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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북괴 대남 도발사 ⑧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 오창욱 인턴 기자
  • 승인 2013.07.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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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육영수여사 사진(자료사진) ⓒ 연합뉴스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참혹한 사건으로 큰 시련을 맞게 됐다. 이날 오전 10시 23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당시 광복절을 맞아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 도중 문세광이 쏜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세광은 1951년 12월 26일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식 통명은 난조 세이코였다. 그는 세이끼 상업고등하교를 중퇴하고, 부인 강성숙과 결혼, 1974년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문세광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향권이었던 일본 해외동포단체인 ‘제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의 지령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범행 수행을 위해 제반 수단방법을 제공한 배후 북한 함흥을 기지로 하고 일본의 오사카, 고베, 요코하마 등 항구를 내왕하던 북한공작선 만경봉호의 북한 공작지도원과 제일 조총련의 오사카 서지부 정치부장 김호룡 등의 지시를 따랐다.

1972년부터 문세광은 대한민국에서 공산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지도 교양을 받아 왔으며, 1974년 3·1절 기념행사에 제 1차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지령을 받았다.

동시에 거사용 무기를 홍콩 암시장에서 구입하라는 지시와 함께 여비와 무기 구입자금을 김호룡으로부터 73년 11월 15일경 일화 50만 엔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1차시기를 놓친 문세광은 74년 5월 5일 김호룡의 지시에 따라 오사카항에 머무르고 있던 만경봉호에 승선 후 북한 공작지도원에게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장으로 제 2차 암살지령을 받았다.

문세광은 거사용 무기를 입수하기 위해 동년 7월 18일 새벽 오사카 남구경찰서 관할 다카쓰 파출소에 침입하여 일본 경찰 요시이 미키코가 소유하고 있던 권총을 탈취한 후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광복절 행사가 있던 74년 8월 15일 식장에 잠입한 그는 객석에 앉아 식순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는 순간 단상으로 접근하여 박 대통령을 향하여 3발의 총탄을, 육영수 여사를 향하여 2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대 뒤에 몸을 가까스로 피하였으나, 단상 옆에 앉아있던 육영수 여사는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피격 당해 그대로 쓰러졌다.

이어 육영수 여사는 바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후송되어 신경외과 최길수 교수의 집도로 5시간 이상의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오후 7시 경 숨지고 말았다.

또 문세광과 경호원 간의 총격전에서 기념식에 참석한 합창단의 여학생 장봉화(당시 17세, 성동여자실업고등학교)도 피격당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 1974년 8월 15일 문세광이 국립극장서 열린 광복 29주년 기념식서 박정희 전대통령을 저격했지만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사망했다. ⓒ 연합뉴스

문세광은 현장에서 바로 체포 되었으며 당시 남한 수사당국은 범인이 소지한 위조여권을 발부한 경위, 범인이 사용한 권총이 일본의 경찰서에서 사라진 것이라는 사실, 저격범의 공범 중 일본인이 끼어 있다는 사실 등 제대로 된 경위를 밝히기 위해 일본측에 범인의 배후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문세광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일본 국내법 범위 내에서의 수사 협조라는 태도를 보였으며, 만경봉호에 대한 수사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멀다고 주장해 수사과정에서 일본의 협조를 둘러싸고 민족적 감정의 마찰을 빚었다.

결국 문세광은 대법원에서 내란 목적의 살인, 특수절도죄·국가보안법·반공법·출입국관리법·총포화약단속법 등 6개의 죄목이 적용되어 사형선고 판결을 받고 동년 12월 20일 사형 집행당했으나, 일본 측은 계속해서 도의적, 법률적 책임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워 양측 간의 갈등만 심화 시켰다.

사건 이 후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에 육영수 여사가 희생양이 되어버린 격이라는 점에 애도 인파가 청와대에 연일 쇄도했다.

국민장 영결식은 74년 8월 19일 오전 10시 중앙청(현재 경복궁) 광장에서 각국 조문사절과 내외인사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되고 당일 오후 국립묘지에 안장 됐다.

▲ 육영수 여사 저격 . 시해사건 - 청와대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는 박 대통령과 유족들 ⓒ 연합뉴스

당시 상황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6개월 전인 2월에는 남한 측 어선 수언 32호, 33호 2척이 북 측 포함에 의해 격침 및 피랍된 사건이 발생 했었으며 피납어부 30명 중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세광의 8.15저격 사건(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또한 븍 측의 개입으로 실행된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설상가상으로 큰 충격에 빠진 국민들의 북한 도발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듯 지금도 우리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도발에 마음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역사를 교훈삼아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건강한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국가안보를 굳건히 하는 국민적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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