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평양에서 북일정상회담이 금방 끝난 뒤였다. 정상회담 성과를 자신한 김정일은 외무성의 협상경험을 참고하라며 통전부에 “북일정상회담 참고자료”를 보냈다. 당시 통전부 내에서는 누군가 해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이유는 외무성의 협상진행 방식에 대해 납치 일본인 관리 주체기관인 당 대남공작부서들이 공동의견서를 김정일에게 제출했고, 통전부는 회담진행과 결과에 따라 한일 납치 연대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제의서도 보고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이즈미가 평양으로 왔고, 김정일이 외무성의 회담성과를 참고하라는 자료를 내려보냈으니 통전부 간부들은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자료에 의하면 외무성은 일본 측의 정상회담 목적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첫째는 고이즈미 내각이 지지율 반전의 창구를 납치문제 해결에서 찾으려는 것, 둘째는 납치문제해결 성과를 위해 구체적 제안보다 정권차원의 합의서를 받아내는데 주력, 셋째는 일본에 가장 적대국인 북한 정권을 포용 함으로서 일본의 유엔이사국 진출 국제환경을 유리하게 만들어보려는 것, 넷째는 미사일 발사시험과 같은 북한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재발방지 요구,
반면 외무성은 과거사죄를 전제로 하는 국교정상화와 경제지원을 주요 목표로 했다. 그러나 참고자료에서 기술한 초기 북일 실무회담 진행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북한 외무성은 국교관계 정상화, 식민지 배상금 지불을 전제로 납치협상 및 정상회담을 제안한 반면, 일본은 납치 문제 해결을 전제로 하는 정상회담과 경제지원을 제안했다.
또한 북한은 일본의 과거 사죄와 그 연장선에서 식민지 배상금 지불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과거 사죄는 가능하나 배상금 지불이 아닌 국교관계 정상화 명목의 경제 지원을 고집했다. 그리고 북한은 납치 문제에 대한 개별, 관계 부서의 재발방지 약속, 처벌은 가능하나 정권 차원의 공식적 입장 발표는 불허했고, 일본은 과거 공개 사죄와 북한 정권의 납치범죄 공개 사죄를 맞바꾸는 식의 양국동시반성을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현금 중심의 경제지원을, 일본은 물자 중심의 경제지원을 제안했다.
참고자료에는 일본의 협상기술에 탄복할만한 내용도 들어 있었다. 북한은 배상금을 총 400억 달러로 책정했다. 일본 측이 그 근거를 묻자 북한은 식민지 통치기간에 수탈한 금액과 그 이자를 계산한 결과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일본 측은 북한 정권이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발전소, 제철소, 철도, 등 식민지 산업시설을 무단 사용한 비용을 지불하라고 역습했다.
또한 북한이 계속 현금지원을 주장하자 일본 측은 만약 현금지원 할 경우, 독재국가 및 북 핵 지원 검증으로 미국이 개입할 명분을 준다고 했다. 이어 일본은 과거 사죄와 식민지 배상 명목의 현금지원은 남한을 비롯한 다른 아세아 국가들의 재협상 요구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득하여 마침내 114억불 규모의 물자지원을 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를 보았다.
한편 북한 측은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8월로 요구했는데 이는 일본과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향후 제2의 8.15패전으로 선동하려는 정치적 의도였다. 실무회담 결과를 받아본 김정일은 크게 만족했고, 사회과학원, 인민경제대학 등 경제기관들에서 일본으로부터 받는 114억 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으로 자력갱생의 경제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특히 김정일은 경제 재건 중심사안으로 전국 복선 철도 현대화를 꿈꾸었다. 같은 시기 북한 선전선동부는 일본 정부를 압박할 목적으로 신문, 방송, 강연들을 통해 일본의 과거 식민지 통치 기간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대일심리전을 전개했다.
드디어 2002년 9월 고이즈미가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일은 자기의 독재적 사고로 일본 내각의 최고 권력자인 고이즈미 총리와 마주앉는다는 자체를 대성공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정상회담은 처음부터 정권 차원의 납치공개 사죄와 반성을 전제로 하는 외교자존심 싸움이 되었다.
김정일을 더욱 당혹하게 만든 것은 오전 회의가 끝났을 때였다. 휴식 시간에 일본 대표단 중 일부가 숙소에서 북한 정권의 공개사죄 거부에 강하게 항의하며 고이즈미에게 일본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훗날 그 주인공이었던 아베는 총리가 되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회담이 결렬되면 일본이 약속했던 114억 달러 규모의 막대한 외화를 잃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여 오전 회의를 마치고 휴식 후 다시 속개된 오후 정상회담 자리에서 김정일은 즉흥적인 결심으로 납치범죄를 공개사죄함으로서 북한 권력층들을 경악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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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본 언론들은 ‘사죄’라고 했고 북한은 ‘인정’했다는 보도를 발표하게 된다. 고이즈미 총리가 돌아간 후 북한 정권은 김정일의 즉흥적 결단력과 외교력을 극찬하는 당 강연 자료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북일 정상회담 결과는 정 반대로 비참했다. 김정일의 공개사죄가 일본 내 반 북 여론으로 확산되면서, 114억 달러가 아니라 그동안 북한의 금고역할을 했던 조총련마저도 일본 국민들의 압박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더구나 일본 국민들의 반북 여론을 무마시키려 2004년 경 일본 방문을 허락했던 납치일본인 5명까지 귀국을 포기하자 김정일은 “외교도 공작이다.”며 외무성에서 대남공작부서들로 납치문제 주도권을 이양하도록 했다.
장진성기자 2012.03.20 01:39:03
[ 제공 : 뉴포커스 www.newfocu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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