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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살수대첩 주역' 을지문덕 장군빼어난 기만술로 隋軍<수나라> 전멸시켜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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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말부터 7세기 초엽 고구려와 수나라(隋 : 589~618)는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크게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전쟁 가운데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의 제2차 침략 때인 612년(영양왕 23) 평양성 부근까지 침략했다가 후퇴하는 수의 군대를 살수(현재의 청천강)에서 크게 격파시켰던 인물이다. 그는 ‘평양의 석다산(石多山) 사람’(1794년간, 홍양호,『해동명장전』)으로 병법 가운데 특히 ‘기만술’에 능한 장수였다.

612년(영양왕 23) 수 양제는 우중문·우문술의 휘하에 30만5000명의 별동대를 편성해 압록강을 건너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직공할 전략으로 병사들에게 100일분의 식량과 무기, 의복을 지급했다. 수의 병사들은 40여 일간 1인당 곡식 3석에 해당하는 중량을 운반해야 했다. 군량을 버리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는 엄격한 군령에도 병사들은 행군 도중 식량을 땅에 묻어버리기도 했다. 그 때문에 굶주리게 되는 병사가 속출했다.

을지문덕은 이러한 수의 약점을 미리 간파하고 수군이 압록강에 집결했을 때 수군의 진영에 나가 거짓으로 항복했다. 이는 물론 적의 형세를 정탐하기 위한 을지문덕의 전략이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와 전투를 벌일 때마다 수의 군사들에게 피로가 가중될 수 있도록 거짓으로 패해 달아나는 척했다. 수의 군대는 이러한 을지문덕의 기만술에 빠져 마치 이긴 것으로 믿고 마침내 살수를 건너 평양성 30리 되는 곳에 도착해 군영을 설치했다. 이때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회군을 종용하는 시를 지어 보내는 동시에 수 양제에게 영양왕의 알현 등을 내세우면서 거짓 항복을 청했다.

 을지문덕이 퇴각의 구실을 만들어 주자 전투력이 바닥난 수군은 철수를 단행했다. 수의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반쯤 강을 건넜을 때 을지문덕은 군사를 출동시켜 그 후군을 맹격함으로써 수의 군대를 전멸시켰다. 30만50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수의 병력은 고작 2700명에 불과했다. 이렇듯 을지문덕은 살수에서 기만술을 펼쳐 수나라의 대군을 크게 물리쳤으며, 이로 인해 수나라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김대중 전쟁기념관 학예팀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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