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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북괴 대남 도발사 ⑦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 사건
  • 오창욱 인턴 기자
  • 승인 2013.05.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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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 서울 현충문(자료사진) ⓒ 누리꾼 블로그 캡쳐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의 도발이 끊이지 않던 1970년 또 다시 남한의 간담을 서늘케 만드는 폭파사건이 일어났다.
1970년 6월 22일 일어난 이 폭파사건은 북괴 무장공비들에 의해 한국전쟁 20주년 행사를 기해 국립현충원에서 호국영령들에 대한 참배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및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해 시도한 무력 도발이었다.
이들은 22일 새벽 03시 50분 경 국립현충원에 잠입하여 현충문 앞에 폭약을 설치하려 했으나, 설치 실패로 폭약이 폭발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대간첩대책본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폭발물을 현충문에 설치하고 전파 및 유선 등으로 폭파시킬 계획 이였으며, 폭발물은 반경 30미터 안에 있는 인마(人馬)를 살상 시킬 수 있는 고성능 폭약이였음이 드러났다.
설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들은 계양산(인천) 일대로 도주 했다. 계양산은 높이 395미터로 강화도를 제외한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능선이 강화도와 이어져 있어 무장공비들이 도주 경로로 잡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 1970년 6월 계양산 무장공비 추격작전(자료사진) ⓒ 누리꾼 블로그 캡쳐
22일 군·경·예비군 합동수색대는 이들에 도주한 위치를 파악하고 경기도 일원에서부터 수색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동년 7월 5일 오후 김포지역에 무장공비 2명을 목격했다는 초등학교 학생의 진술에 수색망을 점차 조이기 시작했다.
공수특전단원들은 이 초등학생의 진술에 따라 김포 서쪽지역을 수색하던 중 1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의 산에서 이들을 포착하였으며 교전 끝에 사살했다. 당시 교전에서 우리군은 기관단총 1정, 권총 1정, 대검 1개, 미화 150달러, 한화 51만원, 라디오 1대 등을 노획했다.
현충문 폭파사건은 이렇게 큰 인명피해 없이 종결 되었으나 이 후에도 북한의 도발은 계속됐다.
특히 70년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이룩하기 위한 구슬땀과 북괴군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국군장병들의 피로써 발전하게 된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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