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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남북공동선언」-「10·4 선언」평가와 향후 대책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1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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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칼럼(논문)은 지난달 30일 대령연합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송종환 교수가 발표한 발제 자료임. 송 교수의 양해아래 발제문 전문을 게재함.

1948년 8월 15일 건국 당시 세계 제2차 대전 후 독립하거나 건국한 147신생국 중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걸출한 지도자와 국민의 피땀으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을 바라보는 자랑스러운 국가로 번영, 발전하였다.

그러나 6월만 되면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동족상잔을 겪으면서 풍찬노숙의 항일독립운동으로 찾은 조국과 삶의 터전을 잃을 뻔한 적도 있고 그들의 교묘한 대남전략에 말려 정치 사상적으로 국론이 분열됨으로써 위기에 몰리기도 한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없다.

「6. 15 남북공동선언」11주년을 맞아 야당 인사들은 햇볕정책에 입각하여 동 선언의 부활을 선언하자고 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재추진을 주장하고 있고 탈북인 학자들은 동 선언에 대한 논문 발표와 토론을 하면서 이 선언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종북주의자들을 비판하였다.

호국·보훈의 달로 기념하는 6월의 마지막 날에 1998년 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집권한 정부의 햇볕정책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의 결과물인「6·15 남북공동선언」과「10·4 선언」을 평가하고 향후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평생 헌신한 동지, 민주 애국 인사들과 토론하고 지혜를 모을 것을 기대하면서 발표에 임한다.

1. 북한의 대남전략·공산화 통일정책의 전진과 좌절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은 자주·민주·통일(自主·民主·統一), 즉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 후 수립될 남한의 공산정부와 합쳐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은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북한을 따뜻하게 포용하면서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교류ㆍ협력을 하면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ㆍ개방을 하고 변화할 것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과 대한민국 역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고 매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과 합작하여「6·15 남북공동선언」과「10·4 선언」이라는 합의문을 낳았다.

동 선언들로 인해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한국의 보수진영과의 이념갈등을 일으켜 가면서 북한의 요구대로 끌려가자 북한은 남한이 적화되었으므로 통일만 남았다고 자랑할 정도로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은 비약적으로 전진하게 되었다.

북한은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취임함으로써 이러한 자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북한은 “오늘의 시대는 6·15 민족자주통일의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새 정부의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에 대해 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8년 3월 3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새 정부가 북한 인권상황 개선 조치를 촉구하고, 키 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3. 2-7)이 열리게 되자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를 단절하면서 대화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핵심은「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전면 이행에 대한 새 정부의 명시적 입장 표명이었다.

이 두 선언에 대한 이 명박 정부의 최초 입장은 2008년 3월 26일 통일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통하여 나왔다. 당시 이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가 1991년 체결돼 92년부터 효력이 발생했고 북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 이후 남북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동안 쌓아온 대남전략과 공산화 통일정책의 진전이 좌절하게 됨에 따라 북한은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역도라고 비난하고, 4월 5일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인「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떠나서는 남북관계와 조국통일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 두 선언의 전면 이행을 요구하였다.

2. 레닌의 반제국주의통일전선전술·연방제 제의와 북한의 대남전략·통일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문헌적 비교

북한이 두 선언의 전면적 이행을 이명박 정부에게 계속 요구하고 있는 것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이 그들의 대남전략이며 공산화 통일정책을 남한 정부로부터 확약 받은 강령이며 실천 강령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은 북한 식 해석에 따른 두 선언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헌적으로 두 선언이 레닌(V. I. Lenin)의 반제국주의통일전선전술·연방제 제의와 노동당 규약 등에서 밝힌 북한의 대남전략·통일정책을 추종하기 때문이다.

문헌적 비교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 레닌의 반제국주의통일전선전술→ 노동당 규약→ 「6. 15 선언」 제1항과

「10·4 선언」제2항

코민테른 제4차대회에서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전술 제시

o 동양 식민지는 토착지배계급이 인민대중의 기본적 이익에 반하는 형식으

로 외국자본과 타협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대중을 제국주의와 모든 봉건

잔재와 싸우게 하는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구축해야 함.

o 구체적 방도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노선 제시


1956.4, 제3차 전당대회 채택 조선로동당 규약 前文

o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

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사회를 건설

1964. 2. 27, 노동당 제4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2단계 대남전략 채택

o 제1단계 : 북한의 혁명기지 건설과 남한에 인민민주주의정권 수립(남조선 혁명)

- 민족해방(주한미군 철수)과 인민민주주의 혁명 완수(공산당 활동 자유 를 위한 국가보안법 철폐)

o 제2단계: 남한의 인민민주주의정권과 북반부와 합작하여 공산화 통일 완성

2000.6.15 남북공동선언 제1항

o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 주한미군 철수

2007. 10. 4 선언 제2항

o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ㆍ제 도적 장치들을 정비”→국가보안법 철폐

나. 레닌의 연방제 제의→북한의 연방제 제의→「6. 15 선언」 제2항과 「10·4

선언」제1항

1920. 6. 5, 민족 및 식민지문제에 관한 테제

o “연방제는 여러 민족의 노동자가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형태”

o “연방제가 적절함은 러시아연방소비에트공화국과 다른 소비에트공화국들 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 자치공화국과의 관계에서 증명”

o “연방제가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과도형태라는 점을 인식하고 군사, 경제적 동맹 등을 염두에 두면서 점점 긴밀한 연방적 결합을 지향

1991년 김일성 신년사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 제시

o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게 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 연방공화국의

지역적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 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 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

o ‘낮은 단계 연방제’: 1민족, 1국가, 2체제, 2지역자치정부

- 지역자치정부들이 ‘높은 단계의 연방제’의 중앙정부가 갖는 정치, 군사,

외교권을 갖고 그 위에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남북관계를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민족통일기구를 설치

o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야시절에 발표한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연방-완전통일 )

중 군사권과 외교권을 남북의 두 정부가 갖는 남북연합단계와 형식상 공통성


2000.「6. 15 남북공동선언」 제2항

o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 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

2007.「10. 4 선언」제1항

o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주한미군철수와 연방제 통일 구현


3.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남갈등 심화

2000년「6·15 남북공동선언」은 남북한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대화를 통하여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합의한 역사적 선언이기는 하나, 이 선언이 가지는 문제점과 그 이후 전개된 남북한 관계의 추이에 비추어 결코 우리 민족에게 바람직한 것이 못 되고 오히려 남남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선언에는 기존의 중요 남북한 간 합의에 포함되었던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의 평화 구축에 관한 항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 단계를 넘어 통일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인 한반도 평화 실현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남북한이 통일원칙을 합의한 1항과 2항에 대하여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어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선언문 제1항에 관하여 남측은 통일문제의 ‘민족당사자 해결 원칙’을 천명하고 북측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 것으로, 북측은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남북이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자는 뜻으로 서로 다른 해석과 주장을 하고 있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합의한 제2항에 대해서도 남측은 북측이 연방제를 포기한 것으로, 북측은 남측이 김일성의 연방제 통일에 합의해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연방제는 구성하는 국가나 주(州)들이 서로 공존·공영을 추구하면서 정치, 경제체제를 같이 하여야 가능하다는 다른 나라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연방제 통일로 가려면 남북한 중 어느 한 측이 체제를 바꾸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또 대한민국 헌법 제4조를 위반한 것이다. 서로 해석과 주장을 달리하여 이행할 수 없는 선언을 발표한 이후 진행된 남북한 관계의 전반적 추이는 진정한 의미의 남북한 관계 개선은커녕 국론분열과 남남갈등만 증폭시켰다. 남측의 대북 퍼주기 지원이 진행되는 과정에 북측은 2006년 7월과 10월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를 초래했다.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남북한 간의 인적, 물적 교류는 상호 호혜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 대북지원(10년간 정부 차원에서는 현금 29억 9998만 달러와 현물 44억 5728만 달러 계 69억 5950만 달러, 비정부 차원에서는 7억 3148만 달러)이며 북한 핵 문제, 남북한 긴장완화, 남북경협,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어느 것 하나 실질적 진전이 없는 실정이었다.

특히 6·15 선언 1항 관련, 북한의 주한 미군철수 및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 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15일 국무회의에서 민족당사자 해결이며 북측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했다고 한번 설명한 후 북측 주장을 반박하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가 예견되는 한미연합사 해체에 주력하였다. 6·15 선언 2항, 남이 연방제 통일에 합의하였다는 북의 주장에 대해서도

김대중 정부는 북측이 연방제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2항 합의가 가능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문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반박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침묵하고 ‘북한식 민족공조’ 주장에 동조하는 좌파 세력들이 나라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한미 안보 동맹을 공공연히 훼손하는 것을 막지 않음으로써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의 주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4. 현실 무시하고 명분 없는「10·4 선언」

2007년「 남북정상 선언」은 한반도 현실을 무시하였고 우리가 지향하는 명분과도 거리가 멀었다.
‘현실 무시’의 첫째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공산주의로의 높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우리와 합의했다고 끈질기게 주장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적극 구현하고 이를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둘째는 앞으로 북한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할 근거가 될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나기로 하였다”라는 조항을 합의한 것이다.

결국 북한은 이 문서의 제1~2항에서 대남 공산화 전략과 통일정책인 자주(미군철수), 민주(공산당 활동 자유화를 위한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연방제) 방향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셋째는 10월 3일자 베이징 합의가 북측의 기존 핵무기, 핵 물질과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이 연내 불능화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었음에도 김정일의 핵 폐기 의사의 진정성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넷째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 보장문제를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하면서도 남북한 국방장관들이 11월 중 평양에서 서해 평화협력지대와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 장치라는 부분만을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다섯째는 공동어로수역 설정 등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북방한계선을 사실상 남쪽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영해 포기, 서해 5도 어민의 생존터전 축소는 물론, 수도권에 미치는 안보 위협을 무시한 것이다.

여섯째는 개성공단 확대와 해주경제특구 건설 합의로 개성공단 진출 기업의 81%가 적자 상태인 현실과 쉽게 개선될 수 없는 북한 제도를 외면한 것이다.

「10·4 선언」은 동 선언 이행을 위해 60조원(산업은행 추산)~116조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 추산)의 실질적인 부담을 짊어지게 될 우리 국민을 설득할 최소한의 명분도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첫째, 북한의 개혁·개방을 고려하지 않고 교류·협력과 지원을 한다면 그것은 북한 체제의 질적 변화는커녕 체제강화만을 초래하게 되는 ‘퍼주기’가 될 것이다.

둘째, 북한에 생존하여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 어민의 안위에 대하여 한마디도 못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문제도 제기하지 않은 것 역시 국민의 바람을 저버린 것이다.

셋째, 실질 임기가 두 달여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이 각종 남북경협사업의 소요 예산이 얼마 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협의하기로 한 것은 희극적 수준이다.

5. 자유민주주의 통일 원칙에 입각한 정책 추진

가. 기본방향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세계적 트렌드, 북한 체제 유지의 문제점, 남북한 간의 경제력 격차의 심화, 북한의 핵 실험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고조 등의 이유로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 실현이 멀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2010년 9월 28일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등 호전성으로 인한 한반도 리스크 증대로 평화적 통일은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1998년~2007년까지의 온정적 대북정책에 고무되어 공개적으로 국기를 허물어온 종북 세력들의 활동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와 대남도발을 계기로 실패한 대북정책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북한 핵 문제를 비롯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한국 주도의 통일 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국민적 인식, 합의와 각오가 확산되어야 한다.
자유민주통일이 확고한 시대정신이 되고, ‘혈통’과 총구에 의한 왕조적 권력세습이 세계사와 민족사의 주류에서 크게 이탈한 반역사적이고도 비민주적임을 거국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한다.
당면한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과 각종 군사적 도발, 북한의 전제 군주적 권력 승계를 맞아 한국의 여야 지도자는 물론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반드시 올 통일을 구현하기 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고 대내체제를 선진화하고 국제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정세 변화로 대화가 재개될 경우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관계를 교류·지원 →상호 감사와 보람을 느끼는 선순환 관계로 바꾸어 북한 체제를 먼저 변화시켜 후 정치통합을 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의한 ‘올바른 통일’의 기회를 잡도록 대비해 나가야 한다.

나. 튼튼한 안보, 국내체제의 선진화와 이를 뒷받침할 외교 강화

한국이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통일을 준비해 나가야 하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가안보 강화를 위한 각종 대책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하여 활동하고 있는 한국 내 친북세력들을 척결하여 안보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북한의 천안함 공격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국방백서에 주적(主敵) 개념을 명시하고, 전략정보 100%, 전술정보 70%를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호전적 북한을 억제하기에 규모가 적고 효율성이 없게 편성된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북한의 핵무기,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장사정포, 특수부대, 잠수함(정) 등 비대칭 전력에 의한 각종 도발을 탐지하는 장비와 실질적으로 억지 및 반격할 수 있는 전력을 증강해야 한다.
국방예산 및 방위비 개선 현황


*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정부 재정 증가율은 매년 7.5%~10%이나, 국방예산 증가분은 자연
증가분에도 못 미치는 수준
* 2010년의 경우 병력운영비(인건비, 급식·피복비)와 전력유지비(부대 운영, 장비·시설 정비
및 유지, 교육훈련, 보건복지비 등)는 20조 4,597억원으로서 전년 대비 5,418억원, 2.7%
증액, 방위력 개선비(무기획득 및 연구개발 비용)는 4,883억원, 5.7% 증액에 불과
* 2011년의 경우 병력운영비와 전력유지비는 21조 6,182억원으로서 전년 대비 1조 1,585
억원, 5.7% 증액, 방위력 개선비는 9조 6,613억원으로서 전년 대비 5,905억원, 6.1% 증액 불과/ 그 중 서북도서 긴급전력증강비는 1,680억원

이를 위해서 한국은 2009년 6월 26일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20 조정안’에서 고고도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UAV)에 의한 전략적 정보수집 수단 도입을 2011년에서 2015년으로 연기한 것을 재고하는 등 독자적 전략정보 획득 방법을 강구하고 국군 전력의 첨단화 추진과 함께 신뢰성 있는 응징보복용 탄도, 순항 미사일 개발·배치 등 고강도 억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북한의 당면 핵무기 개발 진전을 감안하여 1991년 9월 조지 부시(George Bush)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감축선언에 따라 철수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여야 한다. 2014년 시효가 끝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으로 미국의 사전 동의나 허락 없이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재처리하는 평화적 핵 주권을 추구해야 한다. 2011년 1월 한미간에 협상이 개시된 것으로 알려진 미사일 협정도 2001년 개정 시 사거리 300km/탄두중량 500kg까지의 탄도미사일 개발만 허용된 제한을 풀어서 남해안에서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1000km/1t 정도로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그 뒤를 이을 정부는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방위협정 체결 제의 시와 같이 미국의 결단을 받아낼 중대한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2012년 4월 17일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연기 합의한 전작권 단독 행사

준비에 전력 경주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와의 후속 협의에서 향후 안보 환경에 따라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논의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면서 한미연합태세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 안보의 위협은 두 세력 때문이다. 하나는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며 또 하나는 국내에 있으면서 천안함과 연평도를 공격한 북한을 찬양·옹호하고 반역사적·비민주적 권력 세습을 지지하는 친북·종북 좌파 세력들이다. 지난 10년간 좌파 정부가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 노래를 추종하는 대북정책을 취하였기 때문에 국민의 안보의식은 전반적으로 해이해져 있다. 20대의 56%가 6. 25 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고 초등학생 35%가 6. 25 전쟁이 북침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임이 밝혀졌는데도 젊은이들의 30%가 그 진실을 믿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 안보 의식 해이 현상의 배후에 북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한국진보연대’, ‘실천연대’,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 본부’, ‘범청학련 남측 본부와 한총련’, ‘전국농민회 총연맹’, ‘전교조’와 ‘민주노총’과 같은 종북·좌파 단체 7대 본산이 있고, 지금도 그들은 노골적으로 친북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이들의 대다수는 나라의 정통성의 상징인 태극기와 애국가를 무시하고 애국선열에 대하여 묵념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열사들에 대한 묵념’을 하는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위험한 수준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평화’를 주장하면서 친북활동을 하는 국내 친북·종북 좌파단체와의 연계를 차단하고 이들 단체를 포함한 좌파 세력들을 감시, 색출, 척결하는 안보수사기관들의 활동을 강화하고 이들의 활동을 비판·견제하는 범국민적 운동도 전개하여야 한다.

난장판 국회, 강제집행을 하려고 간 법원 집행관에 대해 새총을 쏘는 노동자 투쟁, 절대빈곤층과 그보다 조금 나은 상대적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25%가 될 정도로 부가 편중되어 있는 '한국식 경제 풍요' 등 지역, 계층, 세대 간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후진적 성향의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국민 모두가 일자리를 갖고 복지를 누리면서 잘 살도록 경제를 발전시키며 사회 분야의 각종 제도를 과감하게 선진제도로 쇄신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11위의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5년 만에 4계단이나 떨어진 15위가 되고 미국 발 금융위기로 2009년 17,175 달러로 하락된 1인당 국민총소득을 시급히 만회하여 3만 달러 이상으로 높이고 공정한 상향식 공천 제도화로 자유민주주의 발전, 법질서 확립과 부패척결, 규제완화, 국제참여 확대를 꾸준히 하여 국가선진화지수 종합순위가 최소 15위 정도로 올라가도록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1990년 10월 3일 동독인들이 독일 연방 가입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은 동독인들이 보고 들은 동서독 경제 격차와 함께 서독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신뢰와 동경 때문이었다. 만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가 전반적으로 선진화되면 북한 주민들은 한국을 선망하고 공산화 통일정책을 포기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외적으로 한국은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과 대남 군사적 도발을 억지하고 통일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더욱 긴밀히 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인접 국가 및 유엔과 공조하는 양자 외교와 다자 차원의 외교 활동을 일층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한국은 한반도 통일을 논의할 때 한반도 문제가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할 문제이면서도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에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복합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미국과 긴밀 협조하는 것은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와의 유대 강화를 통하여 통일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

한국은 서독이 영국, 프랑스의 독일 통일 반대를 무릅쓰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국제환경 변화기에 적극적이고 명백한 통일 지지를 보여준 미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련과 1990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하여 30억 달러의 긴급원조와 동독 주둔군 철수 비용 제공을 약속하여 10월 3일 독일통일에 대한 소련의 양해를 확보한 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한국 주도의 통일이 주변국에 해가 되지 않고 지경학적으로 득이 됨을 꾸준히 설득하고 특히 중국에 대하여는 북한의 군사도발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 평화와 중국의 번영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한국 스스로도 중국이 한국 주도 통일을 거부하지 못할 명분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의 전략적 협의에서 통일한반도 내 미군 주둔과 일본과의 긴밀 관계 유지를 합의한 연후에 중국에 “한반도통일이 안정된 후 미군은 북한 지역에서 주둔하지 않고 철수할 것”과 “유엔과 주변국의 지원을 받아 북한지역 안정과 주민을 부양할 것”을 내밀하게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현재의 한·중 관계 및 미래의 통일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들어 통일한국이 중국에 유리함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중 간 연간 무역이 대미·대일 무역을 합친 만큼 되고, 항공편이 주(週) 862편, 상호 방문 인원이 연간 5백만 명인 현실을 들어 한·중 수교 16년인 2008년 5월 27일 중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주석 간에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동반자’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한국에 당연히 할 공정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을 강하게 압박해 나가야 한다.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여 철도, 고속도로, 항공, 선박으로 중국과 외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동북아 물류중심지인 한반도가 통일되어 경제규모가 커진 한국이 되면 북한 지역을 개방하여 요녕성 연해 경제개발 벨트 계획, 길림성 창지투 선도구 개발계획 등 중국의 동북아 개발 계획의 파트너가 되고 한반도의 서해안과 중국의 해안을 아우르는 ‘황해경제권’을 더욱 활발하게 할 것임을 지경학적 이론으로 설득하는 노력도 강화해 나가야 하겠다.

이러한 한국의 약속, 설득과 촉구는 시진평(習近平) 등 중국의 제5세대 지도부와 북한의 50대 중·후반~60대 초반으로 구성될 김정일 이후 제3세대 지도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므로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중국 간에 한반도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이전에 준비되고 꾸준히 추진하여 한국의 발언권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다. 북한체제 변화 유도 대북정책

박정희대통령이 1970년 8월 15일 경축사에서「평화통일구상 선언」을 발표한 후 한국은 1971년 8월부터 변화하는 국제관계 질서와 한반도의 냉전질서의 양 틀 속에서 북한을 상대로 각종 전략, 전술로 대응타협하여 전략적으로 모호한 용어로 된 문서들과 통일장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문서를 합의해보기도 하고, 무원칙한 지원과 협력으로 북한을 포용해보았다.

그러나 한국은 북한과 대화를 하면서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가 한국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주의 통일 실현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북한을 포용할 것인가, 압박할 것인가 하는 논쟁만 무성하여 국민들 사이에 혼란과 갈등과 분열만이 증폭되었다. 그 원인은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에 이용하고 대통령 개인의 이념과 소신으로 헌법 4조가 천명한 ‘자유민주주의적 평화통일’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한반도에 두 체제가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북한 당국과의 대화를 개시진행합의중단을 되풀이하면서 통일한국의 목표와 가치에 맞지 않는 지극히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합의들을 생산해왔다. 그 결과, 약 40년간 북한 당국과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관계의 질적 개선이나 북한 체제 변화에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한국 내부의 세대 간, 지역 간 이념갈등을 심화시켜왔다.

먼저 우리 정부는 과거 좌파 정부가 북한의 주한미군철수, ‘김일성 제의 연방제 통일’, 국가보안법 폐기 주장에 동조하려고 하였던「6ㆍ15 남북공동선언」과「10ㆍ4 선언」 제1항 “우리 민족끼리 통일”이 주한미군철수가 아니라 민족당사자 해결이며, 제2항 연합제와 연방제 통일 관련 부분은 북한 측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 포기를 전제로 합의하였음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다음 통일한국의 목표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통일을 적극 주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이 정상국가와 근대국가로 변화되어 통합에 응하도록 북한 당국을 압박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새로운 통일 추진방식’을 택해야 한다.

‘새로운 통일 추진 방식’은 장기적으로 북한 체제 전환의 주체가 될 북한 주민을 상대로 그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도록 하는 경우와 북한 체제의 붕괴로 갑자기 통일이 한국에 닥칠 경우로 대별될 수 있다.

한국은 독일이 통일을 이룩할 때처럼 먼저 북한 주민들이 자유민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고 수용 가능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북한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변화시킨 후 정치통합에 응하도록 하는 대북정책을 추구하여야 한다.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면 서독은 집권 정당이 바뀌어도 서독기본법 전문에 의거하여 ‘통일’보다 ‘자유’를 더 중요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공산화 통일 논의가 대두될 수 없도록 하는 등 일관되게 원칙을 지킨 것을 배경으로 하여 동독 주민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독일 통일은 실로 마음속으로 오랜 동안 동독 체제를 비판·거부하고 서독 민주 사회를 자신들의 지향체제라고 선망해온 동독 주민들이 스스로 체제를 바꾼 후 서독체제로의 편입을 결정, 연방에 가입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한국은 이제까지 ‘민족통일’을 명분으로 북한 당국과의 교류·협력에 의한 기능주의적 접근이 북한 체제를 변화,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초한 대북정책을 반성한 후, 통일한국이 지향할 가치에서 출발, 새로운 남북한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은 헌법의 핵심 가치(Core Values)이며 건국 후 성장, 번영해온 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평화ㆍ자유ㆍ민주· 경제적 풍요와 복지를 구가하는 선진 일류국가로의 통일과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창달에도 기여하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확실히 하는 것이다.

한국이 인구, 국민소득과 국제위상 등 상대가 되지 않는 북한과 매번 1:1로 대등한 것을 전제로 합의하여 통일을 추진하는 방식을 탈피하여야 한다. 북한은 한국의 16개 광역지자체 중 12위 수준이고 GNP는 약 1/38이고 해외교역은 0.4~5%에 불과하다.

이러한 핵심가치들과 현실에 입각하여 남북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의 기조, 남북한 현안해결의 우선순위, 대화방식 등 3대 전환을 하여 ‘원칙 있는 대화’를 하여야 한다.

첫째, 대북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해야 한다. 북한은 상생공영을 하기 위하여 끝까지 대화를 해야 하는 동족인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적대세력이므로 양면을 동시에 대비해야 한다. 일반적 포용과 지원보다 포용과 압박에 의한 결단력으로 북한의 변화를 추진하여야 하며 북한을 견인하면서 때로는 개입하여야 한다.

둘째, 남북한 간 현안 해결의 우선순위를 조정하여야 한다.
먼저 남북대화와 국제공조체제 강화를 통하여 민족공멸을 초래할 북한 핵무기 폐기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고 이를 실현시켜야 한다. 북한 핵 폐기를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 취임이후 천명해온 북한 핵 페기 원칙을 견지하면서 두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 측의 각종 위협에 굴하지 않은 의연한 태도와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6자회담 참가국은 물론 유엔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해 온 것을 계속해야 한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평화정착과 함께 비정치 분야의 교류·협력이 병행 추진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자동차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두 수레바퀴가 동시에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치와 같이 평화와 경제 협력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남북한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40년 동안 해온 남북한 간의 대화가 최소한의 긴장완화 조치마저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그 동안의 남북한 관계의 현실과 경험에 비추어 1975년 이래 발전하고 있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의 포괄적 안보협력(Comprehensive Security) 체제를 벤치마킹하여 대규모 군사훈련 사전 통보와 참관단 교환 등을 통한 신뢰구축조치를 거쳐 군축 순으로 진행되는 협력안보 발전을 추진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남북한 간 경제교류·협력에 ‘퍼주기’ 논란이 제기되었고 대북지원도 북한 주민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북한체제에 이용되었다는 반응이 있음을 고려하여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글로벌 표준과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하여 추진하여야 하며, 북한 주민과의 교류 및 지원은 주민에 다가가고 그들을 각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민간이 사업주체가 되는 경제 교류·협력은 기업의 1차 목적인 이윤창출을 위해 이제까지의 돈을 쓰는 경협에서 돈을 버는 남북경협으로 눈을 돌려야 하며 투자기업은 수익과 위험 판단을 최우선 고려하여야 한다. 한국 측의 민간 기업들은 북한과 왕래가 용이한 조선족 교포들과 협조하여 북한 경제의 70-80%를 차지하는 ‘장마당’에의 접근을 추진해야 한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북한이 도발을 하면 어떤 대가를 받는지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고 또 유사 시 개성공단과 금강산에 있는 국민 700여명이 인질이 될 위험이 있으므로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경우의 피해를 감수하고 공장폐쇄를 포함한 대북경협을 전면 검토하여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 잦아들더라도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북한 측 근로자의 최저 임금 등의 일방적 인상 요구에 대하여는 기존 계약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고 북한 측 근로자에 대한 한국 사장의 인사권과 공단 내 한국 직원의 신변안전과 함께 통행·통관·통신 등 기업 활동 여건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inventory)를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금강산관광이 재개되더라도 북한 측의 민간인 관광객 총격 사건에 사과,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를 확약 받고 관광객 신변안전을 위한 구체적 대책을 세운 후 민간 기업이 취급하는 관광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에 대한 남북협력기금의 보조를 중단하고 금강산 등 북한 지역을 여행위험지역으로 선포하여 관광객들이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의식을 갖도록 하여야 한다.

‘개성공단 및 금강산 지구 출입 및 체류 합의서’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신변안전보장을 구체적으로 제도화 하고 조사와 관련한 절차와 규정, 면회 등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대북지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재임 기간 중과는 달리 북한 당국에게 주는 일방적 지원보다 식량증산, 산림녹화 전수 등 북한 주민들이 고기 잡는 방식을 배우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북한이 2010년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순에 있은 이산가족 상봉을 계기로 대규모 지원을 요청한 것은 천안함 폭침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고려될 수도 없다.

천재지변과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당하는 북한 주민에게는 결핵, 신종 플루 등 의약품, 우유제품 제공 등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교류·협력 및 지원 사업을 통해 한국인들이 북한 주민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서 북한 주민들이 한국이 매력적인 대안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대화의 장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여야 한다. 특히 이산가족문제와 관련하여 정부는 금강산에서의 상봉 행사보다 국제적으로 확립된 방식대로 ①생사와 주소 확인 및 통보, ②서신교환, ③상봉과 왕래, ④희망자의 경우 원하는 쪽으로 재결합을 허용하는 근본적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자뿐만 아니라 65세 이상 고령 이산가족 70여 만 명 전원의 재북 가족에 대한 생사확인 작업부터 즉각 성사 시켜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송환이 지연된다면 최소한 금강산에서 이루어지는 이산가족상봉을 남북한을 동시교환 방문했던 이전 방식으로 환원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도 통일 전 서독이 한 것처럼 금강산 ‘상봉 쇼’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대북 경제지원비로 이들을 구출해오는 '독일 정치범송환 방식 (Freikauf)‘ 을 은밀히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향상 문제도 적극 제기하여야 한다. 유엔 무대에서 북한 인권 개선 논의에 적극 참가해야 하며 과거 정부처럼 더 이상 북한인권 결의안에 기권과 찬성을 오락가락하지 않아야 한다. 독일 통일에서 보듯이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은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북한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키며 북한 주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나아가 통일의 길을 열 것이다.

만일 위에서 제시된 대안들이 남북한 간에 합의되어 구체적으로 이행된다면 남북한 관계는 평화를 정착시키면서 교류지원을 하면서 상호 감사와 보람을 느끼는 선순환 관계로 전환되어 한반도의 통일에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게 될 것이며 한반도 주변 4강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반도 통일에 보다 협조하는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셋째, 한국은 끝까지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또 여건이 되는대로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여야 하나, 북한의 대남 인식과 협상 목표, 북한의 협상관과 협상행태를 제대로 이해한 바탕 위에서 대화하고 합의서를 채택할 때도 상대가 공산주의자임을 유념하여야 한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킬 수 없는 수세적 상황에서 대화라는 수단을 택하고 또 그 상황에서도 전투하는 식으로 대화를 한다. ‘동포애로 가슴을 열고 북한과 대화를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독일 통일을 이루는 데 동서독 당국 간의 대화는 보조적 역할에 불과하였다는 경험을 경청 하여야 한다.

북한이 '협상'을 분쟁의 평화적 해결 수단으로 생각하는 서방권과는 달리 공산화 통일을 위한 또 다른 투쟁 수단으로 간주하여 군사작전식 협상을 하고 의제전투를 하면서 회담 장소도 유리한 곳에서, 타협과 양보를 하지 않는 전사적 협상행태(warrior negotiation behavior)를 취하므로 한국은 실제 대화과정에서는 도리 없이 의제 전투 등을 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의 협상행태와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한 간 협상 개념이 다르고 또 북한이 한국과의 상생·공영을 원하지 않고 대화를 공산화 통일이나 일방적 대북지원을 획득하는데 이용하는 한 북한과의 대화는 분단 관리와 북한 동향을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내에 성과를 거두려고 조급해 하거나 대통령 선거나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대화를 이용하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또 한국의 지나치게 유연하고 양보하는 자세는 북한 측의 또 다른 요구를 만들어 낼 것이므로 부당한 요구에 대하여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협상 계속에 연연하지 않고 결렬시켜도 좋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북한은 강경노선을 펼치면서 대화를 거부하다가도 자신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가 어렵게 변하면 대화로 돌아오는 만큼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한동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실제로 1971년 8월 남북대화를 개시한 이후 북한은 수차례 대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제시한 대화 재개 조건들에 대해 한국 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들의 필요에 의하여 제 발로 대화 재개에 응해오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을 고려하여 이명박 정부는 정상회담을 포함한 대화 재개에 조급성을 보이지 않아야 하며 그들이 대화에 돌아올 때까지 원칙을 견지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려야 한다.

남북한 간의 회담 장소도 매우 중요하다. 2000년과 2007년 두 번 한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만큼 북한 측의 답방 없는 상황에서 다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아량이 아니라 굴종으로 비칠 우려가 있으므로 하지 않아야 한다. 향후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동서독 간에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시기인 1970년 3월과 5월 동서독 정상이 회담 보좌 수행원만 대동하고 국경지역 도시인 동독 에르푸르트와 서독 카셀로 열차로 이동하여 환영식과 만찬 등의 행사 없이 실무형 정상회담을 개최한 사례를 참고하여 이번에는 한국 측 지역인 도라산역을 추천한다.

도라산역에서 회담을 개최하면 김정일이 답방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고 북한 측 지역인 개성공단에서의 후속 정상회담도 기대된다. 2002년 2월 부시 대통령 방한 시 김대중 대통령과 같이 연설을 할 정도의 시설이며 북한이 우려하는 경호환경도 서울보다 낫다.

남북 간에 신뢰가 전혀 없으면서 대통령 부인까지 대동하여 평양을 재차 방문하여 환영행사, 오·만찬 행사를 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대치관계에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나 국제관례에도 맞지 않다. 한국지역인 도라산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서 북한 지역인 개성공단에서 실무형 정상회담을 연속으로 개최할 경우 당장의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남북한 관계를 정상화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합의 조항에 대한 해석이 명확히 일치될 때까지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합의서를 채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더 이상 북한의 통일정책으로 해석될 듯한 ‘일반원칙’ 조항과 남한의 기능주의적 접근을 병렬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합의 용어가 주는 모호성을 알면서도 성과를 내기 위하여 합의한 것은 결코 이행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그러한 일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합의서가 발표되자마자 남북이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집행이 되지 않는 것은 남북한 간의 불신만을 초래하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종래의 합의서 채택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국은 앞으로 북한과 합의문을 채택할 때 남북한 간의 관계를 민족내부의 특수 관계로 보되, 서로 해석이 다를 가능성이 있는 ‘일반원칙’들을 포함하지 않은 1971년 12월 21일 조인된 동서독기본조약(전문, 본문 10개조와 부속문서 18개항으로 구성) 모델을 참고하여야 할 것이다.

협상에 대한 지나친 낙관적 예단과 회담 연속과 합의서 도출을 회담 성패의 기준으로 보는 것도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협상 성공에 대한 조급증을 협상 상대방에게 보여줄 뿐이며 상대방으로부터 과도한 보상과 기대를 갖도록 한다.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에 대하여 김대중 정부가 설명한 것과 같은 희망적, 낙관적 내지 기대성향의 분석은 당연히 피하여야 할 일이다.

이상의 대책들과 대화 방식은 이제까지 한국이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지 않고 당국과 대화하여 이행되지도 않을 합의를 하고 이를 정치적 성과로 발표하던 방식에서 탈피하자는 것이다. 한국이 이렇게 통일한국에 두는 목표와 가치를 북한측에 분명히 하면 이것이 북한 동포들에게 희망과 꿈이 되어 ‘동포의 마음’을 살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이나 비교적 안정적으로 제3의 세력으로 권력이동이 일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라. 북한급변사태 연구

한국은 북한의 수령유일지배체제 존립의 어려움이 지평선 위로 부상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점진적, 단계적 형태의 통일 추진과 함께 ‘들이닥치는 통일’ 또는 ‘떠안는 통일’로 나타날 가능성에도 대비하여야 한다.

정부 부처와 산하 연구기관과 학계를 비롯한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갑작스럽게 올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제안한 ‘통일세’ 신설 등 통일비용 조달에 대한 국민적 합의 유도와 국제적 지원책을 강구하고 북한 급변사태로 예상되는 시나리오 별 과제들을 분류하고 이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역할과 대책을 세우는 등 지난 좌파 정권 10년 동안 기피해온 연구를 체계화하면서 빠른 시일 내 북한 체제 붕괴에 대비한 미국 측 연구와의 협조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6. 맺는 말

한국은 이미 두 차례의 통일 기회가 있었으나 온 기회에 통일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첫 번째는 1990년 전후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국가들의 체제 전환기에 한국 측의 준비 부족과 북한이 서둘러 많은 양보를 하면서「남북기본합의서」를 합의하여 방어함으로써 기회를 놓쳤고, 두 번째는 김일성 사후 1995~97년 대홍수, 기근 등으로 인한 북한의 경제난 시기에 독일 통일 후 통일비용을 위요한 논쟁과 한국의 대북 대북포용정책으로 실기하였다.

국내외적 여건에 비추어 늦어도 10-20년 내 통일이 올 것이다. 또 통일은 한국이 지불하여야 할 비용보다 훨씬 큰 유익과 편익을 줄 것이다. 잘 준비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은 지금까지 북한 당국과의 대화로 이행되지도 않던 합의를 생산하던 타성을 탈피하여 통일한국의 목표와 가치가 북한 주민에게 스며들고 북한체제의 변화가 기대되는 대화·교류·협력을 하는 일방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경우에도 대비한 적극적 대책을 강구하여야 하겠다.
한국 국민들은「6·15 남북공동선언」과「10·4 선언」으로 야기된 남북한 간의 갈등과 고통, 국론분열에 낙심하거나 비판만 하지 말고 북한의 군사도발로 민족 앞에 놓인 위기를 민족 통일과 미래의 번영을 앞당기는 기회와 비전으로 바꾸는 역사적 대업에 모두 동참하여 투쟁하고 헌신하고 희생을 감수하면서 통일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국민 모두가 어떤 체제로든 ‘빠른 통일’보다 건국 후 이제까지 한국을 자랑스러운 나라로 발전시켜온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복지 증진, 인권존중과 같은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태생적 장애자, 탈북자,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따뜻하면서 올바른 통일’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 반드시 올 통일 운동을 지지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7500만 남북한 동포가 안전하고 자유롭고 풍요롭고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선진민주통일국가를 만들어 함께 살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하면서 발표를 마친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이 전설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는 자랑스러운 전사들이 되자!

〈발표자 약력〉

서울대 외교학과(학·석사), Tufts University 플레처 국제법·외교대학원(석사), 한양대 정외과(박사), 주유엔 공사 및 유엔총회 대표, 주미 공사, 국가안전기획부 해외정보실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로서 민주 평통 상임자문위원, 통일연구원 초빙 연구위원으로 남북한 관계, 국가안보, 정보기관 개편 등에 대한 연구 및 언론 기고를 하면서 국방부, 민주 평통, 한국자유총연맹, 한국자유시민 지도자 양성교육원의 특강 강사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북한 협상행태의 이해」(2002 & 2007), 「남북회담: 7·4에서 6·15까지」(2004)등이 있다.

[ 제공 : 코나스 www.kona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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