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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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충남 공주에서 1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세 언니의 결혼으로 결핵을 앓는 오빠와 자궁 내 질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家長) 역할을 하던 한 앳된 소녀.
어머니와 오빠를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싶은 효심 깊은 이 소녀는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겠다고 생각해 22세의 나이인 1974년 다른 `백의의 천사'들과 함께 피붙이 하나 없는 독일로 떠났다.
독일 함부르크의 알토나 시립병원 내과 남자 병동에 배치된 그는 밤낮없이 중증의 환자를 돌보면서 번 첫 월급을 고향으로 부쳤지만 어머니는 이 돈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늘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된 이국생활을 이어오던 이 소녀는 환갑을 앞둔 나이에 간호사로서의 삶과 꿈,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산 38년간의 기록을 담담히 들려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영남(60·여)씨가 최근 국내에서 펴낸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동심방 간)는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사연을 안고 고국을 떠난 다른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현지인과 결혼해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살며 겪어야 했던 차별과 정체성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의 부제를 `다문화의 정체성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파독 간호사의 성공 스토리'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씨는 2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책 출간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독일 파견 간호사들은 한국 여성 이민사에 첫발을 내디딘 존재입니다. 어려운 시절 고국을 떠나 힘들게 번 돈을 가족에게 보냈지요.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독일 사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올바로 정립되기를 기대하고 국제결혼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습니다."
이씨는 알토나 병원에서 3년반의 계약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한양대병원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1979년 다시 함부르크로 떠났다. 에펜도르프 병원에서 안과와 피부과에서 일하던 중 독일인 의사와 만나 1982년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가정주부로 살며 1남1녀를 두었다.
이씨는 책에서 낯선 독일 땅으로 떠날 때의 심경을 비롯해 고된 병원 생활, 남편을 만난 이야기, 자녀를 기르며 느낀 생각 등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함부르크에 도착한 이후부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지금까지 함부르크 한인사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봉사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도 담았다.
그는 함부르크의 파독 간호사회인 `백의회'(현 함부르크 한인여성회)의 창립 멤버. 나중에 회장을 맡기도 하며 해마다 한국예술의 밤 행사와 기념행사를 주도했다.
2010년 `함부르크 파독 간호사회 40주년 기념행사'에서 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그린 연극 `하얀 꿈은 아름다웠습니다'를 무대에 올렸다. 지금까지도 여성회 문화부에서 회지 발간을 도맡고 있으며 2세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탈 만들기', `탈춤' 등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독일지부 임원으로 차세대팀을 담당하는 그는 지난 6월 루마니아에서 열린 세계한민족여성재단(KOWINER)으로부터 `세계를 빛낸 한국예술인상'을 받았다.
자서전에는 자녀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함부르크 한인학교'에서의 봉사활동, 청주시와 함부르크시 간의 청소년 교류 협력을 주도한 동기, 케냐의 한 초등학생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장학금을 주게 된 사연 등도 소개해놓았다.
현재 독일 교포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하는 그는 국내 각당복지재단과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이 주최한 작품 공모에 당선되는가 하면 유력 일간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주최한 공모전에 `독일, 나의 제2의 고향'이란 제목으로 응모해 1등에 뽑히기도 했다.
이씨는 28일부터 나흘 동안 여수에서 열리는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KOWIN)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주 모국을 찾았다.
"파독 간호사들은 독일 속의 한국인이 있게 한 주인공입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자녀를 훌륭히 키운 대한민국 여성이자 어머니이며 독일 국민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평균 나이가 65세를 넘어서고 있지요.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올 기회가 마땅치 않아 외롭게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씨는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고국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두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하며 "파독 간호사들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이씨는 다음달 7일 서울 신문로 각당복지재단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자서전을 펴낸 이영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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