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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① 대한민국 첫 여군의 탄생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1.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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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여군 의장대 ⓒ 자유아시아방송 캡쳐

역사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남성위주의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남성들이 주도하는 역사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역사기록에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서 그렇지, 여성들의 활약은 많았다. 특히 나라가 위급하거나 전쟁이 벌여졌을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6.25전쟁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괴공산집단이 쳐들어 왔다. 대한민국에서는 경찰, 청년, 학생, 노동자 등이 대거 참전했다. 국방의 의무가 없는 여성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육, 해, 공군 및 간호장교에 자원입대하여 참전했다.

▲ 여자배속장교 훈련학교 교육대장이었던 당시 예비역 중위 김현숙 ⓒ 해병닷컴 캡쳐

대한민국에 여군이 생기기까지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공산주의체제가, 남쪽에는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섬으로 남북이 분단되었다.

한편, 정부수립 후 문교부는 우익학생단체인 ‘전국학생총연맹’을 포함한 다른 사설 학생운동 단체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어 학생들의 심신을 단련시키고, 학교교내에 좌익세력의 활동을 약화시킨다는 취지로 각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문교부는 1948년 12월 21일부터 1949년 1월 28일까지 중등학교 학생간부 약 2400 명을 선발하여 서울사범대학에 설치된 ‘중앙학도훈련소’에 입소시켰다. 또 학생들의 훈련을 지도할 교관을 양성하기 위해 국방부와 협의하여 전국의 중등학교 이상 체육교사 중 희망자를 선발하여 ‘배속장교’요원으로 선발했다.

국방부는 배속장교는 3기에 걸쳐서 선발했다. 1기는 236명, 2기는 156명으로 모두 남자였다. 3기는 32명의 여성들이었다. 훈련을 마친 뒤 이들은 문교부로 복귀한 뒤, 각 연고지별 학교로 배치하여, 학도호국단의 군사훈련을 담당했다. 이들이 대한민국 여군의 시초이다.

▲ 대한민국 정식 첫 여군이였던 여자배속장교 단체 사진 ⓒ 네이버 누리꾼 블로그 캡쳐

대한민국 첫 여군, 여자배속장교의 구성 및 교육훈련

학도호국단은 여학교 학생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였다. 따라서 여자중등학교 이상의 학교에서는 ‘여자배속장교’를 필요하게 되었다. 여자배속장교는 체육교사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체육교사, 여자대학교 체육과 학생 그리고 조선민족청년단에 참여했던 여성운동가들로 이루어졌다.

여자배속장교 제3기로 선발된 여자배속장교 대부분은 여자청년호국대 지도자훈련을 받은 100명 중에서 사상이 온전하고 신체 건강한 자로서 해당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선발된 인권과 여자청년호국대 지도자훈련 구대장 요원 및 민족청년단에서 활동하던 김현숙의 권유로 선발된 인원, 총 32명으로 구성되었다.

여자배속학교 학교장은 육군호국군 참모부장인 원용덕 준장이었다. 여자배속장교로 선발된 32명은 구서울사범대학내(현 국립현충원) 여자배속장교훈련학교에 입교하여 1달간 군사훈련을 받았다.

여자배속장교로 선발된 여성들은 제식훈련, 지휘통솔법, 독도법, 총검술, 총기 분해결합, 각개전투, 분·소대전술, 야외전술훈련 등이었다. 특히 훈련을 받을 때 지금 받은 총기는 여성들에게는 상당히 무거운 ‘99식 모기총’으로 여성들에게는 적합한 무기는 아니었다.

여자배속장교들의 훈련 분위기는 실제 전쟁터와 매우 흡사했다. 개성 38도선 부근인 송악산에서 1주일간의 야외전술훈련이 실시되었고, 이때 호를 파고, 천막을 치는 훈련을 받으며 밤마다 총소리가 들렸다.

여자배속장교들은 이러한 교육과정을 거쳐 1949년 7월 30일, 32명 전원이 훈련을 끝마치고 육군 예비역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여자배속장교 출신인 류순숙씨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여자청년호국대 지도자 훈련은 100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교육을 받았다. 거기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과 학교 교사 등 32명이 배속장교 제1기생 교육을 받았다. 1개 내무반에 10명씩 편성되었다. 학생으로는 이범희와 김순화가 숙명여대 출신이었고, 박복순, 김정례, 박상희, 윤희열 등이 조선민족청년단원 출신이었다. 훈련도중 38도선 실전훈련을 위해 개성 송도공원으로 갔다. 훈련은 1주일가량이었으며, 정몽주 비석과 딸기밭이 휴식처였다. 임관식에는 이시영 부통령이 계급장을 달아주었으며, 육사 교장이던 김홍일 장군은 내무반 및 화장실을 설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리하여 교육이 제1기 여자배속장교로서 끝이 났다.

증언일시 1994년 9월 26일 전화인터뷰 (계속)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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