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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과 독일 공산당과의 비교 ③ 독일공산당과 통합진보당의 통일정책 비교
  • 자유민주연구학회
  • 승인 2014.08.1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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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을 최종목표로 내세웠던 독일공산당과는 달리 통합진보당은 이러한 목표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독일공산당을 해사하던 당시에 이를 가장 직접적인 해산 근거로 제시하였던 것과는 달리 우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의 목적의 위헌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감추어진 의도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정리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서 독일공산당의 강령, 당헌 등에서 나타나는 목적 내지 목표들 가운데 통합진보당이 제시하는 것과 유사한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독일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를 공식적으로 표방하고 있었고, 그에 기초하여 구체적인 단기목표 또는 장기목표를 제시하였던 것과는 달리 통합진보당은 대외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유사성은 많지 않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으로서의 기본적 공통점 이외에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공식적으로 최종목표로 삼고 있었던 독일공산당과 그렇지 않은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이 있다는 점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독일공산당은 정당해산심판 절차에서 그들의 장기목표는 당연히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실현이지만, 이러한 장기목표는 기본법하에서 직접 추구되는 일상적인 규율이 아니었고, 구체적인 네 가지 단기목표를 추구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독일공산당이 단기목표로 제시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독일 내지 (통일이 될 때까지) 독일의 양쪽의 동등한 참여하에서 집단적 안보체계를 통한 평화의 획득과 유지
2. 민주적 기초 위에서의 독일의 평화적 통일
3. 기본법의 헌법적 질서의 기초 위에서 민주적 권리와 자유의 보장과 확대
4. 노동계층 인구의 사회적, 문화적 이익의 실현 및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의 형성]

이와 관련하여 가장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영역이 통일에 관한 목표의 설정 및 이를 추진하는 방식이다. 독일공산당은 당시 분단되었던 독일의 정치적 상황 하에서 통일이 갖는 의미와 통일의 방식 내지 단계에 관하여 매우 독특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독일공산당은 통일에 관한 목표를 주된 목표 또는 전략적 목표라고 지칭하면서 다양한 정책 내지 전략을 내세웠으며, 독일연방헌법재판소도 이러한 독일공산당의 통일정책을 분석하는데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BVerGE 5, 85, 238ff.]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공산당의 통일정책은 일종의 투쟁전략이며, 이른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국민적 항의 (nationaler Protest)”를 구호로 하던 단계이다. [BVerGE 5, 85, 240ff.]
제 2차 대전 직후 독일이 점령 4강국에 의해 분단이 가시화되던 시점에 사회주의통일당(SED:동독공산당)에 의해 「독일국민의회(der deutsche Volkskongreβ)」소집이 주도되었고, 이를 통한 통일노선에 관한 주장이었다.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점령국 외무장관회담을 계기로 제1차 독일국민의회가 1947년 11월 26일 소집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6일과 7일 개최되었다. 여기서는 점령국 외무장관회담에 독일중앙행정기구를 설치하고 청문회를 연 이후에 이 기구와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소련과 서방국들의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이후 독일 국민의회는 서방측의 태도에 대해 비난을 계속했다.] 당시 독일공산당(KPD)는 아직 사회주의통일당에 속해 있었다.


두 번째 단계는 “국민적 자조(自助)(nationale Selbsthilfe)”를 구호로 내세우던 단계이다. [BVerGE 5, 85, 242ff.] 점령 4강국 내부에서 서방국가들과 소련의 갈등이 노골화되던 시기에 동서독 분단이 결정되었고, 서독에서는 기본법 제정 작업이 진행되던 상태에서 1949년 2월 2일 독일국민의회의 집행기관인 「독일국민참사원(der deutsche Volksrat)」의 집행부에서 서방 점령국들에 대해 국민적 자조를 주장했던 것이다. [독일을 분할하려는 서방 점령국들의 의도에 대항해서, 국제적 독점자본 하에 있는 서독 경제의 위치에 대항해서, 서독의 식민지적 억압에 대항해서 자조(自助)해야 하며, 독일의 운명은 그 자신의 손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으며, 이를 위하여 독일인은 단결해야 하며, 이 모든 것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국민적 저항(nationaler Widerstand)”을 구호로 하던 단계이다. [BVerGE 5, 85, 249ff.] 1949년 10월 4일 사회주의통일당(SED)에 의해 이러한 주장이 나온 직후에 독일공산당(KPD)에서도 그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 핵심적 내용은 서방점령국들이 동서독 분단과 연방주의 건설을 획책하고 있으며, 국민적 저항을 통해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시기였으며, 서독정부가 유럽방위공동체를 위해 노력함에 따라서 서방국가들과 함께 적대세력으로 지목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하다.]


네 번째 단계는 “국민적 해방투쟁(nationaler Befreiungskampf)”을 구호로 내세우던 단계이다. [BVerGE 5, 85, 254ff.] 이 구호는 1951년 전당대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서방점령국들을 분단, 전쟁준비와 노예화 등의 원흉으로 주장하며 투쟁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도 역시 동독공산당이 주장한 이후에 독일공산당이 이에 동조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독일공산당의 통일정책을 그 목표설정의 합헌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으며, 독일공산당이 서독의 아데나워 정부의 정치질서를 공산주의적 시각에서 독점자본주의적 계급지배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BVerGE 5, 85, 269f.]
맑스-레닌주의 이론에 따를 때, 독일공산당이 통일전략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또한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 공산당의 아데나워 정부에 대한 공격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독일공산당은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틀 자체를 부정하고 공격한다는 점이 독일공산당의 정책, 특히 통일정책을 통해 확인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공산당판결에서 독일공산당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적대성이 정당 내부의 학습 및 통일정책에 대한 선전에서 확인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관하여는 BVerGE 5, 85, 304ff.]


통합진보당의 통일정책은 강령 제46조의 “7·4 남북 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존중하며, 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이해아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통일진보당 강령 해설자료집에서도 외형상 매우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하루빨리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등 남북 간에 기존 합의한 원칙을 되살리고, 정치적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일관된 실천을 전개해야 한다. 관련 법률의 제·개정 및 경협 등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 강대국간 협력과 갈등이 진영 간 대결 체제로 공고화되기 전에 평화체제 형성,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닦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 우리의 그런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노력은 강대국간 대결 체제를 예방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통합진보당 강령해설자료집, 진보정책연구원, 2012.8, 61면.] 라고 설명하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와는 달리 통일문제에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보인다. 여기서 구체적인 실천전략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통진당 강령 제5항이나 제44항, <통합진보당의 강령 해설자료집>과 <제18대 대선정책공약해설집>에 제시된 내용들을 보면 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을 원용하여 채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통합진보당이 “국가보안법 철폐,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주한미군 철수, 국정원, 기무사 등 특수기관 민주적 통제 강화, 검찰 공안부 폐지, 기무사령부 폐지”를 정책노선으로 채택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이러한 주장은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통일의 선결조건과 일치한다.

둘째, 통합진보당은 <18대 대선 정책공약 해설집>과 <정책공약 100문 100답>에서 제18대 대선 공약으로 ‘코리아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코리아(COREA) 연방공화국’ 건설 경로를 제시하며 연방제 통일방안을 공식화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통일방안인 ‘코리아 연방공화국’ (코리아 연방) 건설 방안은 북한의 통일방안인 ‘고려 민주연방공화국’ (고려연방) 창립방안과 용어상에서도 아주 유사하지만, 구성체계도 유사하다.

통합진보당은 코리아 연방이 6·15 공동선언 2항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통일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통일의 궁극적인 방향은 연방제라고 천명하고 있다. 특히, 남과 북이 각기 다른 이념과 체제를 갖는 조건에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유일한 형태는 연방제라고 찬양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인‘연합제’안에 대해서는 통일이 아니라고 왜곡비방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통일방안을 부정하고 북한의 연방제방안을 찬양, 선전하는 북한의 통일노선과 일치하며, 6·15 공동선언 2항에 대한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 경로의 1단계에서 남과 북이 국방권과 외교권을 행사하면서 민족통일기구인 ‘COREA 위원회’를 통해 남북관계를 천명하고 있다. 여기의 민족통일기구 설치 주장은 북한이 낮은 연방제 단계에서 군사권과 외교권을 행사하는 민족통일기구 설치의 주장과 일치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독일공산당이 동독공산당의 주장에 호응하여 통일정책을 주장했던 것과도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군비축소에 관하여 “선제적 군비동결과 축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남북한의 적대적 대치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시점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의 군비축소가 확인되는 가운데 남북한의 군비를 동시에 축소하는 것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최근까지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등 수시로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군비를 축소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무장해제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대 대선 정책공약해설집, 통합진보당 정책기획위원회, 2012. 11, 627면 이하.]

그밖에 NLL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이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하여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는 내용 등은 통합진보당의 통일정책이 과거 독일공산당이 동독공산당의 통일정책을 따라갔던 것과 유사하게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통합진보당의 통일정책이 헌법 제4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으로 평가될 수 있기 위해서는 통일을 위한 통일이 아니라 통일 후의 국가질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의 통일정책이 이 부분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부정 내지 적대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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