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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전망대에서 열린 소년전차병 추모식16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태풍전망대에서 열린 소년전차병 추모식에서 관계자가 헌화를 하고 있다. 소년전차병은 한국전쟁 당시 15~18세 중·고교생으로, 미군 전차를 몰며 경기 연천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2013.5.16 ⓒ 연합뉴스 | ||
120여명 '나이 어리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戰史 사라져
반세기만에 유공 인정…생존 12명 기념식 "국가가 기억할 차례"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권숙희 기자 = "한국전쟁 '소년전차병'을 아시나요? 이젠 국가가 기억해야 합니다."
6·25 때 영어 교육을 받은 15~18세 중·고교생이 미군 전차를 몰며 경기 연천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자긍심을 담아 스스로를 소년전차병으로 불렀다.
전국 각지에서 120여 명이 자원, 1년 이상 나라를 위해 싸웠다. 누란 위기의 국가가 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5년 전인 2008년에야 국가유공자 신분을 인정받았다. 그나마 대부분 작고하고 생존한 12명 만이 평생 잃었던 명예를 되찾았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4월.
서울 용산에 살던 오명섭(78·당시 고1)씨는 서울지구 병사구 사령부(지금의 병무청) 군인을 만났다.
이 군인은 중·고교를 돌며 최신 무기인 전차를 다룰 '배운 사람들'의 입대를 촉구하는 강연을 했다.
오씨를 포함한 학생들에게 "15~18세 학생을 선발, 소년전차중대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할 것"이라며 "일본에서 6개월 교육을 마치고 부사관 신분으로 전선에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한 전차는 미군으로부터 받은 M-36으로 모두 영자 표기였다.
"원래 만 18세 이상(병역 의무자)이 입대해야 하지만 나라가 위기 상황이고 미군 전차를 다루려면 영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인재가 필요해 병무청 군인이 고등학교까지 찾아왔다"고 오씨는 떠올렸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에서 올라온 중·고생 120여 명은 그렇게 '소년전차병'으로 입대했다. 국군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소년 특수부대였다.
그러나 이들의 자부심은 곧 무너졌다.
교육은 논산훈련소에서 받았고 신분도 부사관이 아닌 일반 병사였다. 3개월 훈련 끝에 경기도 연천 전투지역(현 태풍전망대 인근)에 배치받았으나 만 18세 이상 일반 병사가 있는 제57전차중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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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소년전차병 오명섭씨16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태풍전망대에서 열린 소년전차병 추모식에서 오명섭(78)씨가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년전차병은 한국전쟁 당시 15~18세 중·고교생으로, 미군 전차를 몰며 경기 연천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2013.5.16 ⓒ 연합뉴스 | ||
이유야 있었겠지만 자긍심 하나로 입대한 그들로선 못내 아쉬웠다.
그들은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서부전선 박(朴) 고지, 퀸(Queen) 고지, 베티(Betty) 고지에서 육군 1사단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그 사이 소년전차병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조종수였던 오씨는 휴전 직전 전차 엔진이 멈추며 적의 포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
그는 부상과 극심한 두통 후유증에 시달리는 와중에 전역했지만 어인 일인지 상이 군인이 되지 못했다. 동료 부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처구니 없게도 '나이가 어리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전사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참전 사실은 이후 51년 간 전사(戰史)에서 사라졌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0년대 들어 비로소 이들에 대한 보훈정책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참전유공자 인정 대상이 '병역 의무가 있는 (만 18세 이상의) 군인'으로 제한돼 있었다.
오씨 등 소년전차병들은 전역할 당시에도 여전히 입대할 연령에 미치지 못한 어린 나이였다.
마침내 2002년 참전유공자 관련 법이 개정됐다.
만 18세 미만의 소년병사도 2003년 참전자로 인정됐다.
이때 오씨를 포함한 겨우 20명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았다. 나머지 100여 명은 이를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고 일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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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전망대에서 열린 소년전차병 추모식16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태풍전망대에서 열린 소년전차병 추모식에서 관계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소년전차병은 한국전쟁 당시 15~18세 중·고교생으로, 미군 전차를 몰며 경기 연천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2013.5.16 ⓒ 연합뉴스 | ||
2008년 다시 법이 개정돼 한국전쟁 참전유공자는 국가유공자로 승격됐다.
그 사이 또 여럿이 세상을 떠나 12명 만이 국가유공자가 됐다. 10% 만이 '당연한 예우'를 받은 것이다.
오씨는 "휴전 이후 소년전차병들이 있던 중대는 해체됐다"며 "이들 대부분은 포 사격으로 환청과 난청에 시달려 학업에 복귀조차 못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한 희생 기록이 지워진 사이 부상과 생활고에 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오씨는 "반세기 동안 당연한 일이었거니 자위 하며 우리의 참전을 인정해달라고 강력히 말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정부는 미성년자까지 전쟁에 동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반세기 만에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고 섭섭해했다.
이들은 육군 28사단과 연천군의 도움을 받아 태풍전망대에 소년전차병 추모비를 건립, 매년 5월 16일 조촐한 추모식을 열고 있다. 제57전차중대 제1소대장 박승일 소위가 소년전차병을 구하려다가 전사한 날이다.
올해가 꼭 10년 째다. 올해는 특히 정전협정 60주년이기도 하다.
최후의 12인은 16일 오후 2시 태풍전망대에서 뜻깊은 추모식을 가졌다. 일부 가족들도 참석했다.
오씨는 추모사에서 "생존한 전우들이 지난 날의 명예를 찾기 위해 우리가 지켜낸 이곳 태풍 전망대에 참전 전적비를 건립해 당신들을 추모한다"며 "국가의 안녕과 통일을 염원하며 대대손손 이를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추모식을 전후해 연합뉴스 기자에게 "훈련소에 책가방을 들고 온 학생이 있을 정도로 학업을 포기하고 영문으로 된 전차 용어를 공부해야 했다"며 "나라가 필요할 때 우리를 불렀다면 이젠 국가가 우리를 기억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앞으로는 추모식을 육군 기계화학교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소년전차병 뿐만 아니라 당시 전장에 투입된 수많은 학도병들에 대한 실질적인 배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년병사들이 대부분 숨진 현재 국가보훈처는 "한국전쟁 소년병사들의 참전유공자 인정은 유족이 아닌 본인이 직접 신청해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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