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계에선 북한 방송원이라면 리춘희부터 떠올린다. 평생을 북한 정권을 대변했고, 더구나 한 달 동안 잠적했던 그가 다시 나타나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춘희보다 김정일의 신임이 더 컸던 방송원들이 여럿이나 있다.
북한 방송원들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국에 소속돼 있다. 1997년 고난의 행군시기 김정일은 5명의 방송원들에게 일본 닛산 계열 승용차 중 가장 고급형인 “세드리크”를 선물로 주었다. 또한 보통강구역 신원동 “류경호텔” 앞에 있는 이른바 “200세대”아파트를 선물로 주었다. 그 아파트에는 모두 200세대가 입주돼 있는데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사회 각 분야의 인물들로서 항일투사들과 북한의 유명 체육인, 예술인, 방송인, 작가, 과학자들이다.
김정일의 5인 방송원들은 리상벽, 전형규, 최성원, 김주먹, 리춘희였다. 리상벽은 1924년생으로서 1947년부터 평양 라디오방송원으로 활약했던 사람이다. 1966년 잉글랜드8강전 때 현지방송 생중계를 했었고, 1989년 13차세계청년학생축전 때에도 개, 폐막 생중계 방송을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66년에 인민방송원 칭호를, 1972년에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1984년에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 1세대 방송원이다. 고급승용차와 아파트는 리상벽의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두 번째 인물은 김주먹이다. 김주먹은 조선중앙방송 위원회 라디오총국에서 전문 소설 낭독을 하는 성우 방송원이다. 김주먹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6.25전쟁 때 부모 잃은 그녀에게 “반드시 남자처럼 살아서 훗날 꼭 부모원수를 갚아라.”며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김일성이 전쟁고아원을 방문 했을 때 그 이름의 사연을 듣고 그녀를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주었다.
김정일이 당 조직비서 유일비준 제도를 독점하면서 김일성에게 보고되는 모든 문건들을 카세트로 녹음해서 보고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김주먹은 그 수많은 녹음카세트 보고 중 소설 부문을 맡았던 성우 방송원이었다. 소설을 좋아했던 김일성은 김주먹의 목소리를 들어야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며 몹시 그녀를 아꼈다.
세 번째 방송원은 1934년생인 전형규이다. 전형규는 2000년 초반까지도 북한의 간판 남자 방송원으로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국 국장이었다. 김정일은 그를 “나의 목소리”라며 몹시 신임 했다. 방송원은 매일 매일 정부를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은 감기에 걸릴 권리도 없다. 나보다 더 건강해야 한다.”고 김정일이 말했을 정도였다. 전형규는 김정일과 그 최측근들이 치료 받는 봉화 진료소 진료대상이었다.
봉화진료소 진료대상의 여자 아나운서가 또 한 명 있다. 그녀가 바로 전형규 국장 밑에서 부국장으로 있던 최성원이다. 최성원은 아나운서로 있다가 김정일이 최고의 화술인이라고 극찬한 이후부터는 김정일 관련 다큐, 시낭송, 강연자료, 해설자료 등을 전문 녹음하는 이른바 “1호 아나운서”가 되었다. 사실 1호 아나운서는 북한 방송원들에겐 최고의 꿈이며 포부였다. 북한 보도는 주민용이지만 당 문헌영화들이나 1호 시낭송 녹음제의서들은 김정일이 직접 보고듣기 때문이다.
1996년경이었다. 최성원 아나운서가 감기에 걸려 입원한 관계로, 김정일 현지시찰 다큐를 리춘희 아나운서가 녹음 했던 적이 있었다. 최성원의 목소리에 길들여졌던 김정일은 첫 장면부터 불쾌해 하다못해, 도중에 필름을 멈추게 하고 다시 편집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리춘희는 큰 목청으로 성명서나 읽을 목소리이다. 최성원만한 방송원이 안 나오면 큰일이다. 빨리 최성원 같은 여자 후배를 키우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때부터 최성원은 자기 업무와 함께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소속 방송문예총국에 화술지도국을 내오고 후배양성도 하게 되었다. 리춘희는 그 전까지는 방송국 부국장인 최성원 자리를 넘보며 1호 아나운서를 희망했지만, 김정일의 한마디에 보도국 방송원 양성 책임자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의 후배양성 강조를 방송원 세대교체 지시로 판단하고 당시 정하철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이 방송원들을 젊은 사람들로 교체했다. 그래서 1997년부터 북한 중앙TV 보도담당아나운서는 남자는 류동호, 여자는 류정옥으로 바뀌게 되었다.
리춘희는 자기 자리를 차지한 류정옥을 시기했고, 여기에 방송원 후배들이 동참하게 된다. 그 앞장에 섰던 인물이 바로 남자 아나운서인 류동호였다. 류동호는 선배 방송원들이 밀려난 근거로 정하철 위원장과 해주 출신인 류정옥과의 은밀한 관계를 주장하며 당조직부에 신소하였다. 그러나 정하철이 오히려 중앙당 선전선동 부장 겸 비서로 승진하면서 류동호는 북한 방송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리춘희는 가끔 정부 중요 성명서만 읽는 처지로 전락됐다.
그런데 정하철이 2005년 후계문제에 잘 못 개입한 죄로 숙청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중앙TV 보도담당이었던 류정옥도 방송국에서 점차 밀려나게 되고, 다시 리춘희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한 때 리춘희는 목소리를 남용한 죄로 일주일간 자택 혁명화를 받기도 하였다. 북한 방송원들은 정부 목소리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녹음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간부 자녀의 결혼식에서 류동호와 리춘희가 유머스런 이야기를 몇 마디 했었는데 그 내용이 녹음 카세트로 복사되어 유출된 것이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전체 직원들 앞에서 정하철 위원장은 “왜 방송원은 목소리를 밖으로 유출시키면 안 되는가? 외국에서 쿠데타를 할 때 방송국부터 점령하는 그 이유를 모르겠는가. 만약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목소리를 다르게 조합해서 퍼뜨리면 어떻게 하겠는가!”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최근 김정은 후계정권이 들어서면서 젊은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그 아나운서는 부디 국제사회가 바라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장진성기자 2012.02.02 08:01:22
[ 제공 : 뉴포커스 www.newfocus.co.kr ]
안보단체 블루유니온에서 운영하는
블루투데이 후원도 소중한 애국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취재원과 독자는 블루투데이에 반론, 정정, 사후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요구처 : press@bluetoday.net
블루투데이 기획팀 blue@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