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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 묻혔던 계봉우·황운정 독립지사 고국땅에 잠들다보훈처, 두 지사 부부 유해 봉환…서울·대전현충원에 안장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19.04.22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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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봉우 선생[보훈처 제공]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던 계봉우(1880.8∼1959.7) 선생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황운정(1899.9∼1989.12) 선생 등 2명의 독립지사가 고국땅에 묻혔다.

국가보훈처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계봉우·황운정 지사의 유해를 21일 오후 5시 40분(현지시각)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공항에서 봉환식을 한 후 국내로 봉환한다고 밝혔다. 두 선생의 부인 유해도 이번에 함께 온다.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독립지사의 유해 봉환은 이번이 처음으로, 유해는 22일 오전 7시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서울공항에서 귀환한 독립지사 유해에 예의를 표시할 계획이며 이어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국립묘지로 이동해 꿈에 그리던 고국 땅에 안장된다.

정부는 유가족의 의사에 따라 계봉우 선생 부부 유해는 서울현충원에, 황운정 선생 부부의 유해는 대전현충원에 각각 안장하기로 했다.

계봉우 선생은 1919년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북간도 대표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5월 임시정부 간도 파견원을 맡았고, 독립신문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해 10월부터 치타극동공화국 극동부 한인부에서 활동했다.

1937년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한 후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해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연구·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카자흐스탄에 묻힌 지 60년 만에 유해로 돌아오게 됐다.

황운정 선생[보훈처 제공]

황운정 선생은 1919년 함경북도 종성·온성 일대에서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가 1920년 일경을 피해 중국 지린성으로 망명했다. 1920∼1922년 러시아 연해주 연추(크라스키노) 지역에서 무장부대의 일원으로 대원 모집과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고, 카자흐스탄에 안장된 지 30년 만에 유해로 돌아와 고국 땅에 묻힌다.

계봉우 선생의 손녀인 신 류보피 씨는 "조부께서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셨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가 이 모든 수고와 비용을 부담해줘 후손들은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보답하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도 이국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유공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 사업은 1946년 민간차원에서 추진해오다 1975년부터 보훈처가 주관하고 있다. 이번까지 포함해 9개국 총 141위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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