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특집기획
종북세력의 체제위협 활동과 대응방안 ② 종북세력의 역사종북세력의 발호와 대한민국의 체제위협
  • 자유민주연구원
  • 승인 2015.04.10 15:15
  • 댓글 0
3. 종북세력의 역사
종북세력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공산주의세력의 태동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 제1기는 공산주의 태동기이다.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세력이 태동된 것은 1920년대 무렵이다. 세계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인 1917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은 연해주, 시베리아의 해외 한인들과 일본 유학생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고 이를 국내에 유포하면서 부터 공산주의세력이 싹트기 시작했다.
일제하 공산주의 운동사는 크게 3단계로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이는 ①공산주의 사상・조직 국내 정립기(1920-1924) ② 조선공산당 결성 및 활동기(1925-1928) ③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기(1929-1945) 등이다. 이 시기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코민테른의 지원 아래 국제공산주의혁명 전사의 일원으로 조선의 해방과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해 투쟁해온 시기였다.
둘째, 제2기는 인민정권 수립투쟁기 및 종북세력 등장기다. 해방직후 공산주의운동은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공히 인민정권 수립투쟁으로 상징된다. 이시기 좌익세력들은 대다수 국민들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여망을 져버리고 소련의 지령에 따라 찬탁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고 인민정권10)을 수립하기 위한 각종 테러, 방화, 총파업, 유격전, 무장폭동 등을 자행하는 등, 어느 시기보다 좌익세력의 준동이 드센 시기였다. 해방이 되자 좌익세력들은 조선공산당의 재건작업에 즉각 착수했는데, 박헌영의 주도로 1945년 9월 11일 공식적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 해방직후 남한에는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 외에도 연안파의 지도를 받는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및 군소그룹으로 좌파세력들이 분파되어 있었다. 이들 세력은 박헌영 주도로 기존 3당 세력을 흡수하여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약칭 : 남로당)을 결성하게 된다.
이 시기 좌익세력들은 1946년 7월 국립서울대학교 종합화안 반대투쟁(일명 국대안 사건), 9월 총파업, 10월 대구폭동사건, 1948년 2.7 폭동, 5.10 총선반대투쟁, 여순주둔군 반란사건, 제주 4.3폭동 등 무장폭력투쟁을 일으키고, 지리산 등에서 무장유격투쟁을 전개하여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등의 반민족적 행위를 자행하였다. 또한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 등이 있다. 이때부터 북한정권의 대남적화노선을 수용하고 신봉하는 종북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셋째, 제3기는 종북세력 침체기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전면 불법남침으로 야기된 6.25 남침전쟁(1950-53년)은 우리사회에서 종북세력을 일소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종북세력들은 거의 괴멸되었고 일부 잔존세력들은 수면 이하로 잠복한 상태였다. 6.25 남침전쟁을 겪으면서 우리사회에는 굳건한 반공체제가 들어서고 국민들도 확고한 반공이념으로 무장되어, 종북세력들이 거의 발호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휴전 직후부터 대남공작부서(노동당 연락부, 내무서 사회안전국, 민족보위성 정찰국 등)를 재편하고 간첩을 남파시켜 지하당구축과 동조세력 포섭을 위한 집요한 공작을 진행시켰고, 그 결과 우리사회에는 이른바 ‘혁명의 씨앗’이 서서히 발아하기 시작하면서, 종북세력이 부활한다.
네째, 제4기는 1960년대 지하 연대투쟁기이다. 이 시기에 종북세력은 본격적으로 북한과 연계하여 활동한 시기이다. 6.25 남침전쟁의 결과 지하에 잠복해 있던 종북세력과 1950년대 말 재발아 한 학원가의 의식화세력 등이 합류하여 지하활동으로 종북활동의 맥을 이어 온 시기였다. 또한 북한의 집요한 대남공작의 결과 지하당이 구축되어 활동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64년 인혁당(인민혁명당)사건11), 1967년 동백림간첩단사건, 1968년 통혁당(통일혁명당)사건, 1969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등이 있다. 이 시기는 종북핵심세력들이 우리사회 내부에 ‘혁명거점’을 부식(扶植)시키며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동 간첩사건 관련자 일부는 이후 복권되어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 중이다.
다섯째, 제5기는 반독재민주화운동위장기이다. 1972년 10월 출범한 유신정권에 대항하여 종북세력들이 공산주의 건설목표를 은닉한 채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기치를 내걸면서 세력 확산을 기하였다. 또한 이시기 종북운동은 정치문제와 학내문제외에 노동현장과 농촌, 빈민운동 등에 까지 직접 투쟁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계기는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사건(1970년) 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종북세력들은 공개적으로는 일반 학생, 지식인 및 국민대중의 순수한 민주화열망을 수단삼아 정권타도를 실현하기 위한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전개하면서 지하에서는 좌경의식화공작에 주력하고 북한과의 연계 속에 전국적 규모의 전위조직 결성을 시도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운동세력이었던 학생운동세력의 성향은 지하의식화 그룹에 참여한 핵심세력만 좌경의식화된 상태였고, 유신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부분의 일반 학생들은 좌경혁명론에 동조한 상태는 아니었다. 핵심세력들은 여전히 일반학생들에겐 그들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지향성을 은닉한 채, ‘민주화투쟁’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1979)사건에서 보듯이, 사법처리된 인원만 100명이 넘는 사건으로 국내 종북세력과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당시 남민전의 무장강도조직인 혜성대(彗星隊) 조직원으로 동아건설 회장집을 턴 이0영씨는 민주통합당 공천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여섯째, 제6기는 사회주의지향 표출기이다. 1980년대는 한국좌파운동사에서 양적.질적으로 일대 전환을 가져온 시기이다. 그 이유는 1979년 10.26 사건이후 1980년 초 이른바 서울의 봄과 5.17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면서 1980년대 중반이후 좌파운동은 과거와는 달리 급속히 전국 규모화하여 그 세력이 양적으로 확대되었고, 질적으로는 사회주의운동성향이 단순한 민주화투쟁에서 공개적으로 종북.계급투쟁성을 표방하며 사회주의지향 투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남한판 사회주의혁명론 정립을 위한 치열한 사상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는 1980년 초 ‘무학(무림-학림)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1982년 ‘야비-전망 논쟁’, ‘깃발과 반깃발논쟁’(MC-MT논쟁), 1985년의 ‘C-N-P논쟁’12), 1986년의 ‘자민투와 민민투논쟁(NL-CA논쟁)’ 1989년 ‘NL-ND-PD 논쟁’13) 등으로 대표된다.
1980년대 중반 운동권은 자민투계와 민민투계로 양분되어 공개적인 좌경노선을 표방하며 치열한 사상투쟁을 전개했고, 이들 세력이 분파되어 현재 자민투계는 NL주사파계열(종북계열)로, 민민투계열은 NDR파, PDR파, 트로츠키파, NL비주사파 등 맑스레닌계열로 계승되었다.
특히 1980년 중반 이후 종북세력이 국내 좌파운동권의 주류로 등장하는 시기이다. 종북 주사파계열은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거쳐 1987년 8월 한국 대부분의 대학과 전문대학이 포함된 최대의 학생운동단체인 .전대협.(전국대학생 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하게된다. 전대협.은 북한의 대남혁명노선을 수용하여 한국사회변혁 운동론을 ‘자주,민주, 통일’ 운동노선으로 정립하고 종북편향의 각종 투쟁을 전개해오며 1980년 후반기 사회주의운동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해 왔다.
반면 민민투계는 각종 정세관의 차이로 CA(제헌의회)그룹, CPC(헌법제정민중회의), CPA(헌법제정민중의회)로 분파되었고, 특히 CA그룹은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을 거치면서 다수파와 소수파로 분열되어 다수파 A그룹은 NL비주사파를, 다수파중 B그룹은 제독PD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CPA, CPC그룹은 오늘날 PD(주로 제파 PD)파로 계승되고 있는 등 매우 복잡한 분파과정을 연출한바 있다. 이 시기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등 실정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된 상당수 인사들이 명확한 전향과정도 거치지 않고 사면, 복권되어 여.야당 가리지 않고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거나, 활동하고 있다.
일곱째, 제7기는 직업혁명가 활동기이다. 1990년대의 운동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소수정예의 전문 직업혁명가가 등장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핵심세력(전위세력)이 완전히 직업혁명화한 시기였다. 또한 활동무대가 1970, 80년대의 학원계와 노동계에서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확산되어, 우리내부에 이른바 ‘종북 네트워크’가 확고히 구축되었다고 평가되는 시기이다.
또한 종북세력인 NL주사파 이외에도 북한과 연계되지 않은 자생적인 사회주의세력(맑스레닌계 : NDR, PDR, 트로츠키파 등)들이 대거 등장하여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이다. 이시기 운동권은 ①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하게 무장되었으며 ② 조직규모가 확대되었으며, ③ 간첩을 능가하는 철저한 조직보위책을 운용하고 있고 ④ 투쟁양상도 합법, 반합법, 비합법투쟁을 적절히 배합구사하고 있고 ⑤ 투쟁영역도 북한 및 국제 맑시즘조직과 직접 연계하는 등 비약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 시기 종북세력과 북한이 직접 연계된 지하간첩단만 해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1992), 구국전위(1994),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1999) 등이 있다. 여덟째, 8기인 2000년대의 특징은 종북세력이 제도권 및 정부사이드 등 우리사회 각계각층에 안착하여 종북영향력을 국가전반에 확산시키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종북세력들은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출범에 편승하여, 그들의 과거 종북.사회주의지향 활동을 민주화운동이니, 민주개혁운동, 평화애호운동 등으로 미화하며 제도정치권 및 정부사이드에 대거 진출하여 이른바 종북의 영향력을 정부정책 및 우리사회 전반에 확산시켜 온 시기이다. 또한 이시기에 종북세력들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 안보수사기관(국정원, 경찰 보안수사대, 기무
사, 검찰 공안 등)의 무력화 공세를 펼치며 결국 안보시스템의 약화 및 우리사회의 중추세력인 자유민주진영(보수우파세력)의 무력화를 시도한바 있다.
실제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정부소속의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 의문사진상규명위, 각 부처 산하 과거사위 등을 통해, 남파간첩과 포섭간첩 및 빨치산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고, 독일거주 거물급 간첩 송두율이 해외의 양심적인 민주화운동가로 미화되고, 사회주의혁명 등 반국가이적활동을 하다가 실정법을 위반하고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인사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여 명예회복과 더불어 거액의 보상금까지 수령한바 있다.
예를 들면, 2011년 적발된 왕재산간첩단의 총책 김덕용과 3인자인 임순택이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되었고, 상당액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국민 혈세로 간첩들에게 공작비에 보태라고 용돈을 준 격이다.14)
특히,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이석기 내란선동사건에서 보듯이 종북세력들이 합법정당의 탈을 쓰고 헌법기관인 국회까지 대거 진출하여 호위호식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계속)

종북세력의 체제위협 활동과 대응방안 ① 종북세력의 개념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8729

안보단체 블루유니온에서 운영하는
블루투데이 후원도 소중한 애국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취재원과 독자는 블루투데이에 반론, 정정, 사후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요구처 : press@bluetoday.net

자유민주연구원  http://www.kild.or.kr/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유민주연구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中 해킹그룹,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 국내 12개 학술기관 홈페이지 해킹
中 해킹그룹,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 국내 12개 학술기관 홈페이지 해킹
‘국민 영웅’ 박항서 감독 떠나보내는 베트남···“리더십과 성과는 오랫동안 국민 마음 속에 남을 것”
‘국민 영웅’ 박항서 감독 떠나보내는 베트남···“리더십과 성과는 오랫동안 국민 마음 속에 남을 것”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