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현대사
남북의 분단 역사 ⑨ 반탁 운동을 방해한 좌익세력들의 만행
  • 구교민 인턴 기자
  • 승인 2013.01.24 21:20
  • 댓글 0


▲ 태극기를 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조선인들 ⓒ 네이버 누리꾼 블로그 캡쳐

태극기, 땅에 짓 밟히다.


태극기는 임오군란을 겪은 후 박용효가 친히 만든 것이다. 태극기는 일본강점기하에 항일 독립 운동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유일한 상징이었다. 수많은 독립 인사들이 이 ‘태극기’를 지키려고 장렬히 싸웠으며, 태극기를 장롱 속에 숨겨 두었다가 발각되어 끌려가 갖은 고난을 겪은 사람도 허다했다.

그런데, 같은 한민족이면서 유독 소련을 ‘조국’이라고 부르는 공산당만 ‘붉은 깃발’을 그들의 상징으로 여겼다. 공산당들은 태극기를 가치없게 생각했다. 심지어 만담가(漫談家)를 동원해, 전국을 누비면서 태극기를 모독하게 했다. 이 만담가의 이름은 바로 ‘신부출’이었다.

신불출은 민족의식과 국가관이 없는 자다. 일본강점기 하에서는 징병, 징용을 선동하는 친일 만담가였으며, 해방 후에는 공산당원으로 탈바꿈해, 공산당을 위해 민중들에게 만담으로 다가가며 선동했다.

신탁통치안이 발표된 후에는 자신의 특기인 만담으로 찬탁운동을 선동했다. 1946년 6월 10일, ‘6.10 만세 사건’ 기념행사장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태극기를 보시오. 빨간 색과 파란 색으로 나누어진 태극은 바로 남북한을 뜻하며, 네 모퉁이의 4괘는 4대국을 뜻한다. 그런데, 이 빨간색은 하늘이고 아래쪽 파란색은 땅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하늘이고 남한은 땅인데,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법이니 빨간색의 북한이 파란색인 남한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 또, 남북한을 뜻하는 태극이 4괘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4대국의 보호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4대 강국에 의해 다스려지는 신탁통치를 필이 받아야 함은 주역을 풀어 봐도 타당하니, 우리 모두 찬탁을 해야한다.

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의 만담에, 정치 의식이 청중은 말재간에 박수를 보낸 사람도 있지만 신불출의 만담을 간파한 사람들은 그에게 분노했다.

▲ 만담가로 좌익활동을 한 신불출 ⓒ 네이버 누리꾼 블로그 캡쳐

6월 11일, 바로 다음날, ‘6.10 만세 사건’ 기념행사는 서울 국도 극장에서 계속 열렸다. 신불출은 이 곳에도 난입하여 만담을 펴다가 관중들에게 뭇매 맞고 효자동의 어느 병원에 입원했다.

그 해 9월에, 명동의 시공관에서 신불출이 공연한다는 소식을 입수한 ‘전국 학련’은 신부출를 응징하기로 결정했다. 전국 학련 대원들이 미리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아 잠복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신부출은 태극기를 들고 나와 신탁통치를 칭송하며 찬탁을 선동했다.

이에 전국 학련 대원인 백완이 무대로 뛰어올라가 신불출의 멱살을 잡으며 ‘너 같이 나라 팔아먹는 놈들은 혼 좀 나봐야 한다“며 호통 쳤고 뒤이어 같은 전국 학련 대원인 김상종, 박광옥, 정국권, 이규태, 김경선이 무대위로 뛰어 올라왔다. 그러자 좌익 행동대들이 전국 학련을 저지하고자 올라오면서 난투극이 벌여지고 관중들은 공연장을 뛰쳐나갔다. 뒤늦게 뒤늦게 미군 헌병들이 와서 백완과 박광옥을 연행했으나 연행 도중에 모두 도피했다.

전국 학련에게 혼쭐이 난 신불출은 즉시 월북했다.

한편 1950년 9.28 수복 후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평양에 들어갔던 전국 학련 선무 공작대가 머물먼 평양시 수옥동 88번지에 있는 큰 기와집은 신불출이 월북한 후 살던 곳이였다.

“신불출아! 보아라! 너의 원수 전국 학련이 왔다 간다.” 라는 글을 남겼다.

▲ 반탁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장소, 남대문 ⓒ 동아누리 캡쳐

1947년 3. 1절 남대문 앞 피습 사건

1947년 3월 1일은 해방 후 두 번째 맞는 3.1절 기념식이다. 이날은 좌우세력이 모두 대대적인 집회를 열어 자기 세력을 과시하며 경쟁을 벌인 기념식이다.

이에 앞서 좌익세력들은 1946년 ‘대구 10월 폭동’을 기화로 11월 23일, ‘남조선 노동당’을 결성했다. 이 것은 북한에서 북조선 공산당을 7월 29일에 북조선 노동당으로 발전한 것을 답습하여, 남한에서도 조선공산당, 인민당, 신민당을 합당하여 ‘남조선 노동당’을 만든 것이다.

남로당은 학생과 노동자들을 선동시켜 1947년 2월에는 전국적으로 학교 맹휴 사태를 유발시켰다.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좌익세력들은 3.1절 기념 시민대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김광수가 사회를 맡았고, 허헌, 박헌영, 여운형, 김원봉, 김창준, 유영준 등을 임시의장단으로 뽑았다.

한편 민족진영에서는 서울운동장에 모여, ‘기미 독립 선언 국민 대회’라는 이름으로 3.1운동 기념식을 치뤘다. 사회자 엄항섭은 “식이 끝났으므로 이 시간 이후 일어난 일에 관해서는 주최측이 일절 책임 지지 않습니다.” 라고 방송했다. 이것은 어떤 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주최측이 당부한 방송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중학생 ‘이승철’이 뛰어 나오며 외쳤다.

“존경하는 나의 부모 형제 애국 동포 여러분!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오늘 혹독한 일제 치하에서도 목숨을 내놓고 독립 만세를 불렀는데, 해방된 내 나라에서 독립 만세조차 부를 수 없단 말입니까. 우리 모두 그 날처럼 거리에 나가 완전 독립을 원하는 우리 민족의 소원이 세계 만바에 울려 퍼지도록 손에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가 독립 만세를 부릅시다.”

이에 서울운동장 일대는 반탁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경찰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전국 학련을 선두로 우익청년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동대문, 종로, 광화문을 지나 서대문 경교장 앞에 이르러서는 “김구 주석 만세!”를 외친 뒤 서울역으로 돌아왔다.

이때 남산에서 3.1운동 기념식을 마친 좌익들이 남대문 쪽을 향하여 적기를 흔들고 ‘해방의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우익세력들과 마주친 좌익세력들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우익세력들은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는 순간, 남로당이 자리 잡은 일화 빌딩에서 그들이 숨겨둔 기관총으로 난사했다.

좌익들의 기습으로 현장에서는 조선 중학생 정인수와 서북청년회 대원 박수호가 목숨을 잃었다. 그 외 중학생 이승철, 여학생 고을섭, 박헌호, 김상종, 김동배 그리고 이영주 등이 중상을 입었다. 좌익공산세력들은 이처럼 평화적인 시위 대열에 돌을 던지고, 총을 난사하는 방법으로 폭력적으로 나섰다.

▲ 공산당의 실체를 잘 알고 있던 서북청년회 ⓒ 다음 누리꾼 블로그 캡쳐

이에 많은 우익학생들은 분노했다. 전국 학련, 한국 학생 동맹, 서북 학생 후원회, 애국 학생 공동 투쟁위원회 등 4개 학생 단체에서 곧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1. 미·소 영군은 철수하고 대한민국의 정권 수립을 즉시 승인하라.
2. 학생의 기미 독립 선언 기념 대회의 참가를 방해하고, 순결한 학생의 독립 정신을 무시한 미 군정하의 문교부 책임자는 양심에 입각해 사직하라.
3. 남로당, 민청, 전평의 행사를 암암리에 묵인하고 민주주의 미명하에 백주의 적색테러를 근절 못하고 골육상쟁을 유발시키는 미군정 관리를 파면하라.
4. 순결무구한 학생을 살해한 남로당, 민청, 전평 등을 즉시 해체시키라.
5. 순국 동지의 학생 연합장 때까지 이에 대하여 당국자는 해답하라.
이상 5개항은 우리 백만 학도가 최후의 1인까지 공동 투쟁으로써 그의 실행을 볼 때까지 싸울 것을 연합국 원수, 미군정 당국자, 각 부형들게 정확한 결의로써 건의한다.

이외에도 3.1절 기념 행사를 둘러싼 좌, 우 충돌은 각지에서 벌어졌다. 사망자는 16명, 부상자는 22명 등 적지 않는 인명 피해가 났다. 그런데, 미군정은 어이없게도 남대문 피습 사건의 원인을 전국 학련 등 우익학생들의 선동에서 유발된 시위에 있다고 주장하며, 서울운동장에서 사회를 본 임시정부 선전부장 엄항섭 외 수 명을 체포했다가 5일 뒤 무혐의로 모두 석방했다.

남대문 앞에서 좌익들의 잔인한 폭력으로 희생된 전국 학련의 어린 학생 정인수의 장례식은 전 애국 단체의 연합장으로 거행했다. 전국 학련 위원장 이철승은 정인수의 죽음은 공산당의 잔인함과 민족의 비극이라는 의의로 모든 애국 단체들에게 9일장으로 치룰 것을 제의하자 흔쾌히 수락을 얻은 것이다.

장례위원장은 김구, 부위원장에 조소앙, 조성환, 김성수가 초대되고 호상은 이철승이 맡았다. 3월 9일부터 9일간 진행되었는데 문상객은 수만명이 넘었고, 영결식 당일에는 종로를 가득 메웠다. (계속)

안보단체 블루유니온에서 운영하는
블루투데이 후원도 소중한 애국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취재원과 독자는 블루투데이에 반론, 정정, 사후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요구처 : press@bluetoday.net

구교민 인턴 기자  kyokkk1234@naver.com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교민 인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중국 전투기, 대북제재 임무 수행 중이던 ‘호주 헬기’에 섬광탄 발사
중국 전투기, 대북제재 임무 수행 중이던 ‘호주 헬기’에 섬광탄 발사
美 연방통신위원회 “中 통신장비 제거 위해, 30억 달러 추가 필요”
美 연방통신위원회 “中 통신장비 제거 위해, 30억 달러 추가 필요”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