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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⑩ 국군의 북한점령 지역에서 육군간호장교들의 활약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2.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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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국군의 북한점령지역 ⓒ 네이버 누리꾼 블로그 캡쳐

국군의 북진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을 이룬 후 28일 서울까지 탈환했다. 이어 10월 2일에는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하여 10월 10일에는 원산을, 10월 19일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한편 10월 26일에는 서부 청천강 북부와 압록강의 초산에 이르렀고, 중부는 장진호를, 동부는 압록강 혜산진까지 진격했다. 11월에는 두만강 일대까지 국군이 점령했다.

북한점령지역에서 간호장교들의 활약

전쟁이 발발하자 군의관 및 간호장교, 의무병 등도 쉴 새 없이 바빠졌고 병원에도 환자가 늘어났다. 개전 이틀 동안은 국군부상자가 대다수였지만 3일째부터는 북한군 부상자도 실려 왔다. 같은 병원에 국군과 북한 괴뢰군 부상자, 그리고 일반인 환자가 동시에 수용되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났다.

이러한 불편한 동거로 급기야 병실 내에서 국군과 북한 괴뢰군 간의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 괴뢰군은 우선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치료를 요구했고, 이로 인해 우선순위가 밀린 민간 환자들의 불평과 국군환자의 동조로 충돌했던 것이다.

동시에 국군환자와 민간인환자들의 철수작전도 전개되었다. 걸을 수 있는 경환자들은 각자 퇴원해서 피란길에 올랐고 중환자들은 병원차량과 열차편으로 이동되었다.

간호장교들은 북한 괴뢰군 감시병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수술복이나 의료진의 가운을 입혀 탈출시키기도 했다.

▲ 6.25 전쟁 당시 맹활약했던 6사단, 압록강에 최초로 닿았다. 사진은 6사단 소속 간호장교들 ⓒ 연합뉴스

한편 북한 괴뢰군이 병원을 접수한 시간에 근무 중이었던 사람들은 이들에게 억류당했다. 이들 중 일부는 9.28 서울 수복당시 북으로 끌려갔지만 국군이 평양, 함흥, 원산 점령시 구출되었다. 하지만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동하는 병원열차에서도 간호업무는 계속 되었다. 급하게 철수 했지만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아 열차는 1주일씩 남행했다. 낮에는 북한 괴뢰군의 폭격을 피해 산골짜기 안전지대에 멈추어 섰다가 밤에만 이동했다. 보급이 끊겨 주먹밥으로 해결하거나 철로 가에서 임시로 취사했다.

북괴의 계속된 남진에 따라 대규모 민간병원이 모두 북괴의 수중에 들어가자 시설이 크게 모자라게 되었다. 국군 당국은 군의학교를 임시 폐교시키고 ‘야전의무단’ 으로 바꾸어 전상자를 수용했다.

그러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전세가 역전되었다. 이에 국군은 제15육군병원의 창설을 시작으로 제 18병원과 제23, 제27, 제31, 제36, 제59 육군병원을 창설했다.

동년 12월에는 군 의료시설의 수용규모가 2만 5천여 병상으로 증가되었다.

▲ 1950년 10월 19일 평양탈환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국군을 환영하는 평양시민들 ⓒ 국방부 6.25 전쟁 제60주년 사업단 블로그 캡쳐

한편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여 북한으로 진격하기 시작할 때 간호장교들도 장병들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전진할 때 같이 전진하고, 후퇴할 때도 같이 후퇴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이들의 사명이었다.

10월 26일 제15육군병원은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함경남도 원산에 상륙했다. 원산에서 현지 병원시설을 점령해 병원을 운영하다가, 계속 북으로 진격하는 부대를 따라 11월 17일에는 함경남도 도청소재지인 함흥까지 이동했다. 이후 제15육군병원은 함흥도립병원을 접수했다.

개원 당시에는 환자가 많지 않았지만 미 해병대가 장진호 방면으로 진격하고, 국군이 함경북도 청진으로 진격하면서 전투가 가열되자 전상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려 왔다. 간호장교 10명, 간호보조원 5명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환자들이 많았다. 이에 육군은 현지 간호사를 모집해 부족한 인력을 보충했다.

11월의 함경도는 이미 한겨울이고 기온은 영하 20도에 달했다. 수도관이 얼어 물을 얻기가 어려웠고, 난방시설이 없어 환자들도 추위에 시달렸다. 게다가 보급도 원활하지 못해, 의료품과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의 조달에 어려움이 많았다.

제15육군병원의 선임간호장교 장경희 중위(간호후보생 제1기 출신)가 미군부대를 찾아가 미군 전투식량인 레이션 박스를 겨우 조달해 기근을 면했다.

▲ 한반도로 진격하는 중공군 ⓒ 다음 누리꾼 블로그 캡쳐

중공군이 참전하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하기 시작하자 간호장교들도 따라 움직였다. 1,000명의 환자를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부터, 철수선 안에서 그들의 상태를 돌보는 일까지 고통의 연속이었다.

흥남부두에는 국군과 유엔군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가득 메워 아수라장이 되었다. 철수선이 붐벼 경환자들은 앉을 공간도 부족했다.

함흥에 비해 평양은 사정이 조금 나았다. 교통 환경이 함경도보다 나은 곳이고 이승만 대통령이 평양탈환 행사에 참석하게 되어 보급사정이 함흥과 같이 열악하지는 않았다.

제27육군병원은 11월 1일 평양으로 이동하여 평양시 신양리 기독병원에 병원본부를 두고 환자 1,500명을 진료했다. 환자가 늘어나자 평양에 소재한 광성초등학교, 천운초등학교 등 인근지역 5~6개 학교를 징발하여 분원을 두고 전상자를 치료했다.

그러나 유엔군의 폭격으로 상수도시설이 파괴되어 물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군속(現 군무원)을 동원하여 우물물을 직접 길어 끓인 뒤 메스와 위생기기를 소독해 사용했다.

11월 14일 여러 곳에서 분산된 병원기능을 통합하기 위해 김일성대학부속병원으로 병원을 옮겼다. 王자로 구성된 이 병원은 대형 규모로 분원을 둘 필요가 없었다. 이 병원은 병실 복도까지 차량이 다닐 수 있게 되어 있어 환자수송이 매우 편리했다.

▲ 6.25 당시 민간 간호원들도 부상자들을 치료하는데 앞장 섰다. ⓒ 연합뉴스

한편 평양탈환 기념행사에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뒤로는 “국군을 돕자” 는 북한 동포들의 정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양시민들은 많은 양의 된장, 간장 같은 식품과 담요 같은 침구류를 보내어 병원살림에 보탰을 뿐만 아니라 복구 작업에도 나섰다. 여자들의 경우 자진해서 병원을 찾아와 빨래 및 청소를 도왔고 민간 간호사들은 간호를 도왔다.

그러나 중공군이 참전하자 부상자들은 더욱 늘어났다. 김일성대학 병원 등 평양시내 주요병원에 임시로 수용된 환자는 2,500명을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철수였다. 병원개설 후 얼마 되지 않아 철수명령이 떨어지자 혼란이 일어났다. 많은 환자들을 데리고 시급히 철수하는 것은 마치 다급한 군사작전과 같았다. 그러나 이마저 쉽지 않았다. 중공군이 8km까지 포위망을 좁혀왔기 때문이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부상자들을 싣고 남쪽으로 떠난 병원열차 승리호, 무궁화호 그리고 10여 대의 앰뷸런스는 되돌아오지 못했다.

▲ 미군철수선(LST)에 타기 위해 몰려든 북한주민들 ⓒ 국립중앙박물관 자료 캡쳐

이처럼 급한 상황에서 제27육군병원 관계자들은 민간인들의 협조로 중환자 300여 명만을 들것에 누인 채 트럭으로 진남포로 이동시켜 미군 철수선(LST)에 태웠다. 나머지 환자들은 알아서 철수하라는 방침으로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돌보아야 하는 간호장교들은 중공군에게 붙잡히게 될 상황에 대비하여 수면제를 30알씩 휴대하고 다녔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한꺼번에 복용함으로써 자결할 결심이었다.

한편 중환자들과 함께 LST에 승선한 간호장교들은 선내에서도 전염과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페니실린 주사를 놓고 환자들을 돌보았다.

다행스럽게 LST에 승선한 환자들은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날씨 역시 겨울이었던 관계로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제3, 제5 육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계속)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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