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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분단 역사 ⑤ 신탁통치
  • 구교민 인턴 기자
  • 승인 2013.01.1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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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의 정의

신탁통치란 본래 자치 능력이 없는 민족이나 지역에 일정기간 동안 정치, 경제, 교육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발전을 하면 자치를 허가하는 제도로서, 몇 개의 선진국 또는 UN이 감독하며 관리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5000년 자주독립의 역사가 있으며 뛰어난 문화도 갖춘 민족이다. 교육 수준이 낮지도 않는 우리 민족이 불과 35년간 일본에게 국권을 잃었다고 해서 자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강점기 35년간에도 수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글럼에도 불구하고, 신탁 통치를 하겠다는 미국, 소련, 영국의 일방적인 결정은 우리 민족을 무시한 처사이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은 1943년 12월 1일 카이로 선언과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은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시킨다.” ,“한국은 신탁 기간이 20~30년은 잡아야 한다”라고 말했으나 스탈린은 “한국의 신탁은 짧을수록 좋다.”라고 했다.

당시 스탈린이 한국의 즉각 독립을 갈망하였듯이 공산주의자들은 선전하고 있으나, 사실은 이전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다른 강대국들의 입김에서 벗어나게하여 한반도를 통째로 적화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또 신탁 통치안을 미국이 먼저 제안하였다 하여 후일 우리 민족에 의해 반탁 운동이 일어났을때 소련은 재빨리 발뺌하면서, 그 책임을 미국으로 모두 돌려 한국 국민의 반미 감정을 유발시키려고 했다.

1945년 10월 20일 모스크바 3상 회의보다 2개월이나 앞서 국무성 극동국장 빈센트가 공식 석상에서 이러한 발언을 했다.

“조선은 다년간 일본에 예속 되었던 관계로 지금 당장 자치를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은 우선 신탁 관리제를 실시하여 그 동안 조선 인민이 독립적 통치를 행할 수 있는 준비를 진행할 것을 제창한다. 미국은 조선을 될 수 있는 대로 속히 민주주의적인 독립 국가로 만들 작정이다.”

▲ 모스크바 3상 회의 ⓒ 연합뉴스

우익민족진영의 반탁운동

우익민족진영에서는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조국이 또 다른 강대국들의 신탁에 들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반외세 민족주의 입장에서 일체 반대하고 나섰다.

1945년 12월 16일, 미국, 영국, 소련 세 나라의 외상들이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 모여 한국 신탁 통치에 관한 협정을 최종적으로 체결했다. 28일 ‘한국에 관한 모스크바 3상 회의 협정서’가 국내에 보도되자 정국은 더욱 시끄러워졌다.

이승만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대해 입장을 표했다.

“지금 또 다시 우리가 좌우익을 논할때인가, 우리는 다만 신탁통치제도에 대하여 38선 이북, 이남을 막론하고 성명을 내놓고 싸워야 할 것이다. 자주 독립, 이것이 3천만 민족의 요구이다. 나는 신탁통치가 조선에 파급됨을 막으려고 모든 수단과 힘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문제의 해결은 3천만 민족의 총 역량을 집중한 ‘독립 총성 중앙 협의회’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정당당한 투쟁의 의무를 질서 있는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승만은 지금은 좌우익이 싸울때가 아니고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 투쟁해야한다고 밝혔던 것이다.

미군정과 가까웠던 한국민주당도 이번만큼은 결사반대였다. 한국민주당 총무 송진우가 대표하여 입장을 밝혔다.

“우리가 가진 반만 년의 역사와 반세기 동안 미족 해방을 위한 혈투는, 세계에 대하여 조선 민족을 완전히 해방하여 자주 독립시키지 않으면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교훈하였고, 따라서 조선 민족은 타민족의 지배나 탁치, 또는 국제 관리를 받을 민족이 아니라는 것도 천하가 주지하게 된 사실이다. 그러므로 카이로, 포츠담 국제회의에서도 조선 독립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여사한 국제 신의를 무시하고 세계사적 발전을 저해하는 조선의 신탁 운운은 단연코 배격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3천만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일대 국민 운동을 전개하여 반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정당한 주장을 위하여 이 강토 위에 있는 동지는 피 한 방울이 남지 않도록 결사적 용투로써 우리가 당당히 가져야 할 민족 주권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고 함으로써 강경하게 반대했다. 한때 ‘건국 준비 위원회’ 부위원장이였던 국민당 대표 안재홍은 연합국, 특히 소련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연설 도중에 했다.

“(전략) 이것은 4개국이 협력하여 조선의 적화를 공작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맹서하여야 한다....(후략)”

▲ 신탁통치 반대 운동 ⓒ 한국학중앙연구원

임시정부 주도의 대국민적 반탁운동

임시정부에서도 반탁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갖추고 이어 4국 연합국인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이시기에는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합법국가로 인정받았다.)의 국가 원수에게 결의문도 보냈다.

4국 원수에게 보내는 결의문
우리는 모스크바 회의에서 신탁통치제를 적용한다는 결의에 대하여 반대한다.
(1) 민족 자결의 원칙을 고수하는 한국 민족의 총의에 절대로 위반된다.
(2) 제2차 세계 대전 중 누차 선언한 귀국의 숙약에 위반된다.
(3) 연합국 헌장에 규정한 3종 탁치 전용 조례의 어느 항도 한국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4) 한국에 탁치를 실시함은 극동의 안정과 평화를 파괴할 것이다.
이상의 이유는 한국의 즉시 독립과 세계 평화를 위하여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철저한 불합작을 미리 성명하고, 귀국의 신중한 고려를 촉구한다.

대한민국 1945년 12월 2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 : 김구
외무부장 : 조소앙

이외에도 임시정부는 각 종교단체, 정당 대표, 언론 단체에서 사람들을 소집하여 새로운 독립 운동을 하겠다는 굳은 결의도 밝혔다. 임시정부는 전 국민적으로 반탁운동을 이루어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 12월 29일, 미 국무성이 하지 미군 사령관에게 2주일 내에 조선 임시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하여 미·소 공동 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소련군 사령관과 협의하라고 보낸 전문이 밝혀지자 우리 민족은 더욱 분노하였다.

임시정부는 12월 30일, ‘임정 내무부장 신익희’의 명의로 ‘임정 포고 제1호’를 발표함으로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임정 포고 제 1호
(1)현재 전국 행정청 소속의 경찰 기구 및 한국인 직원은 전부 본 임정 지휘하에 예속하게 함.
(2) 신탁통치 반대의 시위 운동은 게통적, 질서적으로 할 것.
(3) 폭력 행위와 파괴 행위는 절대 금지함.
(4) 국민의 최저 생활에 필요한 식량, 연료, 수도, 전기, 금융, 의료기관의 확보 운영에 대한 방해를 금지함.
(5) 불량 상인의 폭리, 매점 등을 엄중 단속함.

대한민국 1945년 12월 30일
내무부장 신익희

이러한 임시정부의 결단에 전국 관리들마저 합세함으로서 미군정은 당황했다. 이에 놀란 하지 미군 사령관은 임시정부 인사들을 다시 국외로 추방하려고 했으나 군정에 참여한 인사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미 군정청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마저 계속 결근하였고 하지 장군의 요리사까지 결근하여 식사조차 하기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다. 시내는 모든 교통업계와 음식점,술집 그리고 기생들 마저 합세하여 서울의 모든 상가는 마비가 되었다. 그리고 전국으로 반탁 운동이 퍼져나갔다. 미군정이 수습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반탁운동이 커지자 한국민주당의 송진우는 김구를 급히 만나 “반탁은 하되, 미군정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라고 밝혔다. 미군정을 부인하고 임시정부의 이름으로 독립을 선포하면 큰 혼란이 있을 것이고, 미군정에 의해 해체된 ‘인공’은 부활할 가능성이 있어 공산당만 어부지리를 얻을 우려가 있다는 뜻이였다.

▲ 좌익공산세력들의 찬탁운동 ⓒ 네이버 누리꾼 블로그

좌익공산세력들의 돌변

좌익공산세력도 처음에는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오히려 우익민족세력들보다 더욱 적극적이였다. 그러나 1946년 1월 2일 조선 공산당은 다음과 같은 찬탁 의사를 표했다.

“모스크바 3상 회의의 문제의 5년 기한은 그 책임이 3상 회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자체의 결함에 있다고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의 책임을 의식적으로 3국에 돌리고 정면으로 반대, 배격함에 열중하고, 3국의 우호적 원조와 협력의 신탁을 마치 제국주의적 위임 통치제라고 왜곡하고, 과거의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동일시하여 조선 민족을 오도하며, 민주주의적 연합국을 적대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정책을 쓰고 있는 ‘김구’ 일파의 소위 반탁 운동은 조선을 위하여 극히 위험 천만한 결과를 나타낼 것은 필연이다. (후략)”

불과 반탁운동을 벌인지 6일만에 돌아선 것이다. 조선 공산당뿐만 아니라 ‘조선 인민 공화국 중앙 인민 위원회’에서도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에 찬탁에 대한 전문을 보냈다. 좌익공산세력들은 미국, 소련, 영국에 의해 결정된 신탁통치안이 우리 민족의 결함 때문에 결정된 것이라고 우리 민족을 비하했으며, 반탁 운동은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반탁에서 찬탁으로 갑자기 돌아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소련은 해방 직후 북한을 신속하게 공산화 시켰으며, 그와 같이 남한마저 소련이 신탁통치를 이용해 공산화 시킬수 있다는 속셈이였다.
2. 소련의 의중을 몰랐던 좌익들이 반탁운동을 하였으나 박헌영이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의 소련 영사관의 지령을 받자 급히 돌변했다.
3. 반탁 운동의 주도권이 임시정부가 완전히 장악하자 좌익들은 당황했다. 임시정부가 발표한 포고령에 국민들이 모두 따랐다. 좌익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공산당이 뿌린 찬탁 삐라를 보면 유달리 김구를 공격했다.

이러한 행동은 오직 집권에만 혈안이 된 반역행위다. 이러하게 갑자기 찬탁으로 변한 좌익세력들을 본 국민들은 매우 당황해했다. 남한의 좌익공산세력들은 신탁이 우리 민족을 위해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라며 변명하려 했지만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더 나아가 조선 공산단 북조선 분국(대표 김일성)도 신탁통치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번 불이 붙은 반탁운동은 반공운동으로 이어 나갔고 “나라 팔아먹는 공산당 타도”라는 구호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좌익공산세력의 매국 행위로 인해 우리 민족은 더욱 분열하고 화합의 길은 요원하게 되었다.

▲ 박헌영의 딸, 박비비안나(좌)와 박헌영(우) ⓒ MBC 방송국

박헌영의 망언

박헌영은 좌익공산세력들의 매국 행위에 한 술 더 떴다. 미국 뉴욕 타임즈 특파원 존 스톤과의 회견에서 그는 “조선에 대한 소련의 1개국의 신탁 통치를 절대 지지하며, 5년 후에는 조선이 소련 연방에 편입되기를 희망한다.”라는 말을 했다. 이에 모든 민족 진영에서는 반헌영을 규탄하기 시작했고 당황한 그는 오해라며 극구 부인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이 사실이었다는 입증이 나타났다. 존 스톤과 박헌영의 대화를 메모한 ‘터컬’ 대위가 신문에 발표된 것이다.

존 스톤 : 당신은 조선을 소련 1국만으로 신탁 통치를 하겠다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헌영 :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련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고 가장 근로 계급을 대표할 수 있는 국가이므로 조선은 소련의 신탁통치가 되어도 좋다.
존 스톤 : 조선을 ‘소련’의 일원으로 포함할 의지가 있는가?
박헌영 : 현재로서는 이르다. 국내의 반대가 클 것이다. 그러나 10~20년간 조선을 준비시키면 가능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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