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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다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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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595~673)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삼국의 역사를 이끈 인물들을 소개한 ‘삼국사기’ ‘열전’ 10권 중 3권이 김유신에 대한 분량이다. 또 내용의 30%를 차지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장수로서 보여준 지략과 ‘영웅적’ 활동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삼국사기’가 편찬된 고려시대에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의 관점에서 신라가 이룩한 삼국통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후세에 전승시키고자 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김유신의 본관은 김해며,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2대손이다. 만노군(현재의 충북 진천)에서 출생한 김유신은 어린 시절부터 심신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해 15세(진평왕 31)에 화랑이 돼 용화향도라 불린 낭도를 이끌고 화랑정신을 길렀다.

김유신이 전공으로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는 629년(진평왕 51) 8월 신라가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할 때 중당의 당주로 출전한 데서 비롯됐다. 당시 적군(고구려)의 역습을 받은 아군(신라)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싸움이 불리해지자 아버지 소판 서현에게 “제가 벼리와 옷깃이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후 홀로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의 머리를 베어옴으로써 승리의 기틀을 잡아 대승을 거뒀던 것이다.

신라의 국세가 크게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642년(선덕여왕 11) 백제와의 전쟁 이후였다. 백제의 윤충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현재의 경남 합천)을 공격, 성이 함락되면서 성주이자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이 전사하고 딸 고타소도 죽었던 것이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처남 매부 사이로 김춘추의 부인인 문희가 바로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이다.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지원을 부탁하러 떠났으나 실패하자 다시 당나라로 눈길을 돌려 나당연합군을 결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신라의 대당외교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면에도 김유신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644년 김유신은 상장군이 돼 백제의 가혜성 등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쟁영웅으로 거듭났다. 647년(선덕여왕 16)에는 여왕을 폐하려고 난을 일으킨 상대등 비담과 염종의 반군을 토벌해 신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특히 648년(진덕여왕 2)에는 김유신이 백제에 빼앗겼던 대야성을 공격해 함락시켰으며, 이때 포로로 잡은 백제 장군 8명을 적진에 묻혀 있는 김품석과 고타소의 유골과 맞교환해 김춘추의 한을 풀어 주기도 했다.

654년 3월 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이찬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한 것도 김유신이었다. 660년(태종무열왕 7) 상대등에 오른 김유신은 7월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이어 668년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태대각간의 최고직위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삼국통일을 눈앞에 둔 채 673년(문무왕 13)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대중·전쟁기념관 학예팀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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