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재
친북은 정통과 민족으로, 좌파는 민주와 평화로 감쪽같이 성형 수술하고 양심마저 바꾸어 한국의 주류 세력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 100여개 식민지의 구세주 미국이 광복기념 선물로 대한민국에게도 공평하게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안겨 주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자유민주 체제였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 체제 안에서 벼락출세하는 지름길이 선거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천 년 만에 찾아온 새 패러다임이었다. 10세기에 고려 광종이 과거제를 도입한 이래 20세기 초까지 출세의 지름길은 과거 급제였는데,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선거 승리로 바뀐 것이다. 과거(科擧)보다 선거가 더 매력적인 점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을 넘어 국가 최고지도자 곧 합법적으로 현대판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시장경제에서는 초근목피의 누천년 가난뱅이 신세에서 벗어나 벼락부자가 되는 지름길이 더 이상 기껏해야 만석꾼밖에 못 되는 농업이 아니라 장사나 사업으로 백만석꾼 천만석꾼이 될 수 있는 대기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후천개벽의 새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인은 선거와 기업 양쪽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기업은 권력과 명예는 포기하고 부만을 목표로 하지만, 선거는 권력과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선거는 더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자기 밑천 한 푼 안 들이고 사람만 긁어모으면 되었다. 나중에 한 자리 준다는 약속만 하면 돈도 절로 굴러들어왔다. 세상에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일찌감치 김영삼과 김대중은 선거로 왕이 되고자 했고 순탄치는 않았지만 마침내 왕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반공세력이었다. 김일성의 계획적 남침을 통해 조선노동당과 중국공산당과 소련공산당의 실체를 몸으로, 죽음으로 배운 한국인에게 공산주의는 씨도 안 먹혔다. 그래서 두 김씨는 반공을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내세운 것은 반군사쿠데타와 반독재와 반재벌이었다.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에 깊이 박힌 명분주의에 착안하여 그들은 거룩한 말을 입안에 가득 담고 다녔다. 스스로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행동과 생활과는 전혀 무관한 민주와 평화를 입에 달고 살았다.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왜냐하면 장군 출신 후보자들이 출발선은 달랐지만, 두 김씨와 함께 나선 선거를 통해 청와대와 국회 양쪽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들이 한사코 반대한 경제정책으로 30년간 세계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면서 90% 빈곤층의 나라에서 70% 중산층의 나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북한의 공산독재는 북한 전 지역을 생지옥으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까지 생지옥으로 만들려고 휴전협정을 아예 무시하고 수시로 무장도발을 일삼았던 것이다.
두 김씨는 사고방식과 실제행동은 조선시대 봉건주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입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민주와 평화와 정통성을 내세워 지식인과 고향 사람 중심으로 상당한 지지세력을 얻을 수 있었다. 다른 후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몇 번 거른 적이 있었으나 국회의원 선거는 빠짐없이 실시했다. 덕분에 양 김씨는 일시적 가택 연금 상태에서도 사실상 대통령 바로 다음 가는 막강한 권력과 명예를 누렸다. 조선시대 영의정보다도 훨씬 높았다. 그러나 그걸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었다. 탄압 받았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자산이었다. 한국인은 명분에도 약하지만 약자에 대한 동정심도 유난히 많다는 걸 이들은 잘 알고서 이를 십분 활용했다. 김대중이 특히 그랬다. 그는 거짓과 참말을 교묘히 섞어 정치탄압 받았다는 것을 무수한 반복과 상당한 과장으로 국내외로 널리 깊이 각인시켜 군 출신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에서 두 김씨는 동시에 나왔다가 동시에 떨어졌다. 그 후에 그들은 절실히 깨달았다. 자신들에게 부족한 20%가 무엇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한국의 실리파와 손을 잡지 않고는 명분파는 결코 청와대에 입성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김영삼은 그래서 12.12세력과 손을 잡았고 김대중은 5.16세력과 손을 잡았다.
두 김씨는 한국의 실리파와 반공파를 단지 이용만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일단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는 전략적 제휴파를 철저히 짓밟았다. 그들에게 일체의 명분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세계적 세기적 업적도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었다. 사실상, 대를 이은 독재자 김일성 김정일보다 못한 인간으로 격하시켰다. 심지어 군 출신 군인들에 의해 도입되고 정착된 법치(法治)도 각종 위원회의 월권적 결정이나 공소시효와 일사부재리도 무시한 사법부의 무원칙한 재심, 삼심으로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법률 대신 떼법이, 헌법 대신 국민정서법이 온 나라에 가득 차게 만들었다. 자유민주를 후퇴시킨 것이다! 반기업정서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대기업 총수는 마녀사냥의 영순위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두 김씨는 김씨공산독재왕조가 날조한 민족과 정통성에 당의정을 입혀서 한국의 자유민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반공을, 아프리카나 중남미나 아시아의 개도국에 비하면 너무나 우아했고 인간적이었고 유능했고 청렴했던 ‘군사독재’와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자연히 친북파가 정치만이 아니라 사법부(특히 법원)와 경제(특히 노조), 사회(특히 시민단체), 문화(특히 언론계와 학계)에서 주류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자연히 좌파가 평등과 분배와 복지와 정의를 내세워 주류를 형성했다. 5년 전부터는 보수우익정당에서도 그들과 비슷한 자들이 명분의 목소리를 얻게 되었다. 무상보육과 경제민주화와 대학등록금 반액이 거기에서 총선공약과 대선공약에서 좌파정당과 대동소이하게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대통령 후보의 소신인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내 입지가 위태로워질 게 뻔해서 모르나, 어느 쪽이든, 이제는 좌우 어느 자리에 있든, 친북좌파가 대세다. 출세의 지름길이다.
김영삼 이전의 대통령들은 누구든 변호하고 지지하면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외계인 취급당한다. 대신에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에게는 어떤 방송이나 큰 신문도 반드시 주석이니 국방위원장이니 제1국방위원장이니 하면서 꼬박꼬박 직함을 붙인다. 히틀러를 꼬박꼬박 총통이라 부르는 것처럼, 스탈린을 꼬박꼬박 대원수로 부르는 것처럼 괴기스런 일이다. 명분을 생명처럼 여기는 나라에서 칭호는 절대 의례적으로 부르는 게 아니다. 조선동아마저 반 이상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2012년 8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지만원 박사가 1심에 이어 또 다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의 죄목은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유언비어 유포죄였다. 조선동아에서도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유죄였다면? 제2의 광우병사태가 났을 것이다.
(2012.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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