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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양만춘(楊萬春)당 태종 꿈 꺾은 안시성 전투 승리의 주역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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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일간 항전…고구려군 반격 발판 마련

양만춘(사진)은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의 안시성(현재의 영청즈ㆍ瑛城子)을 침략했을 때 성민들을 규합해 60여 일간의 항전 끝에 당군을 물리친 장수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중국과 맞서 싸워 승리한 몇 안 되는 전투 중의 하나인 안시성 전투의 주역 양만춘이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고, 또 어떻게 살다간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안시성 전투에 대해서 전하고 있는 ‘삼국사기’조차 성주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다만 “안시성주는 재능과 용맹이 있어 막리지의 난에도 성을 지키고 불복하므로 막리지가 이를 쳤으나 함락시키지 못해 그대로 맡겼다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뤄 볼 때 안시성주 양만춘은 막리지 즉, 연개소문이 수많은 반대파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았을 때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켰던 인물이었다고 여겨진다.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비로소 조선후기에 이르러 이익의 ‘성호사설’과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에서 등장한다.

그러면 안시성 전투는 왜 일어났으며, 또 양만춘은 어떻게 당군을 격퇴시킬 수 있었을까?

수나라의 뒤를 이은 당은 세계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 아래 주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더니 7세기 중엽에는 고구려에도 압력을 가해 왔다. 이에 고구려는 랴오허(遼河) 강 주위의 국경선에 천리장성을 쌓고 당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이 시기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키고 집권하자 당 태종은 이를 구실 삼아 645년 수십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육군과 수군으로 나누어 고구려를 침략했다. 랴오허 강을 건너 요충지인 개모성ㆍ요동성ㆍ비사성 등을 차례로 빼앗은 후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안시성을 공격해 온 것이다.

안시성은 비록 조그마한 산성이었지만 서쪽 변경의 중요한 요새였다. 이 전투에서 당군은 특별히 제작한 공성무기로 성을 공격했으나 고구려는 목책을 세워 방어에 임했다. 또한 당군은 안시성을 점령하기 위해 안시성의 성벽보다 높게 토산을 쌓았다. 그러나 당군이 쌓던 토산이 그 높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자 양만춘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당군을 맹공격해 승리의 기세를 잡았다. 안시성에서 60여 일간 완강히 저항하는 사이 전열을 정비한 고구려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펼쳐 마침내 성주 양만춘을 비롯한 성민 모두가 굳세게 저항한 결과 당군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전쟁기념관 학예팀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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