을 통해 송환을 희망하는 공산군 포로인원을 83,071명으로 파악하였다. 1953년 6월 8일‘ 중립국 송환위원회에 대한 권한위임사항’ 등을 포함한 「포로송환 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본국으로 복귀를 원하는 모든 전쟁포로는 60일 이내 송환

② 송환에 영향을 미치거나 송환을 막기 위해 힘에 의한 위협의 사용을 금지

③ 60일 이후 나머지 포로는 중립국송완위원외에 인도

④ 그 후 90일 동안 포로 소속국가의 파견 대표가 본국으로 복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설명 실시

⑤ 설명은 중립국송완위원회 대표와 억류 측 대표의 면전에서 실시

⑥ 90일 기안이 마감되면 송환거부 포로는 정치회담으로 인도되며 30일 이내에 결정을 내림

⑦ 그 기간 이후에도 남는 송환거부 포로는 민간인 신분으로 규정

⑧ 만일 그들이 중립국으로 가기를 희망한다면 중립국 송환위원회가 후원

이에 따라 양측은 7월 22일 최종적인 포로 숫자를 상호 통보하였는데 유엔군사령부는 74,000명(북한군 69,000명, 중공군 5,000명)을, 공산 측은 12,764명(한국군 8,186명, 유엔군 4,578명)을 각각 통보하였다. 7월 25일 쌍방은 각각 비무장지대의 남 · 북쪽에 포로접수 장소를 지정하고 필요한 수용시설을 설치하는 수정안에 합의하였다.

상병(傷病)포로 교환

1952년 12월 13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제네바Ⅲ협약」에 따라 상병포로의 즉각적인 송환조치를 요구하는 결 의안을 재택 하였다. 이에 유엔군 측은 1953년 2월 22일 상병포로의 즉각 송환을 제의하였고 공산 측이 3월 28일 이 제의에 동의함에 따라 4월 6일부터 상병포로 교환문제의 토의를 시작하여 4월 11일 「상병포로 교환협정」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4월 20일부터 5월 3일까지 상호 교환된 상병포로는 공산 측으로 인계한 인원이 6,6,70명 유엔군 측이 넘겨받은 인원은 684명이었다.

<국군포로의 실상과 대책 -국방부 자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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