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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⑤ 본격적으로 복무를 시작한 여자해병들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2.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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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군하는 해병대4기 여자해병들 ⓒ 해병대전략연구소 캡쳐

신병훈련 수료 후 일부 귀가 조치되다.

여자해병대원 126명은 진해 해군신병훈련소 특별중대에 편성되어 약 40일간의 신병교육훈련을 마치고 1950년 10월 10일 전원 수료했다. 이중 51명은 수료 후 귀가했고 나머지 75명만 현역으로 근무했다.

51명이 귀가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귀가한 해병여군의 증언과 당시 상황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던 위급한 시기에 해병대사령부에서 여성해병들을 모집했다. 그러나 해병4기생들을 선출하자마자 인천상륙작전과 통영지구전투에 투입함에 따라 여자해병들의 교육을 해군통제부가 담당하게 되어 해병대사령부에서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여자해병들이 훈련을 당시 10월 10일은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여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그리고 38도선을 통과하여 북진할 시기여서 후방이 다소 안정된 시기였다.

마지막 이유는 나라가 위급해서 구국의 일념으로 지원한 여성들이였지만 다수가 어린 여학생들이었다. 훈련 받는 중, “훈련이 마치면 귀가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여성들도 있었고 여론 또한 “어린여성들까지 굳이 군복무를 시켜야겠냐?”고 했다.

결국 군사훈련 수료 동시에 귀가 희망자, 형편이 어려워 가정환경 문제가 시급한 사람, 어린 학생들 중 학업을 계속 하겠다는 사람들을 귀가 시켰다.

실제로 귀가한 사람들의 증언도 들을 수 있다.

당시 여자해병훈련을 받았던 양순자씨는 “수료하기 전에 제대할 사람 있으면 손을 들라고 해서 혼자만 손을 들었는데 왜 제대하려고 하느냐고 물어서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내가 가서 가정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그 후 다른 사람도 지원을 해서 50여 명이 수료식 후 제대를 했다.”라고 증언했다.

같이 훈련 받던 강인숙씨의 말도 들어 볼 수 있었다.

“수료식 전 중대장이 훈련생들을 한 명씩 불러서 전황이 호전되었으니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어봐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수료식 후 제대하라고 해서 10월 10일 제대했다.”

▲ 여자해병들이 소속되었던 해군통제부 ⓒ 두산피디아

여성해병들의 현역복무

신병교육 수료 후 귀가하지 않고 현역복무를 계속한 75명의 여자해병들은 해군 위생병원에 대기하다가 해군통제부로 전원 전속되었다.

해군통제부는 각자의 경력, 특기, 나이 그리고 개인희망 등을 고려해서 해군통제부 각 참모부 및 직할부대와 진해해군병원에 배치시켰다.

장교로 임관한 3명 중 신영희, 강재삼 소위는 해군진해병원에 배치되어 위생장교로 복무했다. 나머지 1명 이순덕 소위는 해군통제부 정훈실정훈관으로 배치 받았다.

나머지 부사관, 병사계급을 부여받은 72명도 해군통제부 참모부서 및 직할부대로 배치되어 행정, 선무공작, 정훈활동, 보급, 정비, 토신, 헌병 그리고 기계제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일부는 진해 해군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1950년 11월 23일 여자해병 42명이 전역했다. 학업을 희망한 사람과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같은 날 해군본부에서도 이시기 해군통제부, 해군진해병원 그리고 해군통제부 정훈실에서 근무하던 이순덕 소위를 포함한 24명을 해군본부로 전속시켰다.

해군본부로 전속된 여자해병들은 각 참모부서 및 직할부대 행정병, 정훈병, 유선/교환병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전속된 이효각 소위는 이순덕 소위와 정훈감실에서 어린이 위문단을 인솔하여 각 부대 및 병원 등에 위문활동을 했다. 이순선, 박종유, 이인숙은 해군통제부 휼병감실 후생과에 배치되 보급업무를 수행했다.

▲ 진해통제부 헌병대에 근무하던 김정희, 송경애, 좌음순 ⓒ <국방일보> 2009년 2월 4일자 4면 기사 캡쳐

강길화, 홍정향, 문숙영은 진해 통제부 정훈부에 배치되어 진해 시내와 한산도 등지에 배치되어 지프차를 타고 전황홍보와 선무공작을 펼쳤고 박정희, 최순재, 허연순은 진해 통제부 조병창에 배치되어 함정 부속품 장부 정리를 맡았다. 현애순, 이순자는 진해통제부 공창에 배치 밭아 기계설계보조와 함정설계보조를 맡았다. 좌은순, 송경애, 김정희는 헌병대로 전입되었다.

그러던 1951년 3월 5일 1명이 전역했다. 5월 10일에는 20명, 5월 29일에는 1명이 차례대로 전역했고 6월에는 11명만이 남았다. 대부분 여자해병들이 전역하자 11명 전원을 해군통제부로 다시 전속시켜 원래 보직으로 재배치했다.

7월이 되자 8명이 추가로 전역했다. 이어 장교 2명은 각각 8월과 12월에 순차적으로 전역하자 이순덕 중위 1명만이 유일한 여자해병이었다.

한편 이순덕 중위는 휴전협정 이후 약 1년 6개월 뒤인 1955년 1월 17일에 전역했다.

여자해병들은 비록 짧은 기간 동안 복무했지만 여자의 몸으로서 그것도 어린여자들이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것은 우리 후손들이 이들을 존경해야하고 이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계속)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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