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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돌아오지 못한 군군포로
  • 박상준
  • 승인 2019.02.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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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수호를 위해 교복을 입은 채 앞 다투어 참전한 학도의용군

돌아오지 못한 군군포로

휴전을 전후하여 유엔군사령부가 포로송환을 통해 인도받은 국군포로는 8,343명이었다. 당시의 혼란한 상황하에서 포로의 현황파악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공산 측이 인도한 국군포로의 숫자와 당시에 유엔군사령부와 우리 정부가 추정했던 포로 숫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북한은 1950년 12월 30일 평양방송을 통하여 국군과 유엔군 65,000명을 포로로 잡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 숫자에서 송환된 13469명을 제하면 억류된 포로는 51,000여 명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이 발표한 포로 숫자는 퇴각하는 시점에서 인민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과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후에도 정전협정 체결 시(1953년 7월)까지 2년 7개월 이상 전쟁이 계속되었다는 점, 특히 1·4 후퇴로 부터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까지 우리 쪽이 입은 막대한 손실이 반영되지 않은 숫자라는 점 때문에 정확한 자료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중국이 발간한 항미원조전사(抗美援朝戰史)에서는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한 이후 획득한 포로 숫자를 4, 6,523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편 유엔군사령부가 1953년 8월 7일 유엔에 제출한 ‘휴전에 관한 특별보고서 ’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최종적인 국군 포로 및 실종자 수를 82,318명으로 집계하였다.

한편 국방부는 행방불명자 신고와 병적부 확인을 거쳐 최종 집계한 19409명의「6·25 참전 행불자(실종자) 명부」를 1997년 10월에 공개하였는데, 이 실종 인원에는 미송환 국군포로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숫자는 행방불명자 신고를 받아 군적과 대조한 뒤 정리한 것이므로 신고하지 않은 인원은 누락될 수밖에 없고, 군적에 있는 인원만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학도의용군이나 유격대 요원 등은 제외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미송환 국군포로의 숫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며, 많게는 5만∼8만 명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실사 작업을 통해 확인한 국방부 자료를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국군포로의 실상과 대책 -국방부 자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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