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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의 역사 ⑦ 학생들의 반탁 운동
  • 구교민 인턴 기자
  • 승인 2013.01.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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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학생들의 모습 ⓒ 네이버 카페 캡쳐

학생들의 좌우대립

해방 직후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물결은 개학과 더불어 학교 내에도 흘러 들어왔다. 교문 및 담벽과 교실 칠판에는 각종 정치적 보도가 붙어 있었으며 “한민당을 타도하자.”, “친일파 교수는 물러가라!” 등의 이러한 전단들이 살포되었다. 학교마다 민족진영 교사, 교수는 무조건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로 몰아붙이는 운동이 격렬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연희 전문(現 연세대학교)에서 교장 백락준 축출운동이 있었으며, 경성 대학에서는 젊은 조교들이 총장을 선거한다면서 의대 강당에 모여 좌익성향의 김태준을 교수로 선출하는 일까지 벌였다. 물론 학교측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부 조교들의 자의적 행동이였다.

학생들의 좌우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곳은 연희전문이였다. 공산당은 연희 전문학교를 좌익학생들이 점령하도록 전력을 다했다. 연희 전문은 기독교 학교이기 때문에 좌익 세력들이 이 학교를 점령한다면 파급이 클 것이라고 믿었다.

보성 전문(現 고려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장 김성수를 친일파로 몰아 배척하려 했으나 김성수의 탁월한 덕망으로 실패했다. 좌익세력들은 또 일본강점 치하에서 힘겹게 교단을 지킨 장덕수, 안호상, 이상훈, 진승록 교수를 배척하려 했다. 4명의 교수들이 민족세력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각 학교들은 정치적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한창 학생들을 교육을 시키고고 꿈을 키워주어야할 학교에 좌익공산세력들이 침투하여 이념교육과 사상대립을 시켰기 때문이다.

보성 전문에서 보다 못한 이철승이 나서기 시작했다. 이철승은 일본강점기 말기 학도병 거부 운동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그는 학교와 사회의 무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은 조직으로, 이론은 이론으로 대항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우익 학생들의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조직과 행동면에서는 좌익 학생들에게 미치치 못했다.

이철승이 우익학생들을 결속시켜 보전 학생회를 장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전 학생회 임시 의장 선출때부터 소란스러웠다. 이철승이 사회를 맡자 좌익학생들은 물러가라고 소리치더니 단상위로 올라왔다. 이때 전병두가 나서서 좌익학생들의 행동을 저지했다. 전병두는 유도선수였다. 좌익학생들은 전병두에게 맞설 수 없었다.

회의장 내가 진정되자 ‘준비위원장’ 임명 문제는 다시 회의에 붙여져서 결국 이철승이 당선 되었다. 학교는 이철승을 중심으로 조직 체계가 이루어졌다. 이는 좌익 체계의 학교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힘 입은 이철승은 나아가서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반탁운동을 주도하게 되었다.

▲ 반탁 학련 위원장 이철승 ⓒ KBS 방송 프로그램 '한국현대사 증언 TV 자서전' 캡쳐

반탁치 보전 학생회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되었던 신탁통치안이 발표되었다. 29일 보전 학생 70여명이 보신각 옆 한청 빌딩에 모여 반탁운동을 결의했다. 12월 30일에는 반탁 총동원 위원회 주최로 서울 운동장에서 학생들 주최로 최초 ‘반탁 궐기 국민 대회’를 열었다.

시가 행진은 보전 학생들이 선두로 나섰다. 이어 학생들은 ‘반탁치 보전 학생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위원장에는 우익 학생 대표인 이철승이 선출되었고 부위원장에는 좌익 학생 대표인 김연성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1946년 1월 2일 좌익공산세력들이 찬탁으로 돌아서자 좌익학생들도 반탁 보전 학생회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우익 학생들과 중도 학생들이 계속 반탁치 보전 학생회에 가담하여 오히려 인원은 증가했다.

반탁치 보전 학생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선전문을 작성하여 각 학교에 배포했다.

1. 민족 자결, 신탁 통치 절대 반대
2. 즉시 자주 독립 요구
3. 3상 회의 지지한 매국노 소탕
4. 역사적 과정을 조선 민족은 자각으로 과학적으로 인식함
5. 자유, 명예, 조국을 위하여 결사적을 투쟁을 선언함

반탁치 보전 학생회

▲ 반탁 운동의 중심지였던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 ⓒ 한국학중앙연구원 캡쳐

반탁 전국 학생 총연맹

탁치 보전 학생회는 다른 지역 학생들과도 연합하여 1946년 1월 7일, ‘반탁 전국 학생 총연맹’을 발족했다. 반탁 학련(반탁 전국 학생 총연맹의 약칭)의 의장단으로 선출된 학생들은 다음과 같다.

보성 전문 : 이철승
서울대생 : 채문식
유학생 동맹 : 박용만

애초에 보성 전문 학생 좌익의 주도급 김연성도 의장단에 선출되었으나 끝내 불참했다. 반탁 학련 준비 대회를 마친 간부들은 학생 단독으로 궐기 할 것임을 결의했다. 학력 의장단에 선출된 이철승은 범국민 조직체인 ‘반탁 국민 총동원 위원회’에도 참석하여 국민 단체와도 유대를 맺고 있었다. 좌익공산세력들이 갑자기 찬탁운동으로 돌변한것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반탁 학련의 결집은 증대될 수 있었다.

각 신문사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시내 남녀 중등 학교 이상 학도가 총 집결하여 내일 7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운동장(現 동대문 운동장)에서 반탁치 시위 운동을 실시하고, 반탁치 학생 총연맹 결성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 날은 국가 민족이 위기에 당면한 우리나라의 앞길을 바로잡으려는 열렬한 젊은 중등 학교 이상 학도 전부가 빠짐없이 참가하여 민족의 위기를 자기 세력의 독재에 이용하자는 매국 도적에 중대한 파문을 주리라고 한다.

대동신문 1946. 1. 6

이와 같은 기사들은 학생 동원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전국 중학생 이상 학생수는 78,911명이였는데 참가자는 무려 1만명이 넘었다.

이날 반탁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대표하여 참석한 백남훈과 독립 촉성 중앙 청년 총연맹을 대표한 김창엽의 격려사가 있었다. 이승만도 비서실장 윤치영을 보내 격려 했다.

1월 12일 반탁 국민 총동원 위원회 주최로 개최된 반탁 국민 총궐기 대회가 서울 운동장에서 열렸다. 반탁 학련도 이에 참석하여 비리 준비해 온 설명서와 결의문을 뿌렸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명서

완전한 자유에 신탁이니 후견이니 운운하는 여유 있는 자는 조선을 떠나가라! 3상 회의 지지를 조선의 진보적 노선이라고 하는 자는 누구냐! 그 이유가 나변에 있느냐? 이면의 세력, 이해 관게로 5천년 역사와 빛나는 문화를 팔려고 하는 매국노들의 음모와 파괴를 유일한 기술로한 최후 발악을 보라. 전국 학생 일동은 마땅히 연합국 학생과 같이 평화의 종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안 된다. 이것이 신조선을 위한 바른 노선이다.

결의문

(1) 민족 자결, 신탁 통치 절대 반대
(2) 즉시 자주 독립 요구
(3) 완전 국제적 해방 요구
(4) 통일 정권 수립 요구
(5) 매국노 소탕

이상은 학생의 자유와 명예로 조국을 위하여 결의한다.

대한민국 1946년 1월 12일
반탁 전국 학생 총연맹

▲ 반탁 전국학생총연맹의 명패 ⓒ 네이버 누리꾼 블로그 캡쳐

반탁 학련의 구성

반탁 학련 총본부는 세브란스 의전 구내에 있는 별관에 두었다. 위원장 1명, 부위원장 2명, 그리고 8개 부서를 두었으며 별도로 중등부도 설치했다. 학생들에 의해 선출된 간부 학생들은 다음과 같다.

위 원 장 : 이철승(보성 전문)
부위원장 : 이동원(연희 전문)
총무부장 : 박종호(경성 의전)
조직부장 : 조한원(경성 법전)
선전부장 : 최찬영(경제 전문)
교양부장 : 신호섭(경성 대학)
동원부장 : 김동홍(보성 전문)
후생부장 : 윤석우(세 의전)
감 찰 부 : 부장 전병두(보성 전문)
차장 박갑득(연희 전문)
여 자 부 : 부장 황근옥(이화 여전)
차장 오세임(숙명 여전)
중 등 부 : 송원영, 오홍석, 양근춘, 홍관식, 정국권, 윤금중, 김호중, 함복혁, 백완, 차국찬

반탁 학련은 곧 청계천 2가에 있는 관수동으로 본부를 옮겼다. 1층은 박순천. 황신덕이 이끄는 대학 독립 총성 애국 부인회가 사용했고, 2층은 반탁 학련이 사용했다. 또 별도로 화광교단 건물의 방 한칸을 얻어 사용했다. 이 건물은 임시정부 외무부장 조소앙이 마련해 준 곳이다. 이 방에서 수많은 성명서와 전단이 만들었고 북에서 월남한 반공학생들이 잠을 자는 숙소로도 사용했다.

그러나 반탁 학련은 항상 좌익들의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하여 삼선교 부근 조 소앙의 집 앞에 있는 이철승의 하숙집으로 옮겼야 했으며 테러를 피하고자 늘 비밀 사무실을 이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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