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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특집] 그때 그 당시에도 꽃은 폈을까?… 서대문 형무소 소감문
  • 안양고 이가을, 정지우, 이찬영, 박수경
  • 승인 2017.02.2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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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투데이
 
그때 그 당시에도 꽃은 폈을까? 
 
안양고 1학년 이가을 
파랑새 동아리를 통해 서대문형무소를 갔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다녀오고 난 후 다시 와 보니 굉장히 새롭고 신기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서대문형무소를 간다고 했을 때 굉장히 흥미로웠고 호기심이 생겼었다.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땐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는 곳이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독립 운동가들을 잡아 고문을 하고 감옥살이를 하며 노동을 시키던 곳이라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의 안은 독립 운동가들의 비참하고 힘들었던 현실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직접 고문 기구를 보고 체험하니 일본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독립 운동가들을 고문했는지 다 느끼지는 못하지만 눈으로만 봐도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 같다. 서대문형무소를 통해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가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고,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빼앗지 않으려고 목숨을 다 해 싸우던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감사했다. 우리가 지금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고 친구들과 놀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독립을 위해 싸우시던 분들 덕분이다.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오고 난 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보다 많이 생겼고 독립 운동가들이 힘들게 지키시던 나라를 우리가 더욱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내가 즐기고 얻는 걸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한글을 쓰고 한국사를 배우고 한국 사람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희생을 하던 독립운동가분들이 제일 바라던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서대문형무소를 갔다 오고 많은 것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매번 파랑새 견학을 통해 다양한 곳도 체험해보고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 가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다음에도 더 다양한 곳을 체험하고 몰랐던 내용을 많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 블루투데이
 
1학년 정지우
파랑새 동아리활동에서 3번째로 갔다 온 곳은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이곳은 일본과의 조약인 을사조약 이후 국권 침탈을 시작하면서 일제가 만든 시설로, 1908년 경성감옥으로 만들어 1912년 서대문 감옥으로 이름을 바꾼 곳입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시절 때 대한 독립을 외치고 다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에게 체포를 당하고 고문을 받으면서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는 감옥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감옥을 파랑새를 통하여 가게 되었고 그때 많은 영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 대한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어떠한 생활을 하였고, 어떠한 고문을 받았으면 어떻게 사형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엄청난 끈기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서 독립을 얻어낸 자랑스러운 나라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를 가면서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도마 안중근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또한 사형장은 실제 옛날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듣고 기대를 했지만 아쉽게도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입구 옆으로 있는 여자 감옥을 구경을 하였는데 거기에는 실제로 유관순 열사가 살았던 곳이라고 하여 정말 놀라우면서도 신비로웠습니다. 서대문 형무소를 갔다오고 지금 이렇게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는 우리는 사진 속에 누더기 옷을 입고 있는 독립운동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 이찬영
나는 4월 22일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왔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이 갇혀있던 감옥이다. 맨 처음에 영상을 하나 봤는데 서대문형무소의 전반적인 역사를 설명했다. 서대문형무소는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 감옥으로 을사보호조약 이후인 조선통감이 1907년에 일본인 시텐노가즈마의 설계로 착공하여 다음 해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후 80년 동안 약 35만 명을 수감하고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잉태하였던 곳이었다. 원래 서대문형무소 자리는 구한말의 '전 옥서'로서, 1904년에 경무청 감옥서로 바뀌었다. 이곳의 명칭도 1912년에 서대문 감옥으로 1923년에는 서대문형무소로 되었고 해방 후인 1946년에는 경성형무소로 바뀌었다가 1950년 서울 형무소로 1961년 서울교도소 등의 명칭을 거쳐 1967년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이후 1998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에는 3·1운동 때 유관순 열사가 갇혔던 지하 여자 감옥, 윤봉길 의사가 복역 중 만들었다는 붉은 벽돌, 강우규 의사가 처형당한 사형장, 여러 독립투사들이 투옥되었던 1평 남짓한 좁은 감옥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하 고문실에서는 우리나라 애국지사 분들에게 비인간적인 고문을 일제는 자행했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순국하거나 불구가 된 애국지사 분들도 많았다.
 
그리고 사형장에 가봤는데 일제가 1923년에 지은 목조건물로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하여 많은 애국지사들이 사형당한 장소였다. 마지막에는 추모비에서 짧게 묵념을 하였는데 이 추모비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 침략에 항거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신 애국선열들과 일제의 고문으로 옥중 순국하신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자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와서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고 불행한 일인 것을 느꼈다. 국력을 키우는데 나도 한몫을 하고 싶다.
 
   
▲ ⓒ 블루투데이
 
 
2학년 박수경
우리 동아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다.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올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가 본 곳은 상설전시관이었다. 상설전시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지하에 위치한 ‘지하 고문실’이었다. 실제로 많은 애국지사분들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고 한다. 고문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쳤고 고문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고문실에는 물고문, 손톱 찌르기 고문, 벽관 고문, 상자 고문이 있었는데 많은 애국지사분들이 위와 같은 악랄한 고문을 받으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분통했다. 임시 구금 실도 볼 수 있었는데 고문으로 인한 고통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끔 배치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치밀한 일제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동료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갇혀 있는 심정이 어떨지 상상해 보았는데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두려웠다. 한 곳 한 곳을 볼수록 일제에 대한 분노는 더 커졌고, 일제의 만행 속에 오직 독립을 위해, 정의를 위해 끔찍한 고문을 당해내셨을 애국지사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고, 과연 내가 그 당시에 존재했더라면 그분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하 고문실을 나와 이동한 곳은 옥사였는데 실제 감방 안에 들어가서 체험을 할 수 있어 들어가 보았다. 크지 않은 공간에 한꺼번에 20명씩 수감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감출 수 없었고, 잘 때조차 누워서 자지 못하고 앉아서 잤다는 얘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중앙 간수소에서 감시관들이 근무했던 공간에 직접 올라가 보았는데 각 옥사들이 보이게끔 위치해 있었고 모든 공간이 감시가 용이하게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일제의 치밀함에 또 다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사형장이었는데 애국지사 분들이 이곳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가장 놀랐던 부분은 이곳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던 김재규가 사형 당했다고 해서 정말 놀랐고 사형 당했을 때가 1980년이었는데 그때까지 이곳이 사용되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더 놀라웠다.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사형장은 처음 구경했던 곳이어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번 활동으로 알지 못 했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어 좋았고 한편으로는 일제의 억압과 횡포 속에서 고통 받으셨을 애국지사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 내가 고통 받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우리 조국을 위해 힘쓰신 많은 분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분들이 겪었을 많은 고초를 잊지 않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애국심을 가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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