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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⑭ 공군 간호군무원의 참전활동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2.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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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국군의 모태가 된 '국방경비대' 가 창설되었다. 당시 공군도 여기 소속이었다. ⓒ 국방부 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 블로그 캡쳐

공군은 1946년 5월 5일 조선경비대 내 ‘항공기지부대’ 로 창설되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국군조직법이 제정되어 ‘육군항공사령부’ 로 개칭된 후 사령부내에 ‘의무처’ 가 편성되었다.

한편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육군에서 독립했다. 항공사령부 의무처도 ‘공군병원’ 으로 확장 개편되었다.

공군병원은 공군 장병들의 의무지원 수행과 아울러 의무인원 보충, 장비 및 시설확보 등에 관한 제반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준비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북한의 기습 도발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부상자는 늘어만 갔지만 이들을 진료할 수 있는 시설 및 의무인력 등 만성적 물자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공군본부는 6월 26일 김포에 야전병원을 설치했다. 그러나 북한의 빠른 남진(南進)으로 곧 바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27일 대전으로 옮겼지만 곧 철수해야 했다.

그러던 7월 13일,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자 8월 3일 공군병원은 부산 동래로 이동한 뒤 김해, 진해 그리고 포항에 공군병원을 설치했다.

그러나 전선이 치열하고 부상자가 많아진 만큼 의무인력은 부족했다. 그리하여 9월 5일 민간병원 의사를 모집하여 군의관 16명을 보충하게 된다.

▲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공군의 최초 전투기인 F-51는 1950년 7월 3일 첫 출격했다. ⓒ 더코리아뉴스 캡쳐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전쟁의 양산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밀리던 전선은 북진하기 시작했고.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38도선 부근까지 영토를 회복한 30일, 공군본부는 김포에 공군병원을 신설했다.

10월 1일, 국군은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하기 시작했다. 북한지역에 진출할수록 의무인력은 더욱 절실해졌다.

이에 3명의 군의관을 특채로 선발했고 공군병원 본원도 서울 충무로 2가에 위치한 ‘서울 가정보육사범학교’ 로 이동하여 진료를 계속하거나 후방으로서 전방의무대에 보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하던 국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11월 하순부터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공군병원도 12월 23일 부산 동래로 다시 이전 할 수밖에 없었다.

▲ B-29 전투기로 평양 대동강 철교를 끊고 있다. - 오마이뉴스 누리꾼 블로그 캡쳐

해가 바뀌어 1951년 1월 21일 공군이 제주도로 이동함에 따라 공군병원도 제주에 설치했으나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마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1년 3월에 들어서자 휴전회담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한 고지라도 더 점령하여 전선에 우위를 점한 후 그 부근 영토까지 점령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전선은 ‘고지쟁탈전’ 으로 변모했다.

전선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에 부상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공군병원과 의무인력의 충원이 시급해졌다.

이에 의무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1951년 3월 1일부로 ‘공군의무감실’을 창설했다. 4월 19일 공군병원 마산분원을 제1분원으로 개칭하고 부산분원을 제2분원으로 개칭했다.

동년 10월 1일, 제2분원을 해체하고 제106기지전재 제106의의무대대(대구 소재)에 편입하고 10월 20일에는 제1분원을 본원과 통합함으로써 분원제도는 폐지시키고 본원의 역할을 확대하여 의무를 담당했다.

▲ 공군 의무연구를 위해 '항공의학연구소' 가 창설되었다. 사진은 창설자 최재휘 박사 - 디지털 의사신문 캡쳐


1952년 6월 22일에는 전투조종사들의 건강과 안전 비행과 항공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항공의학연구소’ 를 창설했다.

또한 ‘의무교육대’를 창설하여 위생하사관을 양성과 각 의료요원에 대해 교육을 맡았다.

이로서 6.25전쟁 당시 공군은 공군병원을 최대한 창설했다. 이어 비행단의무전대, 기지의무전대 등을 설치하고 민간의사와 민간간호사들을 고용했다.

이들은 공군장병들의 치료와 간호를 맡았다. 또 효율적인 의무지원을 위해 간호근무원을 채용하여 예하 비행단에 배치시켰다.

한편 공군의 경우 육군과 해군처럼 간호장교를 양성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간호장교에 대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군 간호장교 대신 간호근무원을 임용했는데, 1951년 6월 1일부로 민간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자격증을 소지한 민간간호사들을 대상으로 모집했다.

그러나 6.25 당시 공군 간호군무원에 대한 기록은 남지 않았다. 따라서 간호근무원이 구체적으로 몇 명이 채용되어 근무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계속)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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