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의 디지털통신시대에서는 다양하고 활발해진 언론환경에 힘입어 논객이라고 통칭되는 언론인 혹은 시민단체지도자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거의 준 정치인 정도의 사회적 인정을 받으며, 현실적인 사회적 영향력은 오히려 '보통의 평범한' 국회의원을 넘는 정도에 이르기도 하다.
이러한 '논객정치'가, 하나의 亞(sub)정치 및 준(準)정치로서, 시민단체가 활성화되고 언론이 폭넓어진 시대에 나타난 전혀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준정치는 예전에도 있었다. 비유가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지난시절 드라마 야인시대에서의 두 주인공 김두한과 이정재의 활동이다.
주먹으로 준정치를 했던 그들과, 논리와 언변으로 준정치를 하는 지금의 논객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 하겠지만,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기성정치권과의 관계에 있어서 있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은 먼저 국회에 진출하고 이정재는 뒤따라 국회로 들어갈 꿈을 키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국회에 진출할 기회가 다가오자 뜻밖에 이제까지 이정재의 후견인 노릇을 했던 이기붕은 이정재의 지역구를 뺏는다.
이기붕의 행위에는 자신의 정치적 문제도 있지만 이 문제를 자기의 참모와 상의할 때 참모가 한 말이 결정적이었다. '김두한이 들어와서 국회를 거의 휘어잡지 않았는가. 이정재는 전국적인 조직도 있고 이미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게 공천을 주어 국회의원이 되게 하면 범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일부 영향력 있는 논객들은 나름 제 위치에서 국가사회에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향력은 오히려 정식으로 제도권정치의 자격과 권한을 가지고 행사한다면 더 효과적이라고 보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인이 언론인으로 만족한다며 정계입문을 고사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물론 그렇다면 그 언론인도 준정치인보다는 언론인다운 처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잠재력이 큰 정치에너지를 기성정치권이 포용하지 못한다면 정치권의 발전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실질적 존재가치도 의문이 생긴다.
물론 기존의 정계입문의 길도 매우 좁다. 특히 정치풍토에 익숙하지 않은 인재들에게 정치참여의 길을 내주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인 비례대표제 또한, 정당내부의 돌려먹기 혜택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천의 자리는 매우 한정된다.
그러나 그 몇 안 되는 자리라도, 이기붕의 이정재에 대한 견제와 같이, 의도적으로 '준정치인'을 회피하여 '만만한' 정치신인에게만 날개를 달아주려 하는 경향이 정치권에 만약 있다면, 이것은 국민주권의 회복차원에서 시정되어야 한다.
물론 당시 이정재가 국회에 등원했다하여 국민을 위한 더 좋은 정치를 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도 이제는 난숙기에 다다른 지금 국민은 곳곳에 뭉친 정치에너지의 조화로운 활성화를 기대한다. 이들 에너지를 운용하고 구체화할 잠재력이 있는 인물들이 기존 정치권의 견제에 눌려 야인으로만 남는다는 것은 큰 손실이다.
이들 '준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실질적 정치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기존정치권의 甲입장에 대하여 乙에 머물게 되는 것은, 이념운동의 판단척도를 정치권에서만 찾았던 자체적 문제도 있다. 이에 따라 정치인으로서의 위치도 이념운동가로서의 명분도 함께 잃을 위험에 처해지는 것이다.
애국진영 등의 諸 운동세력은 기존정치의 이중대의 틀에서 머무르지 말고 이념적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기본적 명분이나마 유지하기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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