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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독립운동가 '원심창 선생'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13.12.0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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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원심창
(1906. 12. 1 ~ 1971. 7. 4)
◈한·중·일 3국에서 적의 심장을 겨눈 아나키스트◈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원심창 선생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29일(금) 밝혔다.

선생은 흑우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흑풍회 및 흑우연맹을 조직하였으며, 천진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주중일본공사의 처단을 계획하던 중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1906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의협심이 강하였던 선생은 평택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3·1만세운동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선생은 1920년 서울의 중동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무렵 중퇴 후 1923년 일본 도쿄로 유학하여 니혼(日本)대학 사회과에 입학하였다. 학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자퇴하고 독학을 통해 일본의 사상가인 오스기 사카에 등의 아나키즘 사상에 공감한 선생은 재일한인 아나키스트 단체인 흑우회의 박열과도 교유하였다. 선생은 도쿄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과 박열의 일왕폭살기도 사건을 통해 아나키스트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4년 일본의 신진 유학생과 함께 흑우회를 재건하고, 1926년 흑색운동사를 설립하여 기관지 《흑우》등을 간행하였다. 흑색운동사를 흑색전선연맹으로 바꾸어 일본의 전국단체인 흑색청년연맹에 가입하여 반제국주의 연합전선을 형성하였다. 이어 1927년 흑풍회로 개칭, 이듬해 흑우연맹으로 확대ㆍ개편하고 친일단체인 상애회와 대립하여 항일투쟁을 물론 반공산주의 활동과 선전활동, 노동운동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공산주의자들과 충돌한 ‘학우회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보석 석방된 후 중국으로 망명을 결심하고, 이듬해 5월 상하이에서 한인 아나키스트들의 총 본부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였다. 1931년 10월부터 서기부 책임으로 청년동지들의 규합은 물론 각종 정세감찰 및 보고와 항일 사상을 선전하는 중책을 맡았으며, 흑색공포단의 대원으로 천진에 있는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등 의열투쟁에도 참여하였다.

1933년에는 이른바 ‘상해 육삼정의거’인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 암살을 계획하였다가 미수에 그치고 말았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일제와 국민당 친일세력의 밀약이 세상에 폭로되어 반대세력과 민중들의 시위가 격화되었고, 일제의 공작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선생은 일본 나가사키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일제의 죄악상과 야만적 행패를 꾸짖고 일체의 항소 권고를 거부하였으며, 해방 후 출옥시까지 12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는 등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항일투사로서 평생을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정부에서는 1977년 선생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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