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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식 없으면 군사력 강해도 망할 수밖에 없다!
  • 박상준
  • 승인 2020.09.0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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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은 주로 일본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두고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우리나라도 이 일침에 대해 느껴보아야 한다. 북한괴뢰집단의 불법남침으로 일어난 6.25 전쟁으로 수 많은 국민들이 숨졌는데 아직도 북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문 정부 들어서는 정부는 북한을 동반자로까지 대하는 듯한 정책들을 쏱나내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이 경제력으로나 국제영향력으로나 군사력으로나 보나 북한보다 월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보의식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공부를 할 의욕이 없는 학생에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과외선생님과 좋은 학원과 이름 있는 문제지를 주어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국가에 대한 안보관도 마찬가지다.

과거 역사를 보면 안보관이 해이하여 허망하게 망한 나라들이 많다. 그 하나가 제3차 포에니 전쟁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카르타고’다.

카르타고 제국과 로마 제국의 영토 ⓒ 위키백과 캡쳐

카르타고는 주전 814년경 디도가 여왕으로 즉위하면서 북아프리카 지역에 건국된 나라다. 주전 8~7세기에 걸쳐 카르타고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가나안 땅에서 이주한 페니키아인들이 주도하는 국가가 되었다.

카르타고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리스와 충돌하면서도 시칠리아 (現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점차 서쪽으로 뻣어나가게 되자, 상대적으로 동쪽으로 영토 확장을 하던 로마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가 볼 핵심은 제3차 포에니 전쟁이다. 앞의 두 번의 포에니 전쟁으로 연전연패한 카르타고는 지칠대로 지쳐있던 상태였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참패한 카르타고는 로마의 요구에 순응할 수 밖에 없어, 불평등 협정을 맺고 로마의 사실상 속국이 되었다.

주전 151년, 로마는 카르타고가 조약을 깨고 힘을 키워 로마의 숨통을 조일 것임을 알고 카르타고 옆에 있던 ‘누미디아 왕국’을 시켜 카르타고를 마음대로 침범해도 좋다고 허락 했다.

누미디아는 이를 악용하여 카르타고를 침범하여 슬그머니 영토 확장을 시도했다. 로마의 허가 없이 군사를 움직일 수 없었던 카르타고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로마에게 청원을 했지만, 로마는 누미디아의 군사훈련이라며 허가를 하지 않았다. 2년동안 누미디아의 침략에도 대응을 하지 못한 카르타고는 피해가 컸다.

주전 149년 누미디아가 역시 침범하자, 결국 카르타고는 누미디아를 단숨에 격파하고 박살을 내버렸다. 이 사실을 안 로마는 이 것을 구실 삼아 카르타고에 선전포고를 했다. 카르타고 원로원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대립했다.

강경파는 “카르타고가 비록 누미디아의 침범에 손상을 입었지만 제2차 포에니 전쟁보다 국력이 많이 강해 승산이 있다.” 라고 주장했고, 온건파는 “누미디아의 침략으로 국력 성장에 지장이 있었으므로 로마와 전쟁하는 것은 무리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원로원은 온건파가 승리했고. 누미디아를 침범한 카르타고 장수를 처형했다.

이어 카르타고 원로원은 로마에 사죄하기위해 사절단을 보냈으나 로마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강화를 강행했다. 이 강화에서 파견한 장수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로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에 대항해 로마를 승리로 이끈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자이기도 했다. 그는 카르타고 대표단에게 전쟁을 하지않겠다는 내용의 조건들을 제시했다.

1. 카르타고의 모든 무기를 로마에게 넘길 것.

애초에 카르타고에게는 말도 안되는 협정이였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전쟁에 지쳐있었고, 전쟁 의사가 없어 모든 무기를 넘겨주었다. 그러자 로마는 이에 두 번째 조건을 제시 했다.

2. 수도 카르타고를 파괴하고 주민은 해안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모두 이주할 것.

하지만 이 조건은 카르타고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에 강경파들이 주도권을 잡아 로마와 화평을 주장하던 자들을 모두 처형하고 결사항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석궁의 밧줄로 사용했고, 성벽 내부 일부를 헐어 돌맹이로 사용했다. 나뭇가지를 주어 무기로 개조하기도 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카르타고인들은 로마군에게 무기를 빼앗아가며 싸웠다. 무기를 빼앗겼지만 뒤늦게 정신차린 카르타고인들로 인해 로마는 3년동안 카르타고 수도를 점령하지 못했다.

카르타고의 멸망 (자료사진) ⓒ 누리꾼 블로그 캡쳐

그러나 3년이 지나 카르타고도 무너졌다. 힘겹게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의 수도를 불태워 버렸다. 젊은사람들은 다 죽어버렸고 어린아이들과 노인들만 남았다. 로마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장군은 카르타고 성에 소금을 뿌리며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을 이주시켰다.

카르타고를 통해 안보관이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상납한 무기는 10만개가 넘어 로마의 무기보다 많은 숫자였다. 만약 카르타고가 안보관을 잘 갖추고 있고 무기만 내놓지 않았으면 충분히 로마를 격파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무너진 대동강 철교를 건너 피란길에 오른 사람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6.25전쟁이 휴전협정으로 인해 포성이 멈춘지 수십 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늘 도발을 일삼고 우리나라 젊은 장병들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여전히 적화통일만 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6.25 전쟁이 언제 발발한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매우 많고,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권에서 북한에게 그동안 당한 것을 생각지도 못한채, 북한정권에 지원을 하여 평화를 얻자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지불한 평화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진정한 평화는 튼튼한 안보관으로 무장하고 국가관을 바로 갖고 무장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가 ‘강소국’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비록 나라 크기는 작지만 튼튼한 안보관과 철저한 국방시스템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950년 북한괴뢰집단에 의해 일어난 전쟁을 잊지 말고 교훈 삼아, 정치권에서부터 안보관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역사교육부터 바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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