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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 장군지형·기상 이용한 전술로 나라 구하다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0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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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는 전략과 전술, 장수의 자질과 통솔력, 병력과 훈련정도, 무기체계 등 다양하다. 1018년(현종 9)과 1019년에 고려를 침공한 거란군을 흥화진(현재의 평북 의주군 일대)과 귀주에서 각각 지형과 기상을 이용해 물리친 장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강감찬(948~1032)이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강궁진의 아들로 태어난 강감찬은 본래 문관으로, 983년(성종 2) 과거에 장원급제해 예부시랑·한림학사·승지·중추원사·이부상서를 역임했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을 때 강감찬은 상원수의 지위로 전쟁의 정면에 섰던 인물이다. 당시 70세의 고령이었음에도 흥화진 전투에서 펼친 그의 전술은 참으로 뛰어났다. 강감찬은 흥화진 일대가 지형이 험하고 나무들이 빽빽하며, 동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부원수 강민첨에게 굵은 밧줄로 소가죽을 꿰어 강을 막은 후 기병 1만2000명을 선발해 산중에 매복시키라고 지시했다. 거란군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을 때 소가죽을 묶었던 밧줄을 끊어 강물을 일시에 흘려보내자 대부분의 거란군은 강물에 휩쓸려 죽었고, 헤엄쳐 도망치는 거란군은 매복하고 있던 고려군이 추격해 섬멸시켰다.

다음 해인 1019년 정월 소배압이 다시 고려 개경을 침략해 오자 강감찬은 병마 판관 김종현에게 1만 명의 병력으로 개경을 방어하도록 했다. 그리고 거란군의 개경 입성에 대비해 들판의 작물을 미리 거두게 하고 백성을 성안으로 피난시켰다. 개경에 도착한 거란군은 이미 지치고 굶주린 상태였다. 마을이 텅 비어 군량미를 구할 수 없게 된 거란군은 결국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강감찬은 퇴각하는 거란군과 귀주에서 싸움을 벌였고 양군 모두 승부를 보지 못한 채 팽팽히 맞서고 있을 때, 갑자기 바람이 남풍으로 바뀌면서 비가 쏟아졌다. 강한 비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기 시작한 것이다. 남쪽에서 공격하던 고려군의 화살은 바람결을 타고 잘 날아갔고 명중률도 높았다. 반면, 비바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쏘는 거란군의 화살은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허공만 갈랐다. 고려군은 강한 비바람을 등지고 거란군을 공격할 수 있었다. 당시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간 거란군의 병력은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적장 소배압은 갑옷에 무기까지 버리고 압록강을 헤엄쳐 달아났다.

‘고려사’ 강감찬 열전에는 “강감찬은 성품이 청백하고 검소하며 자기 재산 경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체격이 작고 용모가 보잘것없었으며 평상시에는 해지고 때 묻은 의복을 입고 있어서 누구나 그를 보통 사람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러나 엄숙한 태도로 조정에 나아가서 국사를 처리하거나 국책을 결정하는 마당에서는 당당한 국가의 중신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당시에 풍년이 계속되고 백성이 생활에 안착해 나라가 평온한 것을 사람들은 강감찬의 덕으로 이뤄진 것으로 여겼다”고 전한다. 뛰어난 전략과 백성을 위하는 자애로운 인품으로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강감찬의 리더십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김대중·전쟁기념관 학예팀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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