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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골수 386 주사파 출신의 체험적 고백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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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좌익ㆍ용공이 아니라 공산주의였다. 노무현은 이제 와서 그들을 따르는 「정신적 386」이 되었다.

「386」의 거짓말

최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인 박세일 의원은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기본적으로 좌파의 반체제 운동이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열우당 386출신들은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독재정권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은 386세대들이 제도권에 대거 진출하여 한국을 움직이는 주체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 . 지금 권력을 움직이고 있는 386들은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 좌경운동이었다」는 주장을 「색깔론」이라고 반박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거짓말이다. 19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좌파운동이었다. . . 한국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의회주의를 표방하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해서 소비에트식 혁명을 추구하거나,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했다.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은 고립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강령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 . . 우선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그 다음 단계에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단계적인 방법을 채택하였다. 민주화운동은 이렇게 내걸린 위장이었다. 이러한 전략에 말려들어 군사정권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한 악으로 몰리게 됐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은 좋은 운동인데 군사독재자들이 억울하게 좌경-용공을 조작해 뒤집어 씌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의 민주화운동 주도세력은 용공의 수준이 아니라 좌파 공산주의 그 자체였다. 정권을 잡은 지금 그들은 민주화를 넘어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구현하려 하고 있다.

주사파(主思派)의 탄생

필자는 1982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그해 4월 지하 이념서클에 가입하였다. 처음에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같은 책을 읽고 세미나를 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합숙 때부터 「자본주의 구조와 발전」이라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일본서적을 보기 시작했다. 그 후 필자는 2학년 때인 1983년에 「강제징집」으로 학교를 떠났다. 내가 학교를 떠나 있는 동안 운동권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비롯하여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을 교과서로 채택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이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현장에 진출한 것은 마르크스의 가르침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의 영도세력」으로 규정한다. 노동자의 의식화·조직화는 혁명을 지향하는 세력의 최우선 과제가 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80년대에 적어도 수천 명에 이르는 학생운동 출신들이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당시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마르크스주의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서서, 혁명운동의 지도적인 이념, 실천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강제징집으로 군대에 갔다 와서 1985년경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서 기거했다. 큰아버지가 어느 날 부르더니 『이 집이 사회주의 혁명의 거점이 되도록 놓아둘 수 없다』며 바로 짐을 싸라고 하셨다. 제대 후 당시 학생운동권에서 널리 읽히던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당의 두 가지 전술」,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 같은 책과 유인물을 읽다가 큰아버지에게 들킨 것이다.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좌파」 바람은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광범위한 열풍이었다. ‘사회과학’이라고 통칭되는 좌파서적이 널리 팔리게 됨에 따라 전문출판사들이 수십 개 생겼고, 대학가에는 ‘사회과학 전문서점’이 성황을 이루었다. 당시 서울대 주변의 하숙집에 가면 학생들의 서가에 좌파서적 몇 권은 꼭 꽂혀 있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에서는 대체로 1982년 이후 좌파운동권이 주류를 형성하여 대학문화를 주도하고, 과(科)학생회 등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좌파운동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운동권 핵심들이 만들어서 뿌린 운동노선을 둘러싼 각종 팸플릿이나 또는 주요 공안사건의 공소장들을 읽어 보면 명확해진다.

전혀 논란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의 공인들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졸렬한 행위이다.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갑자기 좌파가 득세한 것은 쉽게 설명되기 어려운 현상이다. 우선 세계사적 조류와 동떨어진 매우 기이한 현상이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1980년대에 종말의 길로 가고 있었으며, 중국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하였다.

망해가는 사회주의 지향

1980년대 한국의 좌파는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사회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채택했다.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공식적으로 오류로 평가된 바로 그 시점에, 한국의 대학가에서는 문화혁명을 찬양하는 리영희의 저서가 필독서가 되는 심한 「문화지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1980년대의 좌파운동을 그 이전 좌파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있으나, 그 직접적인 연계가 증명되지는 않는다. 즉 해방정국에서의 좌파운동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남한에서는 거의 명맥이 끊겼다. 통혁당, 남민전과 같은 좌파운동 또한 1980년대 학생운동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1980년대의 좌파운동은 초기에 북한과 연계가 없는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하였다.

1980년대의 한국 사회는 이미 산업화의 결실이 맺어지면서 절대빈곤층이 대폭 줄어들고,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자라기 좋은 토양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좌파로 기울어진 386세대는 한국 근대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세대였다. 386세대에게는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넓게 주어졌으며, 급속한 경제성장 덕분에 취업난을 겪지 않았다. 이 점에서는 그 위의 세대는 물론이고,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현재의 20대에 비해서 참으로 수혜를 받은 세대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이 마르크스주의를 널리 받아들인 데는 1980년 신군부의 등장으로 인한 「민주화의 봄」의 좌절과 깊은 관련이 있다. 「단순한 민주화운동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뚜렷한 이념에 바탕한 민주화운동이 추진되어야한다」는 근본주의적 논리가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종속이론, 사회민주주의, 네오마르크스시즘 등 다양한 좌파이론에 대한 모색 과정을 거쳐 결국 마르크스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매우 논리적이며, 세계와 사회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에게 큰 매력을 주었으며, 노동자·농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 편에 선다는 대의명분이 청년들을 격동시켰다. 수천 명의 지식 청년들이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고 노동현장이나 농민, 빈민 속으로 들어갔다.

김일성-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

1980년대의 좌파는 이미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주의의 모순과 오류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으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것이나, 소련이 동구의 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사실,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로 불리는 참혹한 민중학살 등에 대해서는 토론해 본 기억이 없다.

1980년대의 좌파운동은 19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PD(민중민주주의: People's Democracy)계열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NL(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계열로 분화된다. 주사파의 등장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져 있는 반미-친북 조류의 원초적인 뿌리이다. 주사파는 대학가에서 초기에 격렬한 반미투쟁을 전개하다가, 1986년 개헌국면을 맞자 야당과 연대하는 직선제 개헌 전술을 폈고, 1987년 6.10항쟁으로(6.29선언을 이글어 낸 항쟁) 확보한 대중적 호응을 바탕으로 학생운동권의 주류로 등장한다. 반면 제헌의회 소집하여 정권을 타도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해 새로운 헌법을 만들자는 운동을 주장한 PD계열은 그 급진성으로 인해 급격히 세가 약화됐다.

주사파는 김정일이 썼다는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등 이른바 원전을 학습했고, 밤마다 단파 라디오를 끌어안고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인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했다. 필자 역시 주체사상에 빠져들었다. 1986년 「구국의 소리 방송」을 청취하고, 그 내용을 녹취하여 돌려보다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

주사파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정권의 선전을 액면 그대로 믿었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활동했다.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 주사파는 김일성의 생일인 4월15일과 김정일의 생일인 2월15일을 기념했고,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는 추도식을 가졌으며, 1987년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하여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이를 바탕으로 재야운동·노동운동에 활발하게 진출한다.

소련 붕괴와 북한 경제파탄 이후 쇠퇴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소련 동구가 붕괴하면서, 한국의 좌파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 특히 소련을 혁명모델로 삼은 PD계열은 거의 붕괴되고,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모색하는 길로 나가게 된다. 이 때에 주사파는 일부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건재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일정한 역량을 유지한다. 이들은 통일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며 명맥을 이어 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족민주혁명당」, 「중부지역당」, 「구국전위」 등 ‘북한과 직접 연계’를 맺는 주사파 지하조직들이 등장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탈북자들에 의해 북한의 참혹한 현실이 알려지면서 주사파는 급격하게 약화된다. 특히 주사파의 대부로 불렸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을 비롯한 핵심세력들이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하고, 북한 민주화를 주창하고 나오면서 주사파는 결정적으로 약화된다. 결국 1980년대의 좌파운동은 소련 동구의 붕괴와 북한의 경제파탄을 거치면서 큰 틀에서는 쇠퇴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수구적(守舊的) 좌파로 전락

그렇다면 과거 친북-좌파운동에 몸을 담았던 386세대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지금은 어떤 사고를 하고 있을까?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이들의 사회주의적 지향은 크게 약화됐다. 분배를 우선시하는 정책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실험 결과들이 충분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분배우선정책을 명분상 가끔 거론하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시장경제주의자인 이헌재의 등에 업혀 가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보면 그걸 짐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한국 정당들의 정강정책은 아주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 강령을 채택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조차 국회 의석수가 많아지거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그 정책이 바뀔 수밖에 없다. 하지만 386세대의 사회주의적 사고는 강하게 남아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 확대를 선호하고, 교육 평준화를 추구하며, 노사관계에서 무조건적으로 친노동 편에 서려고 한다. 사회주의가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청년기에 심취했던 계급투쟁론이나 평등주의적 사고는 습관처럼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권의 386들은 통일·안보 분야에서 과거의 미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적대감을 갖고, 북한에 대해서는 무제한적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착오적인 대북관과 대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시각은 과거의 「찬양과 신봉」에서 「이해와 관용」으로 바뀌었다. 열우당의 386들은 『주사파하던 시절은 이미 옛날 얘기』라며 미소를 짓지만, 북한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한다. 「수구적 좌파」로 전락한 것이다.

반미-친북 사고가 386의 정신세계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김대중 정권의 책임이 크다. 1980년대 주사파들의 반미-친북 성향은 김대중 정권의 데북 포용정책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반미-친북은 한국 사회의 대세를 형성했다. 주사파 386들의 과거 반미-친북활동이 부끄러운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훈장이 돼 버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8.15 기념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하였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경제개발을 우선하였던 역대의 집권세력을 「불의와 기회주의의 집단」으로 공식 규정한 것이다.

이런 발상은 노무현 것만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전국에 걸쳐 「제2건국위원회」를 구성했다. 1948년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건국에 심각한 도덕적 하자가 있었다는 직설적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지금 과거사 청산을 외치는 사람들은 「한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사생아」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한 잡지 기고문에서 『과거사 청산은 대한민국이 친미파-친일파 정상배에 의해 건국됐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확인하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주사파 뒤쫓는 「정신적 386」 노무현

대한민국이 걸어온 지난 60년이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왕에 선진국이 아니었던 나라들 중에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적인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한국을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홍콩 정도에 불과했다. 더구나 한국은 서구의 선진국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루어 낸 민주화를 경제개발과 병행해서 이루어 냈다. 박정희 시대를 마치 중세의 암흑시대처럼 묘사하려고 하지만, 개발도상국 대부분이 겪었던 독재과정에 비하면, 한국은 기본적으로 법치가 작동했다.

대한민국이 지난 60년간 이룬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세계사의 모범 사례다. 이건 실증적으로 명백히 증명된 것이고, 국제적으로 일치된 평가이다. 그런데 무얼 근거로 대한민국의 역사를「오욕의 역사」로 단정하는 것일까? 주사파 386들의 편향적 역사인식이 그걸 가능케 하고 있다.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철저히 잘못된 것으로 인식했다. 좌파가 주도하지 못한 건국이었기 때문이다. 주사파들은 분단의 책임을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일방적으로 묻는다. 「남한에 좌파정권이 섰다면 분단이 되지 않았고, 한국전쟁도 없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주사파의 인식도 간단한다. 북한의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쳐내려가 통일의 호기가 왔는데, 미국의 부당한 개입으로 통일의 기회를 놓쳤다”.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단순히 「독재를 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사주 하에 분단을 공고히 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한국을 편입시킨 이른바 매국세력」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을 절대빈곤 상태에서 탈출시킨 박정희의 공은 보지 않고, 「자본주의화는 종속의 길」이라는 좌파적 잣대만 들이댄다. 주사파는 파탄으로 결론 난 북한의 자립경제노선을 이상적인 모델로 본다. 반면 박정희 정부의 수출과 외자유치를 통한 산업화 전략을 「신식민지적 경제종속」으로 간주한다.

임종인 열우당 의원은 과거사 청산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친일, 분단, 반민주 세력을 규명하는 것이 과거사 청산이다. 「왜 지금 와서 하느냐」는 사람이 있는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세력 교체가 이뤄졌고, 17代 의회를 독립운동, 통일·민주·인권세력이 잡았기에 규명이 이뤄질 수 있다』

진보·개혁 장사꾼이 된 386

과거사 청산운동은 대한민국에 대한 혐오증과 부정적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연령이나 경험이 386은 아닌데 정신적으로는 386인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전형이고, 인권변호사 출신이나 학자들 중에서 「정신적 386」들이 많이 발견된다. 386세대 가운데서 운동권에 가담하지 않았거나, 잠시 참여했던 이들 가운데 더 열정적으로 반미-친북적 언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여권 386의 사고방식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김정일 정권의 모든 악행에 대한 침묵이다. 열린당 정봉주 의원 등은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등 노골적으로 북한정권을 옹호하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람들이 눈앞의 악을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좌파운동권은 내부에서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였고, 같은 진영에서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른바 진보진영은 내부 비판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남은 것은「편 가르기」뿐이다. 이념적 방향을 상실하고, 권력유지라는 이해관계만 남아 있는 집단의 타락은 필연적이다. 많은 386들은 과거 대학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던 때의 지식이나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판에서 시장성이 있는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상품」을 팔고 사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이미 국민들의 자각이 시작됐고, 북한의 필연적인 변화를 고려할 때 이런 「장사」의 전망은 지극히 어둡다. 주사파 출신 386들이 작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념적 대혼란의 아수라장을 정리하는 용기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홍진표 씀.

[ 제공 : 코나스 www.kona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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