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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⑧ 육군의 나이팅게일, 육군간호장교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2.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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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군의 최초 군병원인 제1육군병원 ⓒ 해병대 네이버 블로그 캡쳐

대한민국 최초의 의무부대 탄생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해방되고 난 뒤, 약 3년 동안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미군은 ‘뱀부 계획(Bamboo Plan)’ 을 통해 1946년 1월 9일, 경비대를 지역별로 창설 했다. 경비대는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5월 1일, 경비대는 남조선국방경비대로 확대 되었다. 그 예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의무부서 ‘의무국’ 이 탄생했다.

의무국은 1947년 5월 1일에 ‘의무처’ 로 변경했고, 이때부터 산하 의무부대 창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군병원이 없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시절 일본군 의료시설로 활용했던 적십자병원 지하에 100병상 규모의 임시 의료시설을 만들어 민간의료진들에게 위탁진료를 받았다.

1948년 5월 1일, 통위부(現 국방부) 직할 최초의 군병원이 ‘제1육군병원’ 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에 창설되었다.

첫 부대장은 통위부 의무국을 창설하고 초대 국장을 지냈던 신학진 대위가 중령으로 진급해 부임했다. 인원은 장교 8명, 병 23명이 전부였다. 시설규모는 일반 환자용 50병상, 폐결핵 등 전염병 환자용 30병상으로 총 80병상에 불과했다. 간호장교는 아직 모집하기 전이었다.

동년 9월 28일, 여러 군병원을 총괄한 제1의무단이 창설되자 제1육군병원은 제1의무단에 예속되어 인원과 시설이 크게 확충되었다. 병상은 250병상으로 늘어났고 인력도 늘었다.

10월 1일에는 충남 유성(現 대전광역시)에 제2유군병원, 11월 20일에는 전남 광주에 제3육군병원이 생겼다. 1949년 2월 2일에는 부산에 제5육군병원, 7월 1일에는 서울 대방동에 수도육군병원이 창설되었고 1950년 5월 15일에는 전남 여수에 육군요양원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병원을 운영해 나갈 의료요원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했다. 임기응변식으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충당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조선경비사관학교에서 군의후보생과 의정후보생을 양성하기 시작했으며, 육군병원과 의무단본부에서는 위생병을 양성했다.

이어 1949년 8월 9일부로 발령된 육군본부 일반명령 제39호에 따라 경기도 부평(現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장교 12명, 병97명으로 구성된 육군군의학교가 창설되었다.

▲ 간호장교 제1기생 ⓒ 해병대 네이버 블로그 캡쳐

간호장교가 탄생과 양성

육군병원은 창설 당시부터 병원 운영이 어려웠다. 전문 간호 인력이 없어 중환자 간호와 수술은 제한되었다. 때문에 환자들은 무디고 불친절하며 비전문적인 위생병의 손길을 기피했다. 게다가 병실관리와 약품, 비품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없어 병원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제1육군병원장 신학진 중령과 제2대 의무국장 박동균 참령(現 소령)은 간호장교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간호장교 양성 제도를 추진했다. 이어 미 군정청 간호원 출신인 주한 미 경제협조처(ECA) 노동국 사회부장 미스 바로디와 스코트 부인을 찾아가 육군 간호장교 창설에 협조를 부탁했다.

두 사람의 요청에 두 미국 여성은 수락하고 미군청정에 한국 간호장교들이 착용할 피복, 훈련 및 교육에 필요한 시설과 교관요원까지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주한미군사고문단(KMAG)도 육군 간호장교단 창설을 도왔다.

미국의 지원약속을 받아낸 신학진과 박동균은 즉시 간호장교후보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우선 간호사 면허를 소지한 미혼여성들을 모아 단기간 실무교육과 기초 군사훈련을 시켜 각 병원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신학진과 박동균은 1948년 8월 26일부터 교육에 들어갈 간호장교 제1기 후보생 모집을 위해 각 민간병원에 홍보를 부탁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50여 명이 간호장교 제1기 모집에 지원했다. 그리고 한국인 여의사를 심사관으로 임명해, 신체검사와 면접을 통해 31명을 최종적으로 선발했다.

간호장교 제1기생들의 임관식은 1948년 8월 26일 오전, 경복궁 경회루에서 거행되었다. 이 임관식에는 많은 인사들이 참여했는데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이 간호장교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훈시를 했다.

임관식을 마친 간호장교 후보생들은 그날 오후, 남산에 위치한 조선경비대사령부를 찾아가 송호성 총사령관에게 임관신고를 함으로써 임관절차는 완료되었다.

▲ 간호장교후보 제1기생 임관을 축하하는 송호성 총사령관 ⓒ 국방부 자료 캡쳐

다음날 간호장교후보 제1기생들은 경기도 부평(現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는 미군 836부대에서 교육훈련을 받았다.

우선 보급품이 지급되었는데 모두 미군의 것이었다. 국방색 원피스, 검정색 단화, ‘할로모자’ 라고 불리는 작업모 등 직업복이 지급되었다.

간호장교후보생들은 오전에는 미군 군의관과 미군 간호장교들을 도와 근무를 하면서 실무교육을 받았고 오후에는 육군에 파견 나온 경비대사관학교(現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에게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 기초 군사훈련 과목으로 제식훈련, 독도법, 사격훈련 등을 받았으며 체력단련도 자주 받았다.

간호장교후보 제1기생이었던 조귀례씨는 당시 상황을 이와 같이 증언했다.

“귀관들! 장교가 무엇인지 아느냐?” 꽥!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커널 대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경기도 부평 미 836부대 간호장교 교육대에서 우리의 훈련을 책임졌던 미군 여성장교 완스타인은 우리의 걸음걸이와 복장에 제일 신경을 썼다. 우리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도 몰랐다. 번갈아 얼굴을 바라보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완스타인은 자기 모자를 벗어 다시 써 보였다. 할로모자라고 불리던 미군 평상모는 콧날과 모자선이 일직선이 되게 쓰도록 되어 있다. 모자 앞부분 맨 아래 끝선이 미간 바로 위에 놓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마 한가운데 빼또롬하게 쓰고 다녔다. 이어 커널 대령은 “장교는 국제신사다. 자세부터 장교다워야 한다.” 국제신사라는 말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국제란 말의 기준을 가늠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떤 때는 걸음걸이와 앉는 자세까지 말썽이었다. 그녀는 말끝마다 “그런 자세로는 장교가 될 수 없다.” 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중략) 군인으로서의 기본은 제식훈련과 사격훈련으로 다져졌다. 국방경비대사관학교 출신 김 소위에게서 인정사정없는 훈련을 받고부터는, 우리도 조금씩 스스로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특히 사격술 훈련은 우리도 총을 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위기상황을 맞아도 자신을 지킬 수 있겠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늦더위가 한창이던 8월 27일에 시작된 교육은 11월 27일에야 끝났다.”

▲ 간호장교 2기 출신 김명희 씨 ⓒ 동아일보 기사 캡쳐

한편 간호장교후보생 제1기 수료 이후 교육체계가 바뀌었다. 1948년 12월 25일부터 교육훈련이 시작된 간호장교후보생 제2기와 제3기는 교육주체가 미군에서 제1의무단으로 조정되었고, 제 4, 5기는 육군 군의학교가 주체가 되어 교육훈련을 담당했다.

홍보 방법도 더욱 적극적이었다. 신문에 광고도 냈다. 지원 자격도 엄격해졌는데 ‘여중 졸업자 또는 동등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간호사 면허 소지자’ 로 명시되었고 연령제한도 30세 이하로 낮아졌다. 시험과목은 제1기생 시험과목이었던 신체검사와 면접시험을 포함해 해부학, 간호학, 생리학 필기시험과 임상시험도 추가되었다.

간호장교후보 제2기생은 제1기생이 수료하고 육군병원에 배치된 다음날인 1948년 12월 25일,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에 위치한 제1의무단에 입교하여 교육 받았다.

구대장으로 간호장교후보 제1기생이었던 최보배 소위가 보직되어 실무교육을 보조하고 내무생활과 정신무장에 이르기까지 보살펴주었다. 간호장교후보 제1기생은 1기생과 달리 15일간의 군사훈련을 이수한 뒤 각 병원에 배치되어 근무하다가 1949년 2월 5일 수료와 동시에 임관했다.

이는 여순 폭동으로 부상자들이 많아 간호장교후보생들의 교육훈련보다 간호근무가 시급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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