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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의 독립운동가 연병호 선생
  • 박정환 인턴 기자
  • 승인 2014.04.0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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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병호 선생 ⓒ 인터넷 캡처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연병호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하여 임시정부와의 연계역할을 담당하였고,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한국혁명당의 조직 및 신한독립당으로 통합 등 정당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친일파인 상해거류조선인 회장 처단 활동으로 체포되어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선생은 1894년 11월 22일 충북 괴산 도안 석곡리에서 태어났다. 민족의식이 남달랐던 형 연병환(1878~1926)의 영향을 받아 1915년 경성기독교청년회관 영어과를 다니며 안재홍, 조용주 등과 교류하고, 조선기독청년회, 조선인유학생학우회 등을 통해 민족현실을 논의하는 등 동지적 유대를 쌓아 나갔다.

선생이 독립운동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3.1운동 직후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결성하면서였다. 청년외교단의 외교원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의 연계활동을 위해 1919년 말 북간도에 근거를 둔 대한정의단군정사에 합류해 그 역할을 수행하였고, 〈외교시보〉를 발행해 국내 인사들에게 내외정세의 동향을 알리는 등 독립운동 2세대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20년《독립신문》에 〈독립기념일의 말〉이라는 기고를 통해 투철한 독립정신과 강인한 실천을 주장하였고, 1922년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한인사회의 대동단결을 고취하고 청년운동을 활성화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를 위해 상해에서 세계한인동맹회, 유호(상해)청년회, 시사책진회 등의 조직과 참여를 통하여 독립운동계의 난국을 타개하고자 노력하였다.

1923년 북경대학에 입학하여 중국 항일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중연합체인 동서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무장투쟁 노선에서 대일항전의 방략을 추진해 나갔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1925년 말 만주로 건너가 신민부에 참가하였고, 블라디보스톡에 있던 국제공산당 조직으로부터 군자금을 확보하는 일을 맡아 독립군 양성 계획을 적극 지원하였다.

1929년 무렵 선생은 남경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혁명당 결성에 참가하였다. 1932년 한국광복동지회, 조선혁명당, 의열단, 한국독립당 등과 함께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추진하였고, 만주의 한국독립당과 합당하여 신한독립당으로 통합 발전시켰으며, 대당조직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5개 정당을 통합한 민족혁명당을 창당하는 등 정당의 통합을 통한 독립운동에도 열정을 기울였다.

1933년 9월 충청도의원의 자격으로 다시 임시의정원에 참여하였던 선생은 1937년 초 친일파인 상해거류조선인회장 저격사건으로 상해에서 체포되어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30여 년간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독립운동세력의 조직과 통합에 헌신한 삶이었다.

정부에서는 1963년 선생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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