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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⑯ 여성 유격대원들의 참전활동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3.03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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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격대 여성대원의 보고 장면 ⓒ 대한민국 국방부 자료 캡쳐

6.25전쟁 기간 유격대의 활동

‘유격대’ 는 군인이 아닌 일반 주민들로 이루어진 비정규부대이며 적에게 기습, 매복 등 게릴라전을 수행한다.

한편 북한군의 기습적인 불법 남침으로 국군은 계속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이 남한지역을 점령했을 당시 모든 민간인들이 피란을 간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자원해 국군에 입대하거나 유격대를 결성하여 계급과 군번 없이 곳곳에서 북한군에 맞서 싸웠다.

유격대는 정규군 출신, 반공주의자 청년, 국군 낙오병, 피란민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인원으로 구성되었고 나이가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민간 유격대는 대부분 지역단위로 활동했다. 당시 가장 활발히 활동한 지역은 38도선과 근접한 경기도와 강원도다. 이곳 주민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북한군의 잦은 도발을 겪었기 때문에 국군이 후퇴한 후에도 북한군에 맞서 투쟁을 벌였다.

유격대는 정보수집, 적정파악, 북한 내무서와 북한군 부대 습격, 악질 공산주의자 색출 및 처단, 피란민 구출, 무기 노획, 그리고 국군 및 유엔군과 연합 작전을 전개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열악한 무기와 탄약, 보급제한, 부대의 지휘통솔, 훈련, 전술적 운용의 미흡 등으로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므로 군에 모든 장비를 반납하고 입대하거나 정훈국 선무공작요원으로 편입되는 유격대원들이 많았고 나머지는 방위군으로 입대해 노무사단으로 간 경우도 있었다.

여성 유격대원

유격대는 남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자들도 있었다.

여성유격대원들은 각 유격대에 소속되었고 주로 수행한 임무는 간호활동 및 보급품 지원이었다. 또한 피란민과 도서 주민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학과공부, 체조, 무용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여성유격대원들의 활약은 아래 각 유격대에서 볼 수 있다.

▲ 개마고원 유격대 기념탑 ⓒ 누리꾼 블로그 캡쳐

개마고원 유격대

광복 이후 북한 전역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반공인사와 애국청년들이 개마고원지역에서 반공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그동안 북한군을 피하여 지하에 잠적해 있던 애국청년 200여 명이 합세하여 ‘개마고원 유격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북한 내무서를 기습하여 무기를 탈취했다. 또한 교량 및 도로를 파괴하여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여 북한군의 이동을 방해했다.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개마고원 지역이 수복되었을 때는 남은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밀리자 이들도 미군과 함께 흥남에서 배를 타고 철수했다.

한편 개마고원 유격대는 인민학교 선생이었던 김근산, 김옥단, 황옥순, 김목단, 고금단 등 10여 명의 여성들이 소속되어 활동했다. 이들은 주류 유격대원들을 보조하는 등 태극기 제작, 정보연락 그리고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 구월산 유격대 김종벽 대장과 이정숙 보좌관 ⓒ 대한민국 국방부 자료 캡쳐

구월산 유격대(동키 제2부대)

구월산 유격대는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한 국군과 유엔군이 황해도 은율 지역에 입성하자 반공주의자 청ㆍ장년들이 무장대를 조직했다. 이어 무장대원들은 치안유지와 빨치산 토벌에 나섰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다.

또한 중공군의 계속된 공격으로 육군본부 정보국 소속 청보장교 대위 김종벽은 자신의 부대를 모두 잃었다. 김봉벽은 고향인 은율군 장련면으로 돌아와, 연풍부대를 창설했다.

연풍부대는 안악, 신천, 재령, 장련, 송화군 일대에서 예하부대로 2개 대대를 편성하여 빨치산부대와 전투를 전개했다.

이후 연풍부대는 다른 유격부대들과 연합하여 ‘구월부대’ 로 확대 개편했다.

1951년 3월에는 백령도 레오파드 기지사령부와 접촉해 ‘동키 제2부대’ 로 불리었고 대략 2,500명의 대원들이 있었다.

이처럼 구월산 유격대는 구월산에서 활동하던 북한군 패잔병 및 빨치산 부대와 전투를 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한편 구월산 유격대는 수십 명의 여성대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여성대원들은 정보수집, 간호 및 통신, 보급 교육, 공연 등을 담당했다.

특히 여성대원들은 작전지역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다는 여성의 이점을 활용하여 적극적인 정보 수집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세탁한 옷을 너는 방법으로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도 했으며, 유격대원들의 생활에 전반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제공해주는 역할도 했다.

또한 여성대원들은 창작극, 음악, 무용 등 순회공연을 실시하여 유격대원 및 피란민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구월산 유격 대원중 가장 활약이 컸던 여성은 이정숙 대장이었다. 그녀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부모와 남편이 ‘반동분자’ 로 옥사하고, 본인은 탈출하여 서하무장대를 조직했다.

그녀는 서하무장대 대원 70여 명과 농민군을 지휘하여 연풍부대와 함께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녀는 고립된 재령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하고 밤새 100여 리를 걸어 89명을 구출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구월산의 여장군’ 으로 불렸다.

이러한 공로로 육군 총참모장에게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 KLO 첩보대원들이 파견대장의 훈시를 듣고 있다. 좌측 2줄이 여성대원들이다. ⓒ 대한민국 국방부 자료 캡쳐

첩보부대(KLO) 여성대원의 활동

전쟁 이전부터 국군은 물론 청년단체에서도 대북첩보수집 활동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정부수립 후 육군 정보국에서 38도선 접경지역과 전국 각처에 파견대를 보내 방첩과 첩보활동을 전개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초기에는 첩보조직이 붕괴되었다가 곧 육군이 육군첩보대(H. I. D)를 창설하여 각 군단과 사단에 지대를 파견함으로써 대북첩보활동은 재개되었다.

한편 미군도 방첩대를 조직하여 대북 첩보활동을 수행했다. 정부 수립 이후 미군은 1949년 6월 1일, 국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 한국인 대원을 모집했다. 또한 주한연락처(KLO, Korea Liaison Office)를 창설하여 대북정부수집활동에 나섰다.

한편 6.25가 발발하자 KLO는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신속한 보고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해안과 동해안 도서지역에 파견대를 설치했다. 1950년 말을 전후하여 일명 ‘래빗(Rabbits)' 으로 불렸던 여성청보대원들을 투입시켰다.

각 파견대별로 심영애, 박정숙 등 20여 명의 여성대원들이 활동했으며 대부분 황해도 이북이나 연백출신들로 현지 실정에 밝았다.

KLO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에도 북한의 후방으로 많은 첩보원들을 파견하여 북한의 병력, 장비규모, 보급현황, 이동사항, 군의 사기, 지역 민심 등을 파악하여 유엔군 측에 제공했다.

또한 기밀문서탈취, 항공폭격 유도, 귀순공작 등 고난이도의 임무도 수행했다.

한편 극동군사령부 연락단도 6.25가 발발하자 TLO(Tactical Liaison Office)를 조직했다. 이들은 전선의 미 보병사단, 영국군 여단 그리고 국군 군단에 파견되어 첩보 및 수집활동을 돕게 했다.

TLO팀은 한국인 대원 20~30명 정도로 구성되었는데 3~4명의 여성들이 함께 있었다. 여성대원의 이름은 김병직, 김보현, 강영자 등이었다.

이로써 여성들은 유격대 뿐만 아니라 첩보부대에서 활약하여 남성들 못지않게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여성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국가수호에 성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는 후손으로써 이러한 선배들의 정신을 본 받아야할 것이다. (계속)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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