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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 장군과 만주군, 간도특설대의 올바른 이해 ①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4.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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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 장군 조부도 민족위해 헌신, 그러한 가문에서 자라고 625전쟁에서도 업적을 이룬 분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것”

〔개요〕거제시 고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 건립된 故김백일 장군 동상과 관련해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라는 이유로 거제시의회가 ‘친일파 김백일 동상 철거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에 거제시청과 일부 시민단체가 자진철거 및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라고 규정한 일개 연구소에서 참고한 자료인 20세기 중국조선족 력사자료집과 연변학계자료 등은 중국공산당 및 친북학계 자료로서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한 객관성 없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와같은 자료를 가지고 친일파로 분류하는 기준서로 활용했다는 것은 신뢰와 객관성을 상실한 행위라 할 수 있다.

김백일 장군 건립당시 거제시청은 승인사항에 대한 통보문(3.22)에 “10만 명의 함경도민의 생명을 구해준 故김백일 장군 동상 건립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 흥남철수기념공원 이미지에 부합하고, 교육의 場으로서 활용 가능성이 높아 아래와 같이 승인사항을 통보하며...”라고 기록했다.

이에 김백일 장군과 만주국(군), 간도특설대의 올바른 평가가 필요하다.

김백일 장군의 생애와 업적(金白一,1917.1.30~1951.3.28)

그는 북간도 연길현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찬규(金爛奎)이다(선대의 고향이 함경북도 명천군으로 함경북도 출신으로도 간주). 만주군 상위로 재직 중 해방(1945.8.15)을 맞아 조선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다.

이후 초대 제병협동본부(교육사령부와 육군보병학교의 전신) 본부장을 지냈으며, 여순반란(1948.10.19)을 진압함은 물론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 동쪽(포항,안강,기계,영덕)에서 북괴군을 저지하여 北進의 발판을 만들었다. 北進시에는 김 장군이 지휘한 1군단 3사단이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했다. 이로인해 10.1일 국군의 날이 제정됐다.

흥남철수작전시 美 10군단장(알몬드 장군)을 설득하여 군인 10만 5000명과 함경도민 10만명을 군함, 상선, 어선을 동원하여 철수시켰다. 육군 소장 재직 중 1951년 3월 강원도 대관령 인근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여 중장으로 추서됐다. 정부는 김 장군의 전공을 인정하여 을지․충무․화랑․태극무공훈장을 수여 했다.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내용과 일반자료에 기록되어 있는 만주군 간도특설대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라고 명시한 연구소는 일제시대 김백일 장군이 속했던 만주군 ‘간도특설대’는 일본이 만든 군대이며, 간도특설대는 1938년 설립이후 해방되기까지 약 5년간 간도지역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색출‧살해하거나 항일무장단체를 탄압한 전문 무장조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 등 일반자료에 의한 만주국과 간도특설대의 내용을 살펴보면 만주국은 일본이 1931년 류타오거우사건을 빌미로 만주사변(1931.9.18)을 일으키고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워 1932~1945년 사이 중국 동북 지방에 세웠던 괴뢰 국가로서 만주국의 국토는 요녕, 길림, 흑룡강 등 동북지방 모두를 포괄하고 있고, 인구는 3천만명(일본, 조선, 중국, 몽고, 만주족 등 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이며 관동군 사령관이 실세로 경제개발권까지 독점하고 있다가 1945년 소련군에 의해 관동군이 괴멸되면서 민중반란과 함께 만주국이 무너졌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내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독립군(1939~1943)과 열하성과 하북성에서 팔로군(1944~1945)과의 전투를 수행했으며, 150여명 이상의 조선인이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고 나와 있다.

‘간도특설대’, ‘김백일 장군’ 대한 올바른 이해

국내 일부 언론과 학자에의하면 ‘간도특설대’는 1938.9.15 간도성 연길현에서 창설 됐으며,특히 신동아(2007.9.1, 통권576호)에서는 ‘간도특설대는 만주에서 활동하는 공산게릴라를 추적하기위해 만주국이 조선인을 뽑아 만든 對게릴라전 부대’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국내 학자들 중에서도 신주백 저서 ‘만주국군속의 조선인 장교와 한국군(2002)’에는 ‘간도특설대는 애국적 자각심과 협력심을 결집하고 조선인 거주 지구에 조선인 부대를 배치할 정치적 고려하에서 신설된 부대’, 김범석 외 ‘만주국군지(1987)’에는 ‘한인사회에서 국군에 참가를 지원하는 공기가 농후하여 국경감시대에 대체할 한인부대의 편성이 요망되었다. 그리하여 한인 거주 지역에 한인부대를 배치하는 정책적 고려하에 간도특설대를 창설했다’, 강창구 역 ‘한국전 비사(1977)’에는 ‘간도특설경비대는 당시 백두산 주변의 변경에서 김일성 게릴라라고 칭하는 反滿洲 抗日 분자의 준동이 계속되었으므로 한국출신의 우수한 자를 모아 대 게릴라 부대를 편성해 간도성의 치안유지에 임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와있다.

특히 김백일 장군과 중학교 같은 시절에 공부했던 김광옥 예) 해군중장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당시 만주국은 일본, 조선, 중국, 몽고, 만주족 등 5개 소수민족이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당시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거주지구 보호를 위해 자치부대를 만들었는데 간도특설대는 1938년 말 간도 조선인 치안유지 및 불순세력 퇴치를 위해 만들어 졌다. 만주국에서 간도특설부대는 이름만 부대였지 초기에는 총검술과 사격 위주로 하다 43년부터 남만주에 팔로군이 출현해 퇴치하는 활동을 했다. 우리도 중학생 시절 중학생 간도특설부대에 가서 군사훈련을 받곤 했다. 중국사람들은 간도특설대를 싫어했다. 당시 소수민족끼리 만든 군대가 총검술과 사격 시합을 했는데 항상 간도특설대원이 1등을 했다. 당시 간도특설대는 일본인 고급장교 1명과 대위 1명이 통제하고 있었고 부대원 대부분이 조선인이었으며 똑똑한 사람들이 지원을 많이 했다. 1932년 이후에는 만주국의 치안유지가 잘 되었기 때문에 만주에는 독립투사들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김일성 부대(중국공산당 동북항일연군)는 활동하고 있었다. 김백일 장군이 일본훈장을 받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당시 만주국에서는 일만 잘하면 훈장을 줬음. 우리군대도 일을 잘하면 표창을 주듯이 그것은 일을 잘하도록 하기위한 동기유발 방법이었다.”

김백일 장군의 인품에 대해서는 “소대장과 중대장시절 부하들을 무척 아꼈다. 추운 겨울날 부하들이 장갑이 없어 고생하면 개인 사비를 털어 부하들에게 장갑을 사주었다. 부하들한테는 욕심이 없는 장교로도 소문나 있었고 당시 부하들은 김백일 장군 같은분이 우리나라에 3명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김백일 장군 할아버지도 민족을 위해 헌신한 유명하신분이다. 그러한 가문에서 태어나 자라고 6‧25전쟁에서도 훌륭한 업적을 이룬 장군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행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만주사변과 한국독립군

1930년대 세계공황과 파시즘의 대두로 세계가 혼란과 격동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일본은 대정데모크라시 체제에서 파시즘 체제로 전환하여 1931년 만주사변(9.18)을 일으키고 그들의 조종을 받는 만주 괴뢰국을 수립했다.

같은 시기에 청산리 대첩의 김좌진 장군이 공산분자에게 암살(1930.1)되자 김좌진의 韓族總聯合會와 池靑天의 生育社를 모체로 洪震, 지청천 등이 중심이 되어 대일항전과 반공투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하조직 한국독립당을 창당(1930.7)했다.

한국독립당은 中央黨部, 支黨部, 區黨部의 3부 조직과 동‧북만주의 의병, 유림, 대종교 등의 집단을 망라하는 진영을 갖추고 1931년 9월 일본의 만주 침공이 본격화 되자 동년 11월 길림성 大石河子에서 한국독립군을 결성, 효과적인 일제 공략을 위해 중국측과 한중연합전선을 형성하여 1932년 8월부터 공동 군사작전으로 이에 대응했다.

독립군 3천명과 중국군 2만 5천명의 한중연합군은 9월 북만주의 쌍성보 공격과 1933년 말까지 일본 관동군과 격전을 치루면서 四道河子 전투, 大甸子領 전투 등 여러 차례 대승을 거두었다.

한국독립군은 1933년 말 중국 공산당 부대로의 편입 강요에 직면하자 이를 거부하고 중국 관내(山海關 안쪽)로 옮겨 감으로써 만주지역에서 우파 민족주의 세력의 항일무장투쟁이 사실상 종결됐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 제공 : 코나스 www.kona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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