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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일 장군과 만주군, 간도특설대의 올바른 이해 ③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4.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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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 ‘나의증언’에 의한 김일성 행적 및 만행
(한국일보, 1990.11.01,5면)

▪ 88 특별독립저격여단, 소련 극동군이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전역을 넘보던 일본군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42년 7월에 창설한 비밀 부대였다.

▪ 김일성은 30년대 중반부터 만주일대에서 중국 팔로군 산하의 항일 빨치산 유격대에서 활동했다.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이름의 이 부대에는 많은 조선인이 있었다. 김일성은 중간급 간부인 제 2군 6사장으로 1백명 안팎의 병력을 지휘했다.

▪ 이부대 사령관 중 한명이었던 주보중은 41년 일본 토벌대에 쫓긴 김일성이 소련국경을 넘다 소련련군에게 체포되자 신원보증을 해주고 김일성을 풀려나게 해준 은인이었다.
▪ 최용건은 중국 황포 군관학교 교관 출신의 정통파 군인으로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1920년대부터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운동을 했다.
▪ 김일성은 항일 빨치산을 하던 37년 6월 4일 최현을 비롯한 2백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국경마을 보천보를 습격, 일경 수명을 살해하고 지주들에게 식량과 자금을 거둔 뒤 퇴각했다. 현재 북한에서 수십 수백배 과장돼 김일성의 가장 화려한 항일투쟁경력으로 선전되고 있다. 북한 역사서적은 당시 김일성이 주민들을 모아놓고 애국적 연설을 했다고 자랑하는데 6‧25전쟁 중 우연히 나와 만나 보천보 얘기를 했던 최현은 “야, 도망가기도 바빴는데 무슨 대중연설을 해”라고 내뱉었다.
▪ 북한 역사는 41년부터 시작된 김일성의 88여단 행적을 가능하면 은폐하려고 하고 있다. 북한 역사는 김일성의 소련생활을 대체로 얼버무리고 지나간뒤 해방당시에는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 소련군과 합동작전을 펼치면서 북한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김일성은 일본이 항복하고도 한달이 지난 9월 중순 소련군의 명령에 따라 나와함께 북한에 들어갔다.
▪ 현재 북한 주석 김일성이 30년대 만주에서 동북항일연군의 중간지휘관으로 빨치산 활동을 했고 하바로프크스에서 나와 같이 88여단에 있었던 바로 그 사람 이라는 것이다.

김백일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실체 인식

당시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좌편향 인사들과 좌익사건 연루자들이 주도하는 단체이다. 이 연구소의 김승교 고문변호사는 대표적 친북좌파단체인 남북공동 선언실천연대(이하 실천연대)의 상임대표이고 이 연구소의 활동을 주도해온 3대 소장 임헌영(본명 임준열)은 김일성에게 조직의 결성을 알리는 편지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다.

임준열은 1977.7.1경 반국가단체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이른바 남민전)에 가입하고, 1977.10 경 ‘남조선 인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혁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지식인, 학생, 노동자 등 광범위한 각계각층의 세력이 모여 민족해방전선을 결성했으며 앞으로 굳게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아낌없는 성원을 바랍니다.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이 투쟁을 당의 이름으로 굳게 유대 맺어줄 것을 당부합니다’라는 요지로 김일성에게 남민전의 결성을 알리는 서신의 초안을 작성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1980.5.2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은 바 있고, 그 외에 한 차례 더 공안사건에 연루된 바 있다.

이러한 종북세력 연구진들로 작성된 친일인명사전은 편향된 신뢰성 없는 자료물에 불과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과연 김백일 장군이 친일파로 매도되어야 될 인물인가?

▪ ‘친일파’에 대한 의미와 개념정립 필요
친일파라는 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한 시기에 일제에 가담하여 그들의 침략과 약탈정책을 지지하가나 옹호하고 추종한 무리로 보아야한다. 친일행위와 친일파의 분류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다거나 한일합방 당시 고위 관직자로 있으면서 일제의 합방정책에 도움을 준 인사라면 친일파로 매도해도 되겠지만 창씨개명자 등과 같이 소극적 친일행위자와 생존을 위해 소극적으로 협력한 정도까지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우리 국민들을 이간질하고 분열시키는 범죄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김백일 장군의 경우 조부(김영학)는 3.1운동때 간도의 용정에서 독립선언식을 주최한 인물로 1990년에 건국훈장을 받은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간도특설대’에 대한 평가는 올바르게 조명 되어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작성한 간도특설대 관련 내용 중 수많은 애국지사를 살해하였고 독립군에 대한 탄압과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하였으나, 간도특설대 창설(1938년 9월) 당시에는 한국독립군이나 광복군이 만주지역에 없었고 중국관내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중국 공산당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 부대를 토벌대상으로 하였다.

동북항일연군을 독립군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 동북항일연군이 항일이란 명분으로, 공산주의 혁명이란 명분으로 조선족 민가를 습격하여 약탈을하는 마적단의 모습으로 비춰진 점과 또한 동북항일연군의 조선인부대는 중국공산당 명에 따라 행동하였음은 물론 중국공산당에 절대 충성 하였다는 점에서 독립군으로 볼 수 없다.

간도특설대의 토벌대상인 동북항일연군 김일성부대는 일본군에 대항한 유격대 활동을 했다는 점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으나 다만 이 부대의 활동상은 양민에 대한 약탈, 방화, 살인도 저지르면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추악한 행위, 즉 共匪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참고한 20세기 중국조선족 력사자료집, 연변학계자료 등은 중국공산당 및 친북학계 자료로서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한 객관성이 없는 자료로 ‘간도특설대’에 대한 평가가 올바르게 조명 되어야 한다.(Konas)

코나스 이영찬 기자

[ 제공 : 코나스 www.kona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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