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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영희 감독. <<사진 부산영화제 제공>> | ||
'가족의 나라'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 부산영화제 방문
(부산=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부터 지금도 평양에 사는 오빠들이 걱정되지만 그 생각만 하다 15년이 흘러갔죠. 그래도 (작품을) 내고 싶으니까 냈는데 이제는 아예 유명해지기로 했어요. 우리 가족을 아주 유명한 가족으로 만들면 다치지 않겠다 싶어서요."
'디어 평양'(2006)과 '굿바이 평양'(2011)까지 북한에 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48)이 처음으로 연출한 극영화 '가족의 나라'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에서 곤궁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보여줘 북한 당국으로부터 입국 금지조치를 받은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개인의 삶을 옥죄는 북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6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가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만들며 북한의 가족들이 걱정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매일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걱정되지만 영화는 그래도 계속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전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에요. 전에는 조심해서 단어를 고르고 편집도 신경 쓰고 '김일성'이라고 해야 하나 '김일성 수령님' 아니면 '위대한 수령님'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하나 고민했는데, 이번엔 문제생으로 유명해지자고 마음먹었죠. 작품을 만드는 건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니까 하는 건데 나는 이기적으로밖에 못 사는 것 같아요. 가족 걱정한다고 착한 사람처럼 말만 하지, 작품은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는 극 중에서 북한에서 온 오빠가 일본에 사는 여동생에게 북한의 공작원 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는 내용을 예로 들면서 "이 내용을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게 있어야 재미있겠다 싶어서 넣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는 그런 일에 재일교포를 관여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강렬한 마음도 있었어요. '내가 그런 가족에서 태어났다고 착각하지 마시라는 거죠' 그런 말도 하고 싶었고요."
'가족의 나라'는 조총련에서 일한 부모 밑에서 자라 어렸을 때 북한으로 보내진 아들이 뇌종양에 걸려 치료차 일본을 방문한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에게는 북한에서 함께 파견된 감시원이 따라붙어 24시간 감시한다. 병에 걸린 아들, 오빠를 다시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와 여동생의 괴로운 마음이 절절하게 그려졌다.
"내 원망을 풀자고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조총련의) 북송사업이 1959년 12월에 시작됐는데 1980년대 초까지 약 9만4천 명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했어요. 초반에 갔던 대부분 사람들이 더는 오지 말라고, 여기는 지상 낙원이 아니라고 하니까 그 숫자가 점점 줄면서 많이 안 가게 됐는데, 조총련과 민단이 서로 세력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하면서 다시 시작됐죠. 그렇게 해서 저의 오빠들(3명)이 1971-72년에 북에 갔는데 사람 인생이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는 항상 따라오잖아요. 북에 간 사람들의 큰 비극은 거기 간 후에 초이스(선택권)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모든 초이스가 박탈됐죠."
20여 년 만에 만난 가족의 감격적인 상봉과 곧 이별을 앞둔 가족의 슬픔, 고통을 다뤘지만 영화에는 눈물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신파극적인 요소는 전혀 없고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런 절제된 연출이 일본에서도 크게 호평받아 제85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부문에 출품할 일본의 대표작품으로 선정됐다.
"내가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찍어서 그런지 이 영화도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러 그런 노력은 전혀 안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작은 카메라로 가족을 15년 동안 찍었으니까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는 것과 진짜 생활을 따라가는 것과 저에게는 크게 차이가 없었어요. 다큐멘터리로 보이고자 노력한 게 아니라 나는 그 방법밖에 몰라요. 커트를 쪼개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TV드라마에서 두 사람 얼굴을 계속 번갈아 찍으며 대화를 보여주는 방식은 너무 선정적이고 유치하게 보일 때도 있어요. 관객들이 상상을 해주셨으면 좋겠고 그럴 수 있도록 행간을 두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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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양영희 감독과 배우 안도 사쿠라, 아라타, 양익준 | ||
그는 이 영화의 제목을 지은 배경을 설명하며 영화의 의미를 명료하게 정리했다.
"한자로 '가족의 나라'라고 하면 어느 나라를 설정한 것으로 보일 텐데 꼭 히라가나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의 나라는 없다는 뜻으로요. 제 국적은 한국이고 고향은 일본이고 북한은 사실 태어나고 살아본 적도 없는데 '조국'이라고 배웠어요. 갈 때마다 '조국에 잘 왔다, 충성하라'는 말을 들으니까 조국이란 말이 너무 싫었어요. 앨러지가 생길 정도로요. 저는 어떤 나라 국기가 그려진 티셔츠도 못 입어요. 가족의 나라가 있을까요? 특히 이 가족에게 있어서요. 국가가 아니라 그들이 있고자 하는 장소를 얘기하고 싶었고 그 자리가 어딜까 나 역시도 지금 찾고 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특히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이 영화에는 일본의 인기 배우 아라타와 안도 사쿠라가 남매를 연기했으며 영화 '똥파리'로 유명한 한국 감독이자 배우 양익준이 북한 감시원 역으로 출연했다. 배우들 역시 감독과 함께 이번 영화제를 찾았다.
"배우들에게도 아주 조심한 건 이렇게 움직여라, 이런 표정 하라는 등의 얘기를 일절 안 했고 오직 하나 내가 겪었던 심정에 대해 설명만 자세하게 하면서 어떤 연기든 배우에게 맡겼어요. 여러 가지를 많이 가진 배우들이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했는데 배우들이 일을 정말 잘해줬어요."
그는 특히 배우들의 자유로운 연기가 빛을 발한 마지막 장면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의 실제 경험이 떠오른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진짜 오빠가 떠났을 때가 기억나서요. 오빠가 차를 타고 그냥 가버렸는데 그 순간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서 있었어요. 그걸 그대로 찍었는데 이걸로 끝나니까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 양익준 감독이 '똥파리' 얘기를 많이 했어요. 현실에서 못한 걸 영화에 다 쏟아부으라고요. 오빠에게 가지 말라고 한 번 해봤었으면 좋겠다는 후회가 쭉 남아있었는데 그걸 해달라고 사쿠라한테 부탁했죠.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액션으로 해달라고. 그런데 마치 어떤 사건이 일어나듯 배우들이 놀라운 연기를 해줬고 이건 두 번 다시는 못 찍는 장면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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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나라' 한 장면. <<부산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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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안도 사쿠라는 "대본을 읽기 전에 '디어 평양' DVD를 봤는데 이걸 보고 감독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감독 입장에서는 제안할 때 북한 얘기를 다룬다는 리스크 때문에 거절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데 나는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감독의 강렬한 심정을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출연 동기를 밝혔다.
아라타는 "나 역시 양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았고 작품을 보면서 감독의 삶이라든가 시선에 굉장히 관심이 생겼다. 그런 가운데 받은 대본을 죽 읽었는데 평범하게 읽을 수 없었고 나 자신이 이미 '성호'란 인물에 빠져서 그 사람이 된 느낌으로 읽어내려갔다. 감독의 인생을 더 피부로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해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양익준은 "'똥파리' 이후 3년 동안 패닉상태였고 많이 힘든 상태여서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감독이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한국에 오겠다고 해서 '뭘 저 때문에 오세요. 할께요'라고 했다"고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결정을 늦게 해서 감시원에 대한 캐릭터 고민을 3일 정도밖에 못 했지만 탈북한 분들을 몇 분 만나뵙고 그들의 일상을 녹음해 들어보면서 북한 발음을 연습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영화를 찍은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두 시간 내내 울음이 터지더라. 감독이 살아온 얘기를 듣다보니까 감정이 들끓었다. 스스로 출연한 영화에 대해 좋다, 안 좋다 얘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가족의 나라'는 정말 너무너무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개봉되고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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