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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여군으로서 그 위대한 활약 ⑰ 여군의 6.25전쟁 참전 의의와 발전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승인 2013.03.0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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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개의 초상화,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를 껴안고 장렬히 전사했다. ⓒ 누리꾼 블로그 캡쳐

여성의 호국 및 애국정신 계승

대한민국의 5천년 역사상 외침을 받았을 때 여성들의 애국 및 호국활동은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전투, 논개와 계월향의 의기(義氣, 의로운 기생), 일본강점기 당시 윤희순의 의병단 조직, 유관순 열사의 3.1운동 주도 등이 있다.

6.25전쟁 당시에는 여성의 호국활동은 더욱 적극적이었고 직접 참전하기도 했다. 6.25전쟁에 참전하거나 지원한 여군 및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이들은 국가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홀연히 육ㆍ해ㆍ공군 및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여 활동했다. 또한 총탄이 난무하는 전선, 병원, 대북방송 현장, 총기를 만드는 총포공장, 타이프가 있는 사무실 그리고 험준한 산악지형 등 여러 위험한 현장에서 활약했다.

비록 군대에 입대하지는 못했지만 민간여성들도 국가와 국군을 위해 나섰다. 이들은 간호활동, 식품 제공, 빨래 및 청소 등으로 국군을 도왔다.

이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도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우리민족의 최대 비극인 6.25전쟁 당시 여성들의 위대한 활약은 후손들이 본받아야할 점이다.

▲ 대한민국 최초 여군 '여자의용군', 사진은 여자의용군 군악대. ⓒ 누리꾼 블로그 캡쳐

여군 발전과 그 계기

대한민국 여군은 1953년 휴전 이후 법적, 제도적 정비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육군은 6.25전쟁 중 배속장교와 여자의용군으로 참전하여 활동하다가 1953년 휴전 이후 여자의용군이 정규군으로 발전하면서 여군병과로 정착되었다.

1955년에는 독자적으로 여군훈련소가 창설되었다. 1970년 12월에는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여군단이 창설되었다.

4년 뒤에는 ‘여군 병’ 제도를 폐지하고 초임 계급을 ‘하사’ 로 전환하여 입대 자원의 질적 향상을 도모했다.

또한 전신타자, 전산요원, 항공, 심리전 방송요원 그리고 여군 헌병대 등 여군의 활동영역은 더욱 확대되었다.

1990년 1월이 되자 육군은 여군 단일병과를 해체하고 보병, 정보 등 7개 병과로 전환하여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1998년에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최초로 여자생도를 모집하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숙명여대를 시작으로 여군 ROTC도 모집하기 시작했다.

해군(해병대 포함)의 경우 1950년 8월 31일 제주에서 126명의 여자해병이 탄생했다. 그러나 1955년 이순덕 중위가 전역함으로써 여자해군의 역사는 오랫동안 단절되었다.

하지만 1999년 해군사관학교에서 여자생도를 입교시킴으로써 여자해군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2001년에 사관후보생 출신 여군 장교 20명이 임관하여 함정과 해병대 등에 배치되었다. 2003년에는 해군사관학교 23명이 해군 및 해병대 소위로 임관했다. 또한 같은 해, 해군 및 해병대 부사관이 최초로 임관하기도 했다.

이로써 해군 및 해병대에서도 여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해군 및 해병대 여군들은 전투함, 대잠 헬기 조종사, 전투부대 지휘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남군들과 함께 활약하고 있다.

공군의 경우 1949년 2월 여자항공대가 창설되어 여자항공병이 배출됨으로써 시작되었으나 1954년 10월 김경오 대위가 전역하면서 단절되었다.

▲ 40여년만에 재탄생한 공군 여군 ⓒ 누리꾼 블로그 캡쳐

그러나 1997년 공군사관학교 역시 여생도가 입교함으로써 다시 시작되었다. 2001년 1월에는 공군 최초로 사관후보생 출신 여군 장교 22명이 임관했다.

이어 3월에는 공군사관학교 여생도 18명이 임관했고 두 달 뒤인 5월에는 공군 최초로 여자 부사관 31명이 임관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2년 9월에는 공군 최초로 여군조종사 5명이 탄생했다. 이로써 6.25전쟁 이전에 조종사의 꿈을 안고 여자항공대에 입교한 선배 항공대원들의 숙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간호장교는 1948년에 국군이 창설하고 의료 인력이 필요함에 따라 간호장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국군의 의료지원과 간호를 담당했다.

한편 6.25전쟁이 발발하자 간호장교들은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들의 간호를 위해 잠을 자지 못하고 식사까지 걸렀다.

그러나 휴전협정 이후 사회가 안정되었다. 이에 간호장교 지원자가 줄어들어 간호사관학교가 1957년 제10기생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국군은 민간 간호학교에 위탁교육을 시켜 간호장교를 양성하는 등 간호장교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1967년 8월 15일, 육군병원 부설 3년제 육군간호장교가 창설되었고 1981년 1월 5일부로 4년제 정규대학과정으로 승격되면서 ‘국군간호사관학교’ 로 개편되었다.

한편 국군 간호장교는 해외에도 많이 파견되었다. 1964년 베트남전쟁에 500명이 파병되었고 걸프존, 서사부사하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도 세계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파병되어 간호임무를 수행했다.

2001년 1월 1일부로 여군 최초로 여군 최초, 간호병과 출신 장군이 탄생되었고 2012년까지 6명의 간호장교 장성을 배출했다.

2013년 올해 휴전협정이 맺은지 정확히 60년이 지났다. 전쟁이 발발하여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여성의 몸으로 육ㆍ해(해병대)ㆍ공군을 입대하여 나라를 지키던 여군들의 희생과 헌신이 여군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 오늘날의 여군들의 모습 ⓒ 대한민국 국방부 자료 캡쳐

여군의 역사는 대한민국 역사의 일부이자 국군의 역사이기도 한다. 여군들은 6.25전쟁을 거치며 국가 및 군에 크게 기여를 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잔존하던 당시, 여성의 몸으로 군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당당히 여군에 지원함으로써 유교적 사회제도와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탈피했고 여군이 성장 및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여군들은 첨단화되고 발전된 각 군 곳곳에서 국가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이것은 60여 년 전, 선배 여군 및 여성들이 전쟁터와 근무현장을 누리며 활약한 조국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 오늘날 발전된 여군이 존재하는 크나큰 믿거름이 된 것이다.

<출처 : 6·25전쟁 여군 참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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