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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회고록의 진실 (7) 남만(南滿)과만 동만(東滿)이동에 얽힌 이야기(1932~1933)
  • 블루투데이
  • 승인 2012.12.1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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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2권의 마지막 장인 제6장 ‘시련의 해’는 전 8월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김일성이 안도현으로부터 남만 통화현으로 가고, 통화현에서 다시 안도현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동만 왕청현을 거쳐 동녕현 까지 가게 된 경위를 적고 있다.

민족주의자 양세봉에게 항복, 그의 군대에 입대를 간청

그는 1932년 6월 남만주의 통화현으로 가서 반일투쟁을 하고 있던 민족주의단체 국민부의 조선혁명군 사령 양세봉 장군을 찾아갔다. 부하인 고동뢰 소대 10명을 학살당한 양세봉을 다름아닌 그 학살자 김일성 자신이 방문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참살사건을 은폐한채 이 부분에 대해서도 왜곡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 일은 당시 김일성의 사상과 처지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당시는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서로 상대방에게 테러를 가해 죽고 죽이는 원수 관계에 있었다.

‘공산주의자’ 김일성이 반공주의자 양세봉을 찾아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점을 보더라도 김일성은 당시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다음으로 고동뢰 소대를 학살한 후에 양세봉에게 간다는 것은 보통의 방문일 수가 없다. 그에게는 양세봉을 치거나 그에게 항복하거나 두 가지 길 밖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사실 이 때 양세봉에게 항복하여 그의 군대에 입대할 것을 간청했다. 양세봉은 자기 부하들이 피살당하였지만 사상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김일성 일당을 대담하게 받아들이고 그를 조선혁명군의 대원으로 키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의 학자들과 여러 증언자들에 의하여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김일성은 직접 이를 뒷받침하는 말을 이번 회고록에서 하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일 인민유격대의 남만 진출과 때를 같이하여 우사령 부대에서도 200명으로 편성된 구분대를 통화지방으로 파견하였다. 이 구분대의 인솔자는 류본초 선생 이었다.
우사령이 자기의 오른 팔이나 다름이 없는 류본초 참모장을 남만으로 보낸 목적은 당취오자위군(唐聚伍自衛軍)과의 합작을 실현하며 자위군을 통하여 무장을 해결하려는데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우사령이 파견한 유본초 부대에 붙어서 통화로 갔는데 그 목적은 당취오와 합작하는 것이었다. 당시 양세봉 장군은 당취오와 합작하고 있었으므로 김일성의 우사령 별동대는 그 양세봉을 찾아갔다. 양세봉은 우사령 부대에 붙어서 온 김일성일당을 민족대오라고 생각하여 항일의 대의(大義)를 위해 고동뢰 소대 학살에 대한 책임추궁을 약간 늦추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이 무렵의 자기를 ‘공산주의자’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은 우사령에게도 양세봉 장군에게도 붙을 수 있는 민족주의 좌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남만주로 간 그의 행적에서 드러나고 있다.

동만주 중공당의 항일지도자 행세

김일성은 양세봉 부대에 한때 머물며 그 대원이 되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이 조선혁명군을 탈퇴하고 안도방면으로 옮겨갔다. 회고록에서는 그 이유를 양세봉이 ‘반공연설’을 했고 그의 반일 인민유격대의 무장해제를 꾀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점에 관하여 이명영 교수는 김일성이 소대장이나 중대장 자리를 요구하였으나 양세봉 장군이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취를 감추었단느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하여간 통화를 떠난 김일성은 유하, 몽강을 거쳐 안도현 양강구에 나타나고, 거기에서 북만의 영안을 거쳐 동만의 왕청현으로 가게 된다. 통화로부터 양강구까지는 김일성의 대오만으로 갔고 1932년 10월 양강구로부터 왕청으로 갈 때는 우사령 휘하의 맹단장 부대와 함께 갔다.

그는 여기서도 구국군의 별동대로 동만에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대오가 왕청현에 도착한 것은 1932년 12월이었는데 당시 이곳에는 중공 동만특위 산하의 왕청현 항일유격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이 중공 유격대와 직접 접촉하였다는 말은 회고록에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일성이 최초로 자기가 후에 속했던 중공의 동북항일련군에 관한 역사를 쓴 것은 1942년이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이 때 그는 구소련 연해주 하 바로프스크에 있었는데 당시 그가 속한 소련 극동군 88여단의 여단장 주보중(周保中)의 요청으로 항련제일로군 약사(抗聯第一路軍略史)라는 문장을 써 바쳤다는 것이다.

이 약사를 김일성이 직접 썼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김일성이 약사의 내용을 본 후에 주보중에게 바친 것 자체는 틀림 없을 것이므로 이 사료의 가치는 높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약사에는 1932년의 왕청유격대 대장을 ‘왕XX’, 왕청별동대의 대장을 이광(李光)이라고 쓰고 있다.

김일성은 1932년에 왕청현으로 넘어갔는 데도 중공유격대였던 왕청유격대의 대장 이름조차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중국인 반일부대의 별동대 대장인 이광 밖에 모르고 있었다.

장개석 부하 비호속에 동만 노흑산으로 도망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왕청에서는 먼저 중국인 반일부대인 관보전(關保全) 부대를 찾았고, 그 다음에 나자구(羅子溝)에서 반일병사위원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는 이 반일병사위원회에 참가했다는 성원들의 이름을 이광, 진한장, 왕윤성, 호택민, 주보중만 들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당시 반일부대에 참가한 중국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당시의 김일성이 그들과 깊은 관계에 있었던가 어떤가는 알 수 없지만 그 중 이광만이 동만유격대와 관계가 있었다. 김일성 자신은 동만특위나 동만유격대와는 관계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1933년 1월, 일본 관동군과 간도토벌대는 북간도와 북만의 ‘소만국경’ 지대에 있었던 반일부대들을 소탕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왕덕림, 오의성 등 구국군 간부들은 제각기 군대를 이끌고 구소련 연해주와 북만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주보중, 진한장 등이 있었던 오의성 부대도 왕청현 나자구로부터 동쪽으로 갔다가 북만영안으로 퇴각하였다.

이 영향으로 나자구 서쪽에 있었던 김일성 소속부대도 나자구를 넘어 동쪽 동녕현 노흑산 방면으로 도망쳤다.

이 때의 경험을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힘들게 넘긴 고비는 노흑산에 갔을 때라고 생각한다. 노흑산까지는 덜렁덜렁하였지만 구국군이 동행하였으므로 우리는 고생을 많이 하면서도 별로 외로운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소련으로 다 도망가 버린 후로는 그 광막한 들판에 우리 18명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왕덕림이 월경하면서 남겨 두고 간 일부를 데리고 주보중까지 다른 곳으로 빠져 나가다 보니 우리는 완전히 고립무원한 상태에 빠졌다.”

이처럼 회고록에서 실토한 바와 같이 김일성은 안도현 양강구로부터 영안, 왕청, 동녕으로 가서 노흑산에 이르렀을 때까지 시종일관 중국 장개석 국민당계통인 왕덕림 구국군의 구분대들의 비호하에 있었다.

그는 그 후 노흑산에서 일본 간도토벌대에 쫓기어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마씨 성을 가진 노인을 만났다. 그들은 마 노인의 안내로 산속에 더욱 깊이 들어가 어떤 산전막에서 수주일 동안 지냈다.

이 때 김일성 대오의 성원들은 앞으로의 행동방향을 토의하였다.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왕청의 조선인부락에 가서 거기에 있는 별동대를 모아서 부대를 재편성하고 투쟁을 계속할 것인가 하는 것이 토의의 내용이었다.

결국 18명이 대원 중 16명이 투쟁을 계속하는 쪽으로, 2명은 부대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 2명에게 왕청까지 같이 간 후에 헤어지라고 하여 결국 부대에 남아있도록 하였다. 18명은 마 노인의 안내로 노흑산을 내려가 왕청현 전각루 까지 가서 노인과 헤어졌다고 한다.

김일성의 이 회고에서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대오의 성원들이 몹시 동여한 끝에 왕청현으로 가기로 했지만, 그들은 거기에서 ‘별동대’를 더 확대하자고 결의하였다는 점이다.

별동대란 중국인 민족부대인 구국군 같은 것을 호위하는 군대이다. 이광의 별동대는 중공유격대의 변종이 아니라 한인 민족주의 단체의 좌파그룹에 지나지 않았다.

김일성은 조선공산당이 코민테른의 승인을 취소당한 1928년까지는 물론 1국1당원칙으로 만주의 조선공산주의자가 중공당원이 된 30년까지도, 아니 그 이후 33년 1월까지도 ‘당원’이 될 계기를 갖추지 못했다. 회고록은 이 사실을 도리어 선명하게 재조명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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