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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의 독립운동가 이성구 선생
  • 국가보훈처
  • 승인 2013.10.03 21:27
  • 댓글 0

일제에 폭탄으로 맞선 의열투쟁의 선봉장
○친일파 태산면장 처단의거로 징역 10년형
○상해 일본영사관에 2차례 폭탄 투척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 중 순국

10월의 독립운동가 이성구
(1896년 ~ 미상)

◈일제의 식민통치에 폭탄으로 맞선 의열투쟁의 선봉장◈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성구 선생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선천면사무소 방화사건을 주도하여 징역 10년 형을 받았고, 병인의용대 소속으로 상해 일본영사관에 2차례 폭탄을 투척하여 징역 7년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 중 순국하였다.

선생은 1896년 평안북도 선천군 수청면 고동읍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 기간 중 이수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선생은 이 외에도 이동농, 또는 김동농이라는 이명을 사용하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때 선생은 선천읍에 위치해 있던 선천면사무소 공격 방화사건을 주도하였다. 보안법위반 및 방화소요죄로 징역 10년의 판결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병보석을 얻어 1923년 5월 형집행정지 석방되자 선생은 이를 이용하여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망명 후 1923년 9월 상해 독립신문사에 입사한 선생은 2년 여 동안 식자공으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 상황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였고, 마침내 의열투쟁의 선봉에서 일제에 항거하기로 결심하고 1926년 1월 병인의용대에 참여하였다.

1926년 병인의용대에서는 세 차례 상해 일본총영사관 폭파를 단행하였다. 상해주재 일본 총영사관은 독립운동 세력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곳에서 모진 학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았고,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 경우도 있었다. 선생은&nbsp 강창제, 김창근 등 대원과 함께 시한폭탄을 영사관으로 투척하였다. 이로 인해 창고가 파괴되었고 일경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후 선생은 1929년 1월 한국노병회 특별회원으로 가입하여 임시정부 후원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6월 상해 한국독립당에 가입 후 기관지인《상해한문》의 기자로 활동하던 선생은 1932년 10월 이봉창의사가 일본에서 순국하자 애도의 글을 실어 배포 하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고,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후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와 수색이 진행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해 한인친우회 위원장 유인발을 저격하는 등 일제의 침략통치에 적극 항거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계속되는 단속과 검거로 인하여 결국 1933년 10월 12일 프랑스 조계에서 체포되었고 이듬해 3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8년 선생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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