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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않은 6.25 전쟁영웅] 전차에 수류탄 투척 … 방심하던 북한군 ‘아비규환’<8> 백복성(白福成) 상사와 청량리 대전차 특공대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16.02.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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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석령전투서 분산된 병력 일부 서울 시가지에서 게릴라전
백복성 상사와 9명 부사관도 특공대 결성해 청량리서 활약
北 전차 12대 중 7대 파괴 … 우리도 끝내 4명 전사 3명 실종
▲ 오늘날 청량리역 부근 시가지의 모습. 필자 제공
▲ 서울 시내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는 북한군 T-34 전차의 모습.
▲ 서울시청 앞을 지나고 있는 북한군 T-34 전차의 모습. 전쟁사 자료 인용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청량리는 기억이 새삼스러운 지명이다. 특히 군 생활을 경험한 예비역 장병들에게 청량리라는 이름은 추억을 안겨준다. 서울의 동측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한반도의 남·동·북쪽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곳 청량리에서 활약한 영웅이 있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백복성 상사의 이야기다.
▲ 제5연대의 의정부 이동과 축석령전투
 백복성 상사는 국군 창설 초창기 온양에 주둔하고 있던 제5연대에 입대했다. 그 후 제5연대는 포항을 거쳐 대전으로 이동해 제2사단에 예속됐다. 그때 백복성 상사는 부사관으로 임용돼 제2대대 소속으로 대전비행장 경계와 후방 지역 무장공비 소탕 작전을 수행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서울이 위태롭게 되자 육군본부는 수도권의 부대는 물론 후방 지역의 부대까지 서울 방어에 투입했다. 당시 백복성 상사가 소속된 제5연대는 제3대대를 시흥에 있는 보병학교 교도대대로 파견하고 있었다. 따라서 가용한 병력은 제1·2대대였지만 그나마도 6월 24일 비상경계령 해제에 따라 많은 군인들이 휴가 및 외박 중이어서 당장 출동할 수 있는 것은 대전비행장을 경계하고 있던 제2대대뿐이었다.
 연대장과 부연대장도 부재중이었다. 제5연대장 백남권 대령은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 파견돼 있었고 부연대장 박기성 중령은 부산에 외박 중이었다. 따라서 사단 참모장 최창언 중령이 제5연대장을 대리해 출동준비를 서둘렀다. 사단장 이형근 준장은 제5연대 제2대대 선발대를 지휘해 경부선 열차 편으로 오후 6시에 용산역에 도착했다. 나머지 제2대대 병력은 오후 8시 제9연대 본부가 위치한 의정부시 금오동(당시 금오리)에 도착했다. 백복성 상사도 대대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제5연대 제2대대는 대대장 차갑준 소령의 지휘하에 26일 오전 3시 금오동에서 축석령 방향으로 역습을 시작했다. 당시 북한군 제3사단은 40여 대의 T-34 전차를 앞세워 포천-의정부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제2대대는 T-34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대전차 화기는커녕 수류탄 1발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개인화기 탄약조차 M-1 소총은 1인당 8~16발, 카빈 소총은 15~30발에 불과했다.
 적에 대한 정보는 물론 현 지형을 설명해주는 지도 한 장 없이 시작한 역습은 실패가 예견된 작전이었다. 대대는 축석령을 오르고 있을 때 나타난 북한군 전차의 일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제2중대 선임하사관으로 참전했던 국석조 이등상사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우리가 그날 아침 금오리에 당도하니 어떤 중령이 나와 ‘자일동에 가면 탄약을 보급할 것’이라고 통보하기에 바로 그곳으로 직행했다. 그 마을로 넘어가는 남쪽 고개를 3분의1쯤 통과했을 때 적 전차의 기관총 공격을 받아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특히 선두에 섰던 우리 중대는 타격이 심해 거의 각개 분산하다시피 했다. 나중에 천보암(현 의정부시 자일동) 부근에 집결해 보니 40여 명밖에 안 됐다. 여기에서 적 전차 5대가 남하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대대와 연락이 끊겨 현지에서 대기하다가 석양에 금오리 쪽으로 내려왔다.”
 ▲ 백복성 상사 등 전차특공대의 활약 
백복성 상사는 축석령전투에서 분산된 후 일부 병력과 함께 청량리 방향으로 철수했다. 북한군은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해 시가지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소규모로 분산된 병력 중 일부는 서울 시가지에서 특공대를 편성해 게릴라전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백복성 상사가 청량리역 앞에 도달했을 때 북한군 전차 12대가 청량리역 앞의 도로를 따라 기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500~600m 후방에는 보병부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북한군 전차는 서울 시가지에서 국군의 저항이 전혀 없는 상황에 안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전차의 해치를 열고 승자의 위력을 과시하듯 천천히 행진하고 있었다. 도로 양측에서는 시민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백복성 상사와 9명의 부사관은 이심전심으로 본때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백복성 상사 등 10명의 특공대는 사복 차림으로 변장한 후 일시에 전차에 뛰어올랐다. 이어 휴대한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전차 안으로 던진 후 측방으로 분산해 도주했다.
방심하고 있던 북한군은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거나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 이어 일곱 대의 전차 내부에서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주변 일대가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변했다.
▲ 특공대의 뒷이야기
 전차에 오르기 전 약속한 집결장소에 모인 특공대원은 백복성·유흥식·남규석 상사 등 3명뿐이었다. 나머지 7명 중 4명은 전차 공격 시에 전사하고, 3명은 끝내 실종돼 인적사항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제5연대 제2대대의 부사관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서울 시가지 곳곳에서 북한군을 공격하거나 그들의 통신·보급 시설을 습격해 파괴하는 특공대의 소규모 교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이 체계적으로 확인·기록되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사례는 증언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중에서 육군참모학교 부교장 이용문 대령이 조직한 유격대 ‘백호부대’가 남산 일대에서 활약한 사실이 생존자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입원해 있던 부상병들로 편성된 80명의 유격대가 북한군의 환자 학살을 피해 병원 뒷산에서 활약했던 사례도 일부 생존자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백복성 상사 등의 활약은 당사자인 백 상사의 증언에 의해 알려졌다. 국방부는 그 증언의 신뢰성을 인정해 한국전쟁사(제1권 542~543쪽)와 전투사 38도선 초기전투(서부전선편, 138~139쪽)에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황급히 철수하면서 그들이 파괴했다는 7대의 전차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오늘날까지 백복성 상사를 포함한 대전차 특공대와 서울을 빼앗긴 후 유격대로 활약했던 영웅들에게 무공훈장은 수여되지 못했다.
<최용호 전쟁과평화연구소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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